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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트럼프로 인해 카오스에 빠진 중동

갈팡질팡 정책으로 세 겹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다

트럼프로 인해 카오스에 빠진 중동

터키가 시리아 북부를 폭격하는 모습(왼쪽)과 시리아로 향하는 터키군 차량. [뉴시스]

터키가 시리아 북부를 폭격하는 모습(왼쪽)과 시리아로 향하는 터키군 차량. [뉴시스]

10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북동부에서 미군 병력 철수를 선언했다. 이틀 뒤인 9일 터키는 곧바로 쿠르드족 축출과 안전지대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했다. 일주일 뒤인 14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전통 우방이자 중동 맹주를 자처해온 사우디아라비아를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방문했다. 2007년 이후 12년 만의 방문이었다. 

독수리(미국)가 날개를 접고 물러나면서 그 후폭풍으로 역내 세력 다툼이라는 거센 모래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곰(러시아)만 좋은 일을 시켜줬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대립관계인 이란과 시리아를 품에 안은 곰이 사우디는 물론, 이스라엘까지 끌어안으면서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는 것이다.


비판하던 오바마를 능가한 트럼프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는 1972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이집트 내 소련 군사고문단을 추방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미·소 냉전 상황에서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과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중동에 외교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러던 미국이 신고립주의로 전환한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다. 2013년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는 한편, 반미국가인 이란과 핵협상을 모색한 것을 그 기점으로 본다. 오바마는 점진주의자로, 급속한 정책 변화보다 지속성과 변화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는 했지만 리비아에는 직접적 개입을, 시리아와 예멘에는 간접적 개입을 하며 균형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와는 정반대로 균형과 거리가 먼,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선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역시 친미성향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편에 섰다. 또 오바마가 공들여 이란과 체결한 핵협정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반(反)이란연합에 합류했다. 



그렇지만 구체적 행동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하자 단발성 미사일 공격에 그쳤다. 이란을 군사적으로 궤멸하겠다는 위협과 무대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결국 아무런 대응도 내놓지 못했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는 안보보좌관은 물론, 국방장관과 마찰을 일으켰고,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민주당의 탄핵 주장과 우크라이나 게이트로 악화되면서 2020년 대선이 1년 남짓 남은 시점에 트럼프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우왕좌왕 트럼프 vs 득의만만 푸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왼쪽부터).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왼쪽부터). [뉴시스]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더 고립주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오바마의 ‘신고립주의 시즌2’라 부를 수도 있고, 비개입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트럼프의 중동정책이 불예측성과 비효율성, 지속적인 혼돈을 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의 군사 작전을 승인한 것은 비개입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을 믿고 따르던 쿠르드족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됐다. 쿠르드족은 미군을 위해 ‘다에시’(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경멸의 의미가 담긴 호칭) 격퇴전의 선봉에 섰고 1만 명 이상이 전사하는 희생을 치렀다. 

그런 쿠르드족이 미국의 배신으로 비탄에 빠진 모습은 미국 동맹국에게 중대한 함의를 던지고 있다. 동맹국이 적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당했을 때 과연 미국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할까, 아니면 경제제재와 무기 제공으로 생색만 낼까. 이스라엘과 사우디 같은 미국 동맹국은 깊은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이런 가운데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는 이란을 굴복시키기보다 강경파 입지만 키워줬다. 다에시와 알카에다 같은 지하드 테러집단은 숨고르기 이후 틈만 나면 자신들의 건재함을 드러내며 활동을 재개할 개연성이 높다. 이런 혼돈 상황에서 실수, 아니면 의도된 새로운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정치 역시 통제 불가능 상태다. 지난해 10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은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국제사회 내 입지를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사우디와 냉전 중인 카타르, 터키와 관계도 악순환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드론 폭격을 받은 사우디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시설. [뉴시스]

드론 폭격을 받은 사우디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시설. [뉴시스]

