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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숙성 음식, 여름 입맛을 깨운다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숙성 음식, 여름 입맛을 깨운다

부라타 치즈와 갖가지 장아찌. [사진 제공·김민경]

부라타 치즈와 갖가지 장아찌. [사진 제공·김민경]

무더운 여름이 되면 이런저런 음식을 잘 챙겨 먹자는 말을 주고받곤 한다. 땀을 많이 흘리게 되니 보양식을 먹자, 더위가 울고 갈 만큼 시원하고 맛있는 빙수 한 그릇 먹자처럼 다른 계절에 비해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난다. 여름에는 입맛이 바닥을 치기 일쑤니 떨어진 입맛을 돋우기 위해 유난히 맛좋은 것들을 섬기게 된다. 

문제는 보양식도, 이열치열도, 차가운 음식도 한두 번이라는 점이다. 매 끼니 배부른 보양식은 버겁고 금세 물린다. 이럴 때 밥반찬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지’다. ‘지’는 김치를 가리키는데 우리가 떠올리는 김치의 범주보다 훨씬 폭이 넓다. 소금에 절여 만드는 오이지와 무짠지도 이에 속하며, 다양한 장아찌의 시작도 처음엔 모두 ‘지’였다. 

물기 없이 짭짤한 맛에 꼬들꼬들 아작아작 씹히는 오이지, 사각사각 썰어 소금기를 뺀 다음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 먹는 무짠지는 물론, 고추장에 박아뒀던 삭힌 고추는 또 얼마나 달고 맵고 기운찬가. 어디 이뿐인가. 가지, 고춧잎, 깻잎, 콩잎, 마늘, 조개, 멸치, 새우, 오징어 등 어디에나 있는 흔한 식재료는 한여름의 오이지처럼 입안에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방법은 숙성 혹은 발효에 있다. 

발효음식 하면 강렬한 이미지가 몇 개 떠오른다. 우리의 삭힌 홍어, 중국의 취두부, 스웨덴의 삭힌 청어…. 발효음식의 최상위층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호오도 갈린다. 발효는 식재료에 없던 외부 미생물의 작용으로 이뤄진다. 주재료가 되는 식재료에 알맞은 환경이 필요하다. 메주를 띄울 때, 치즈를 발효시킬 때, 김치를 익힐 때의 적절한 온도와 습도는 제각각 다르다. 환경조건이 각 식재료에 알맞지 않으면 재료는 썩고 만다.


예상을 깨는 이색적인 발효의 맛

숙성은 발효보다 온화하다. 외부 균이 아닌 식재료 자체의 효소가 분해되면서 새로운 맛과 향, 식감을 만들어낸다. 대체로 단단하던 조직은 부드러워지고, 무르던 것은 쫀득해지며, 다양하고 복합적인 풍미도 지니게 된다. 숙성과 발효에는 온도, 습도, 시간이 모두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만드는 이의 발상의 전환이다. 삭힌 홍어를 누군가는 썩은 생선으로 취급할 때 한편에서는 ‘기똥차게’ 맛있는 건강식품이라는 것을 알아챘듯이. 



우리는 발효와 숙성음식에 익숙하다. 어릴 때부터 장, 젓갈, 김치를 먹어왔기 때문이다. 익숙한 만큼 고정관념도 생긴다. 발효나 숙성의 풍미를 자신의 경험에 한정 지어 예측하곤 한다. 그러다 최근 그 예측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발효음식과 비스트로(목로주점)를 결합한 ‘퍼멘트비(FERMENT B)’의 음식이 그랬다. 

주우석 셰프가 만들어내는 ‘퍼멘트비’의 메뉴는 단출한 편이다. 와인 다이닝으로 와인과 어울릴 만한 요리를 준비해 저녁에만 영업을 한다. 단순히 술맛 좋아지는 안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발효 숙성주인 와인이 지닌 풍미만큼 귀하고 값진 풍미를 접시에도 담아낸다. 


