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0

2015.08.10

“아님 말고” 급증하는 무고죄

경제적 이득이나 보복이 목적…성범죄 고소했다 ‘무혐의’ 처리되면 ‘무고죄’ 될 수도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8-07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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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님 말고” 급증하는 무고죄
    #1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세 모자 사건’은 이모 씨와 두 아들이 십수 년간 목사인 남편 허모 씨로부터 성폭행당하고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그런데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재에 의해 이들의 주장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고 배후에 사건을 조종한 무속인 김모 씨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기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김씨에 대해 무고교사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8월 3일 기각됐다.

    #2 40대 여성 보험설계사 A씨는 7월 24일 대구 중부경찰서에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으로부터 호텔에서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 신고 이후 심 의원을 만난 A씨는 7월 27일 2차 조사에서는 강제로 이뤄진 성관계가 아니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의견(무혐의)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8월 5일 심 의원의 성폭행 의혹을 재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무고사범은 다 꽃뱀?

    두 사례에서 이씨와 A씨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무고죄가 적용될 확률이 높다. 형법 156조에 따르면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경찰서나 검찰청 등의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게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한다. 처벌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이다. 다만 고소 내용이 허위라도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어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사건을 과장해 진술한 경우에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무고죄는 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지만 이득을 노리거나 보복을 목적으로 허위 고소 또는 신고를 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최근 검찰은 무고, 위증 등 사법질서 교란 사범에 대한 단속 결과를 연달아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 전국적으로 무혐의 처분한 고소 사건 중 무고사범 인지율은 1.01%, 무고로 고소된 사건 기소율은 4.72%(177명)였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검경이 접수한 무고 사건은 2007년 3274건, 2009년 3580건, 2011년 4374건, 2013년 4372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끝나다 보니 허위 고소와 신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지방검찰청(부산지검)은 올해 상반기 무고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 74명을 적발해 그중 4명을 구속 기소하고 69명을 불구속 기소(1명 이송)했다고 밝혔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무고 고소 사건 기소 인원은 17명으로 지난해 동기(6명) 대비 대폭 증가했고, 무고 적발 건수도 12.6% 증가했다. 2013년 이후 관내 인구는 감소해왔으나 관할 지역 내 무고범죄는 꾸준히 증가해왔다”고 밝혔다. 기소된 무고사범의 유형을 살펴보면 이득목적형 35.1%, 보복목적형 20.2%로 절반 넘는 사건이 금전적 이득을 노리거나 개인 간 악감정으로 허위 고소나 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 관련 무고사범도 증가 추세다. 애초 돈을 목적으로 접근한 ‘꽃뱀 사건’도 포함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수다. 이번에 검찰이 적발한 사례를 보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으나 남성이 관계 후 연락을 끊자 화가 나 강간당했다고 허위 고소한 사례 △딸이 성관계한 사실을 알고 남자친구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내고자 강간으로 허위 고소한 어머니 △폭력을 행사하고 행패를 부린 후 오히려 피해자 남성을 강제추행으로 허위 고소한 여성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 남자친구에게 들키자 상황을 모면하려고 그 남자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허위 고소한 여성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성들이 만나자는 요구나 연락처 주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제추행으로 허위 고소한 여성 등이 있었다.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은 3월부터 7월까지 무고사범을 집중 단속해 15명을 적발, 3명을 구속 기소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중 성폭력 범죄 무고사범은 8명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성폭력 범죄는 검경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해왔지만 당사자 진술만 있을 뿐 목격자 등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피해자 진술이 수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그러다 보니 이를 악용해 허위 고소하는 무고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악의적 무고는 엄단할 필요가 있지만 고소인의 무고 여부를 섣불리 판단해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철저한 수사로 신중히 판단하되 명백한 악의적 무고는 성폭력에 버금가게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사건의 경중을 떠나 피해자가 소를 취하하면 수사가 종결됐다. 이 때문에 합의를 통한 소 취하가 빈번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가해자가 고소 취하를 종용하며 피해자를 협박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성범죄 친고죄 조항은 2013년 6월 폐지됐다. 최근 심학봉 의원을 성폭행으로 신고한 A씨가 진술을 번복했지만 심 의원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진 것도 친고죄 조항 폐지로 고소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혐의가 입증되면 처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님 말고” 급증하는 무고죄
    성범죄 친고죄 폐지 이후 무고사범 증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범죄 친고죄 폐지가 무고사범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친고죄가 폐지되고 나서부터는 피해자가 고소에 뜻이 없더라도 수사가 진행된다. 피해자가 정말로 성폭행당했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어떤 목적이 있어 문제 제기를 했는데 가해 근거가 밝혀지지 않거나 악의적인 허위 진술인 게 확인될 경우 과거와 달리 무고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성폭력 전문 변호사인 김광삼 법무법인 더쌤 대표변호사는 무고사범 검거가 늘어난 것에 대해 “검찰 지침도 있고, 명백하지 않으면 입건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무고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은 밀실에서 둘 사이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무죄를 입증하려면 밀실에서 행위가 있기 전후 상황이 중요하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성범죄 시기 이후 특히 성폭행을 당한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 예를 들어 가해자와 이전처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호텔에서 팔짱을 끼고 장난을 치면서 나오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같은 증거가 있다면 무혐의 처분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가 실제로 강간당했지만 남자 측에서 집요하게 잘해주면서 진술 번복을 유도한 뒤 무혐의를 받으면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강간당했더라도 무고죄가 적용될 수 있어 이를 악용하는 남성도 있다”며 “강제추행 직후 고소하면 무고죄가 성립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신고하면 불리할 수 있다. 피해를 입고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진술하다 보면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으니 경찰 신고 전 변호인과 상담한 후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하면 무고가 아님을 입증할 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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