사우디 아람코 원유시설이 드론에 피격된 이후 보여준 미국 정부의 대응은 추후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은 헤즈볼라와 후티 등 대리조직을 동원해 역내를 동시다발적인 전쟁 상태로 몰아갈 것이라는 이란의 위협에 병력 1800명을 이란에 파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 대치 초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워했지만, 백악관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군사적 대결을 피하려는 인상을 보이자 또 다른 무력도발을 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사실 이란 유조선 사보타주와 실시간 정보 취합으로 고도의 정밀 작전 능력을 과시한 무인 드론 공격이 트럼프를 협상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혼돈의 중동 정세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는 러시아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중동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공백을 메우며 분쟁 해결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패권국 지위를 얻고 있다. 2015년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사실상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막아냄으로써 미국과 달리 동맹이 요청하면 군사적 지원과 전쟁 개입도 불사한다는 패권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러시아는 역내 주요 국가인 이스라엘, 터키, 이란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피아 구별 없이 무기를 판매하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왜?

중동에서 발은 빼려다 오히려 덫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중동에서 발은 빼려다 오히려 덫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그렇다면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왜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걸까. 트럼프 개인의 변덕 때문이라는 뻔한 관점을 넘어 구조적 원인을 한번 살펴보자. 

첫째,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 같은 진흙탕 전쟁과 장기 주둔에 피로감이 팽배한 미국 여론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제한적 군사력 사용에도 머뭇거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무력 사용을 매우 꺼려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냄으로써 이란 같은 국가의 군사적 도발을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 

둘째, 트럼프가 그리는 동맹은 자유와 민주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단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동맹이다. 그래서 미군의 직접 개입보다 군사훈련과 무기 판매를 선호한다. 무기를 판매해 동맹국 스스로 방어케 한다는 논리지만 실제론 미국 경제부흥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재선이라는 국내 정치용 정략(政略)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이나 아람코 원유시설의 드론 피격에서 드러났듯이 고가의 최신무기라도 운용능력을 갖춘 병력이 빠지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셋째, 미국은 충분한 셰일오일 생산이 가능한 만큼 ‘에너지 독립국가’라는 믿음이 팽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원유시장은 여전히 중동에 의존적이고 미국 내 원유 가격 역시 세계 원유의 수요-공급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미국은 유가 폭등을 유발하는 중동지역의 전쟁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군사적 대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 겹의 대결 구도

[뉴시스]

[뉴시스]

현재 중동은 세 겹의 대결 구도가 서로 얽혀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결, 시아파의 상징 이란과 수니파의 상징 사우디의 대결, 수니파 국가들 간 경쟁이 그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뿐 아니라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시리아 및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시아파 민병대와 동시다발적으로 군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특히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에 당해 매번 체면을 구긴 이란이 아람코 원유시설 공격에 성공해 자신감을 얻은 만큼 추후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서부의 시아파 민병대가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경우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 공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란과 사우디의 대결 구도는 예멘,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현재 이란이 예멘의 후티,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의 대리조직을 통해 우위를 점하면서 사우디는 모든 전선에서 열세에 몰리고 있다. 최근 사우디가 이란과 대화를 모색하며 외교정책 노선에 변화를 보이는 이유도 판세를 뒤집을 만한 돌파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수니파 국가 간 대결 구도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가 한편을 이루고, 카타르와 터키가 다른 편을 이뤄 펼쳐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 당시 이 두 진영은 아사드 정권 붕괴를 지지하며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집트와 관련해 카타르와 터키는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한 반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군 장성 출신인 시시 대통령을 지지하며 견원지간이 됐다. 

터키의 시리아 침공은 이런 삼중의 화약고에 불을 질러 중동 전체를 아마겟돈으로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쿠르드족은 아사드와 푸틴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10월 14일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와의 국경선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유사시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군과 무력충돌을 할 것인지, 시리아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선언한 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가 시리아에서 또 다른 국제전 발발의 향방을 결정할 전망이다.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로 촉발된 요동치는 중동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도의 혼란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점은 역내 불안정이 역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장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던 다에시가 재건될 경우 다시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다. 패권국의 지위는 쉽게 얻거나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패권 유지를 위한 대가와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힘의 균형을 통한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해 미국의 선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주간동아 2019.10.18 1210호 (p42~45)

  •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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