된장에 숙성시킨 달걀노른자를 뿌린 타르타르. [사진 제공·김민경]

된장에 숙성시킨 달걀노른자를 뿌린 타르타르. [사진 제공·김민경]

‘비프 타르타르와 흑미칩’은 ‘퍼멘트비’의 첫인상이자 시그니처 메뉴다. 타르타르는 기름기가 적고 질 좋은 쇠고기를 숙성시킨 다음 간을 해 만든다. 바삭하게 구운 흑미칩에 딱 한입 양의 타르타르가 올라간다. 그 위로 샛노란 달걀노른자가 마치 금가루처럼 뿌려진다. 달걀노른자를 된장에서 숙성시켜 말린 다음 치즈처럼 갈아 음식에 올리는 것이다. 싱싱한 달걀노른자는 된장에서 숙성되면서 물기가 빠지고 맛과 향이 스며든다. 생 노른자가 삶은 달걀노른자처럼 여물면 이를 말려 맛과 향을 더 깊게 한다. 12일 정도 지나야 된장 절임 노른자가 완성된다. 화사한 황금색이 눈도 즐겁게 하지만 맛도 삼삼해 타트타르의 풍미를 더한다. 

부라타(burrata) 치즈는 신선한 모차렐라의 사촌 격이다. 둥근 모양도 모차렐라와 비슷하다. 겉은 모차렐라처럼 쫀득한 맛이 있으나 가르면 훨씬 크리미한 속살이 나온다. 구수한 풍미가 좋지만 유지방 맛이 진해 다소 느끼할 수 있다. 참고로 부라타는 이탈리아어로 ‘버터 같은’이라는 뜻이다. 부라타는 대체로 신선한 채소를 풍성하게 곁들여 먹거나 짭짤한 염장육과 함께 빵에 올려 먹는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여러 가지 토마토로 담근 장아찌, 10~12일 동안 발효시킨 누룩소금, 직접 담근 청귤청은 일 년 내내 두고 쓴다. [사진 제공·김민경]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여러 가지 토마토로 담근 장아찌, 10~12일 동안 발효시킨 누룩소금, 직접 담근 청귤청은 일 년 내내 두고 쓴다. [사진 제공·김민경]

주 셰프는 부라타 치즈에 장아찌를 곁들였다. 장아찌에서 간을 줄이는 대신 신맛과 단맛을 살렸다. 치즈에 곁들이는 장아찌는 계절에 따라 서너 종류가 올라간다. 아삭하고 꼬들꼬들한 풋토마토, 말랑하고 촉촉한 방울토마토, 고들고들하면서 쫄깃한 가지, 아삭거리는 매실 등이다. 장아찌는 재료별로 따로 담근다. 풋토마토는 탄력이 생기도록 살짝 말리고, 방울토마토는 일일이 껍질을 벗긴다. 가지는 길게 썰어 말린 다음 허브오일에 절이고, 매실은 설탕에 절인다. 주문이 들어오면 하나하나 꺼내 지난해 담근 청귤청으로 버무려 맛을 낸다. 재료의 색과 식감, 맛이 하나같이 살아 있어 오글오글 씹는 재미가 대단하다. 접시의 주인공이 부라타 치즈가 아니라 장아찌라고 해도 되겠다.


숙성된 고기와 재료의 조화

1 직접 만든 어란을 곁들인 파스타. 2 김을 넣은 프레시 파스타는 멸치액젓으로 맛을 낸다.
3 흑마늘과 대파가 부드러운 고기와 어울리는 이베리코구이.4 찹쌀과 헤이즐넛이 올라간 육포. 5 곰취장아찌로 감싼 채끝스테이크는 누룩소금을 곁들여 먹는다. 6 고추장아찌를 튀겨 올린 파스타. 7 된장 절임 달걀노른자.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주우석 ]

1 직접 만든 어란을 곁들인 파스타. 2 김을 넣은 프레시 파스타는 멸치액젓으로 맛을 낸다. 3 흑마늘과 대파가 부드러운 고기와 어울리는 이베리코구이.4 찹쌀과 헤이즐넛이 올라간 육포. 5 곰취장아찌로 감싼 채끝스테이크는 누룩소금을 곁들여 먹는다. 6 고추장아찌를 튀겨 올린 파스타. 7 된장 절임 달걀노른자.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주우석 ]

