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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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 성취, 제3세계 국민에게는 희망의 상징”

무기수에서 유엔 인권 담당 위원까지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7-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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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민주화 성취, 제3세계 국민에게는 희망의 상징”
    백태웅.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만만치 않은 함의를 담고 있는 이 이름이 다시 한 번 뉴스를 장식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7월 3일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에 재직 중인 백태웅 교수(53·사진)를 강제실종 실무그룹 아시아·태평양 지역 위원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강제실종 실무그룹은 1980년 업무를 시작해 유엔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실무그룹. 위원 임기는 3년이고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백 교수는 1989년 박노해 시인 등과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조직해 활동하다 92년 체포돼 1심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 2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99년 특별사면·복권된 뒤 김수환 추기경 등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 노트르담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로스쿨 조교수를 거쳐 2011년 하와이대에 자리 잡았다.

    여전히 ‘사노맹의 백태웅’으로, 혹은 선거철마다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름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이에게는 뜻하지 않은 소식이겠지만, 국제인권 분야에서 백 교수의 활동은 그 이력이 만만치 않다. 2001년 미국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법률고문역으로 한국을 방문해 탈북자 문제 조사에 참여했고, 2004년에도 유엔 인권보호증진소위원회 자문역으로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서 활동한 바 있다.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그를 7월 7일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인도주의의 거대한 흐름

    ▼ 먼저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개해달라.



    “각 나라 국가기관이 저지르거나 묵인한 실종자 문제를 다룬다. 예컨대 권위주의 정부가 정당한 절차 없이 국민을 구금하면서 소재를 통보하지 않으면, 그 피해자 또는 가족으로부터 청원을 받아 해당 정부와 연락을 취하거나 현지조사를 진행해 유엔에 보고한다. 따르지 않는 국가는 유엔 차원에서 공개해 국제적으로 지속적인 압력을 가한다. 회기마다 수십 건씩 제출되는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사의 드라마다. 엄청난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는 가족에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구금돼 있는지만이라도 알려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실종 문제를 제소한 나라가 80개국 이상, 아시아만 해도 27개국이다. 특히 필리핀이나 스리랑카 등 내전을 거친 국가들은 실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성장하기 어렵다. 북한의 경우 이 문제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한국에서도 노진수, 안치웅 등 1980년대 벌어진 실종사건이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

    ▼ 유엔의 개입이 충분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IS(이슬람국가)와 보코하람 등이 자행하는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참극에 대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국제기구의 기능에 부침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엔이 처음 생겨난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힘의 논리만을 중시하는 인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인권이사회와 국제형사재판소, 지역별 인권기구가 활성화돼온 지난 10년은 특히 그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물론 나라 안에서 벌어진 일에 국제기구가 개입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지만, 거대한 흐름은 분명 더 나은 세상을 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주화나 인권 상황 개선은 국제사회와 각 나라 내부의 운동이 상호작용을 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우리에게는 당장 북한 인권이라는 당면 과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임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먼저 6·25전쟁 기간과 이후 분단상황에서 발생한 각종 강제실종 문제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가 이미 이를 유엔에 제기해 실무그룹 차원에서 일부 사안을 북한 당국에 통보했고, 북한 측 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일본 측에서 제기한 납치자 문제도 주요 사안으로 올라와 있다. 이러한 이슈가 국가 간 갈등으로 정치화하는 대신 인도주의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아시아 인권 논의, 우리가 주도해야

    ▼ 유엔 인권이사회가 이번 임명 과정에서 수감과 특별사면 같은 교수님의 개인사(史)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보나. 혹은 그러한 경험이 앞으로의 활동에 어떻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유엔 인권 전문가들의 면면을 보면 국제법 교수나 변호사, 외교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이 주축을 이룬다. 기본적으로 실무그룹 활동이 재판과 흡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률적 판단이나 전문성이 중요하다. 나 역시 인권법을 강의하고 관련 활동을 이어온 전문성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유엔 인권이사회 측이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 같은 개인적인 부분도 이론과 경험의 결합이라는 면에서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상징성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민주화를 이룩하고 과거사를 정리해 진실과 화해, 치유를 모색해온 경험은 다른 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는 동안 우리는 매우 절망적이고 고립돼 있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다 보니 이는 당시 ‘제3의 민주화’라는 전 세계적 흐름의 한 부분이었고, 한국의 민주화는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노력은 모두가 가야 하는 당연한 길 아니겠나. 민주주의와 인권 분야에서 아직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의 다른 나라 국민에게 충분히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교수님의 개인사가 인권 후진국 국민에게 ‘한국의 성취’를 상징하는 일종의 비유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게 된다면 또한 기쁜 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아시아 인권 문제 협력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유일하게 지역 인권체제가 없는 아시아에서 인권헌장 제정이나 인권법원 설립 같은 사안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우리에게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만들어간 경험이 있다. 변화의 동력과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한국이야말로 세계 최고 아니겠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약점도 있고 한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한국이 적극 나서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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