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10

2019.10.18

베이스볼 비키니

‘가을 커쇼’를 위한 변명

포스트시즌 커쇼가 던진 공 대비 성적은 나쁘지 않아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9-10-18 1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 [뉴시스]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 [뉴시스]

    Q 2013년부터 올해 10월 15일 현재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 선발 등판해 6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상대 타선을 1점 이하로 막은 경기가 가장 많은 투수는 누구일까요. 

    A 정답은 클레이턴 커쇼(31)입니다. LA 다저스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7년 연속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기간 LA 다저스의 에이스 커쇼는 9경기에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9경기 성적은 7승 1패 평균자책점 0.74였습니다.

    Q 그렇다면 같은 기간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 경기에서 5점 이상 내준 경험이 제일 많은 메이저리그 투수는 누구일까요. 

    A 이번에도 정답은 커쇼입니다. 커쇼는 8번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8경기 성적은 0승 6패 평균자책점 10.24.

    ‘커쇼는 가을야구에 약하다’는 문장은 있는 그대로 사실인 듯하지만, 실제 기록으로 살펴보면 ‘가을 커쇼’는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네, 우리는 ‘못하는’ 커쇼만 기억합니다. 한국 팬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미국 누리꾼들이 쓰기 시작한 표현 가운데 ‘커쇼잉(Kershaw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번역하면 ‘커쇼가 커쇼하다’ 정도가 될 겁니다. 구글에서 ‘커쇼잉’으로 이미지를 검색하면 커쇼가 마운드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사실 커쇼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잘 던졌을 때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서 못 던졌을 때는 아무도 잊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도 이제는 지쳤는지 올해 디비전시리즈 탈락 후에는 “사람들이 포스트시즌 때 내 모습에 대해 하는 말들이 모두 사실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끔찍하다. 정말 그뿐이다”라고 체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올해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팀이 3-1로 앞선 7회 초 구원 등판해 딱 공 3개로 홈런 두 방을 얻어맞아 동점을 허용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장면 역시 ‘가을야구 무대에서는 커쇼를 불펜으로 쓰면 안 돼’라는 생각을 자동으로 떠오르게 했지만, 사실 그가 포스트시즌 때 세이브 기회를 날린 건 이 경기가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가을야구의 커쇼가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는 이유는 뭘까요.

    “이미지가 그럴 뿐 성적은 나쁘지 않다니까요”

    포스트시즌에 약한 선수에게는 흔히 ‘새가슴’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닙니다. 적어도 커쇼에게는 이 이유가 오답일 확률이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새가슴이라면 잘 던진 경기가 저렇게 많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커쇼는 자신의 월드시리즈 데뷔전이던 2017년 1차전 때 7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잡으면서 1점밖에 내주지 않아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볼넷은 하나도 없었고 안타도 3개만 내줬습니다. 이 1차전은 LA 다저스가 29년 만에 맞이하는 월드시리즈 첫 경기였고, 아마 본인을 제외한 전 세계 야구팬은 대부분 ‘커쇼는 새가슴이라 이 경기에서 못 던질 거야’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기에서 커쇼는 보란 듯이 ‘강철 멘탈’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한 경기에서 잘 던졌으니 이제 롤러코스터를 탈 차례. 커쇼는 닷새 뒤 열린 5차전에 역시 선발 등판해 4와 3분의 2이닝 동안 6점을 내줬습니다. 정확하게는 본인이 마운드에 있는 동안 4점을 내줬고, 커쇼가 주자 2명을 남겨두고 마운드를 내려간 뒤 다음 투수였던 마에다 겐타(31)가 3점 홈런을 맞으면서 실점이 6점으로 늘었습니다.

    많이 던져서 지쳤고, 분석할 기회도 많아

    10월 10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경기에서 8회 한 이닝 만에 강판된 클레이턴 커쇼. [뉴시스]

    10월 10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경기에서 8회 한 이닝 만에 강판된 클레이턴 커쇼. [뉴시스]

    여기서 알 수 있는 첫 번째 문제는 커쇼는 한 시리즈에서 상대를 두 번째 만나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시리즈별 첫 등판 때는 상대 타선을 평균자책점 3.94로 막았지만 두 번째 등판 때는 5.13으로 평균자책점이 1.2점 가까이 올랐습니다. 

    커쇼가 이렇게 두 번째 맞대결에 약한 이유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구종이 단조롭다는 겁니다. 군사용 레이더 기술로 구종을 분류해 제공하는 서비스 ‘베이스볼서번트’(baseballsavant.mlb.com)에 따르면 커쇼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 때 전체 투구에서 속구(43.5%)와 슬라이더(39.6%)가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같은 팀 류현진(32)이 △체인지업 27.8% △속구 27.1% △커터 19.2% △싱커 13.1% △커브 12.3%를 골고루 던진 것과 대비되는 대목. 

    커쇼는 구위 자체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 휴식을 충분히 취했을 때는 타자가 공을 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닷새 이상 쉬고 포스트시즌 선발 마운드에 오른 건 19번이고, 이 19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은 2.55였습니다. 

    문제는 포스트시즌 특성상 휴식일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두 번째 등판 때가 되면 커쇼는 하루를 덜 쉬고(평균 2.9일)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이 경우 구위가 떨어진 상태라 구종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구종이 부족하다는 건 상대와 수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카드 수가 적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 경기 기록을 나눠서 봐도 맞대결 횟수가 늘어날수록 커쇼가 부담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1~6회까지는 평균자책점 3.63으로 막았지만 7회 이후가 되면 12.27로 평균자책점이 치솟습니다. 

    말하자면 커쇼는 포스트시즌에서 너무 많이 던지다 보니 자기 구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커쇼가 현재까지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오른 건 총 158과 3분의 1이닝.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시리즈 정상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한 투수 가운데 커쇼보다 포스트시즌에서 많이 던진 투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믿을 만한 동료? 내가 해결해야지!

    커쇼가 남긴 성적표만 생각하면 구원투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커쇼가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르면서 이닝 중간에 마운드에서 내려간 건 총 9번이고, 이때 베이스에 나가 있던 주자(승계주자)는 총 16명이었습니다. 이 중 13명(승계주자 실점률 81.3%)이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2013~2019년 메이저리그 정규리그 경기의 승계주자 실점률은 29.7%였습니다. 

    커쇼가 주자를 남기고 내려간 시점에서 아웃 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라 ‘기대득점(Run Expectancy)’을 계산해보면 다저스 구원진이 리그 평균만큼만 커쇼가 남긴 주자를 처리했어도 커쇼는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4.33)을 0.5점 가까이 내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커쇼가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이 3.83인 투수였다면 평가가 어땠을까요. 

    ‘도핑’(약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때문에 빛이 바래긴 했지만 앤디 페티트(47)는 뉴욕 양키스에 다섯 차례(1996, 1998, 1999, 2000, 2009)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선물한 ‘가을 사나이’였습니다. 페티트는 포스트시즌에서 통산 19승(11패)을 기록했습니다. 19승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최다승 기록입니다. 이 ‘빅게임 앤디’의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이 3.81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실제로는 본인이 마운드에서 버텨도 두드려 맞았고, 내려가면 다음 투수가 얻어터졌으며, 이제는 불펜으로 나와 스스로 무너졌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낙엽이 쌓이면 쌓일수록 커쇼는 정규리그를 위해 태어난 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