지금까지는 ‘스타터’였으니 고기 맛을 봐야 한다. 양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요리가 모두 있다. 고기는 재료의 특성에 알맞게 숙성 과정을 거친다. 양갈비구이에는 막걸리를 빚고 남은 술지게미에 절인 오이피클이 곁들여진다. 고기에 올라가는 소스는 양 뼈로 끓인 육수를 졸여 쓰는데 소량의 된장을 넣어 은은한 향이 난다. 배추는 자작한 닭육수에 넣어 찌듯이 익혀 뭉근하게 맛을 들이고 마지막에 센 불에 화르르 구워 향을 더한다. 어린 양을 사용하기에 특유의 누린내가 거의 없지만 양고기에 선입견을 갖는 이는 여전히 많다. ‘퍼멘트비’에서는 된장, 막걸리, 배추처럼 익숙한 재료로 숙성된 맛을 보태 양고기를 조금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두툼한 채끝스테이크에는 직접 만든 누룩소금이 함께 나온다. 다른 소스는 없다. 한 달 동안 숙성을 거친 질 좋은 고기를 구워 10~12일 정도 발효시킨 누룩소금에 찍어 먹는다. 물기가 있고 콤콤한 향이 나는 누룩소금은 일반 소금보다 입안에 오래 남는다. 두껍고 부드러운 고기를 씹는 내내 소금과 고기가 뒤엉켜 계속 맛을 낸다. 

뼈가 붙어 있는 등심을 구워주는 이베리코구이는 포크로 자를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소금과 설탕을 섞은 물에 담가 육질을 한층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고기는 흑마늘페이스트로 만든 소스, 숯향이 나는 대파퓌레를 곁들인다. 부드러움으로 맛보는 고기에 제맛이 쨍하게 살아 있는 흑마늘과 대파의 조화가 입맛을 당긴다. 이 요리는 플레이팅은 서양 요리의 면모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늘 먹는 삼겹살, 대파, 마늘의 궁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식사로는 파스타와 쌀 요리가 있다. 역시 하나같이 발효와 숙성의 아이디어가 깃들어 있다. 숭어 어란으로 맛을 낸 파스타, 고추장에 삭힌 고추장아찌를 튀겨 곁들이는 리가토니, 김을 넣어 반죽한 생면에 해산물을 넣고 멸치액젓으로 간을 한 스파게티가 있다. 이외에도 암쇠고기로 육포를 만들고, 사워크라우트(양배추절임)도 제대로 담가 요리에 사용했으며, 태양초를 사다 고춧가루도 직접 저온에서 말려 낸다. 

올여름에는 콤부차와 직접 만든 고춧가루를 넣은 물회 같은 요리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퍼멘트비’ 주방에서 공을 들여 만드는 발효 및 숙성식품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많다. 하지만 조리 중 맛이 더해지고 다른 재료와 어울려 접시에 올라가면 전혀 다른 풍미를 자아낸다. 즉 접시마다 숨겨놓은 발효와 숙성의 묘미를 찾는 재미는 물론이며 깨어나는 감각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


주우석 ‘퍼멘트비’ 셰프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왜 숙성과 발효를 택했나. 
“처음에는 우리나라 음식에 호기심을 가진 외국인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시작했다. 발효와 숙성은 순한 것을 도드라지게도 하지만 강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한다. 낯선 식재료나 음식을 친근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발효와 숙성을 통해 맛, 향, 식감의 변주를 경험하고, 실제로 접시에 올리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워졌기에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재미있어 한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데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이유는. 
“누룩소금 같은 것은 간혹 구입하기도 한다. 다만, 내가 쓰는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쓰는 것이 중요하기에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레시피가 완성되기도 하고, 숙성과 발효를 제대로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배운다.”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164길 34-2






주간동아 2019.07.26 1199호 (p78~80)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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