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2015.07.06

실생활 점령, 나노기술의 힘

마스크, 방호복, 화장품까지…한국, 미국과 기술 격차 4.1년

  • 김주연 전자신문 기자 pillar@etnews.com

    입력2015-07-06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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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생활 점령, 나노기술의 힘
    최근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탓에 ‘N95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렸다. N95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와 기능적으로 다른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 과립의 95% 이상을 걸러줄 때 해당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기술이 나노기술(NT)이다.

    나노기술은 나노미터(nm) 크기의 물질을 기초로 나노 소재, 나노 부품, 나노 시스템을 만드는 기술을 통칭한다. 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로, 머리카락 두께의 5만 분의 1에 불과하다. 보통 원자 서너 개를 나란히 놓았을 때 이 정도가 되며 세포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작다.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을 가공하거나 조립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나노기술이다.

    이 중에서도 각광받는 게 나노 소재다. 원자나 분자 수준으로 물질을 쪼개 가공, 결합하면 물질이 가진 특성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다. 기업이나 학계에선 이를 활용해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거나 원하는 성질을 입자에 부여한다. 소재를 나노 크기로 일일이 쪼개는 것과 나노 크기의 각 입자가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분산성을 높이는 게 핵심 기술이다. 소재에 원하는 성질을 입히려면 각 입자가 따로따로 분리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노기술, 화장품에도 활용

    나노기술은 21세기 성장동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기업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 중소기업들도 이 시장에 여럿 뛰어들었다. 의약품과 화장품에서부터 방사선이나 먼지를 막는 상품,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차단하는 제품까지 다양한 분야에 나노기술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건 ‘나노다이아몬드’다. 나노다이아몬드는 고성능 폭탄을 터뜨려 만든 원재료(Soot)에 금속·금속수산화물 등을 반응시켜 추출한다. 열전도성이 높고 경도(표면 굳기)가 10으로 지구상에 있는 광물 가운데 가장 단단하다. 탄소나노튜브(CNT)나 그래핀(Graphene) 같은 차세대 소재보다 전기전도성이 낮다.

    값비싼 화장품을 쓰더라도 모공 속 진피에 도달해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나노다이아몬드는 업체 기술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입자 하나에 이론상 최대 12만 개 정도의 오돌토돌한 돌기를 만들 수 있어 다른 소재와의 접착력이 높다. 이 성질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약물전달시스템(DDS)에서 이를 접목해 의약품과 화장품을 만들려는 연구개발(R·D)이 진행 중이다. 나노다이아몬드 입자가 약물 소재를 잡은 채 유분으로 둘러싸인 모공 속으로 들어가 세포 사이사이에 성분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국내 중소기업 STS네트웍스는 최근 세계 최초로 나노다이아몬드 기술을 화장품에 접목한 고급 화장품 ‘테라다이아(TERADIA)’를 선보였다. 화장품 병당 나노다이아몬드 1조 개 이상이 들어 있어 피부를 활성화하는 비타민C, 펩티드 같은 물질들을 진피층까지 전달해준다. 나노다이아몬드의 특성상 극소량만으로도 피부 위에 얇은 보습막을 만들어 자체 항균 및 항산화작용까지 한다. STS네트웍스는 현재 ‘스킨, 에멀전 세럼, 앰플, 크림, 하이드로겔마스크’ 등 5개 제품을 묶은 리미티드 리틀 키트를 출시했다. 동남아와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특히 호응이 높아 이 시장에서 먼저 공식 론칭할 계획이며, 국내에서는 8월 기초 5종을 포함한 안티에이징 제품군을 내놓을 예정이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무연방사능 차폐제를 국내 처음으로 독자 개발해 상용화한 중소기업도 있다. 알에스엠테크의 무연방사능 차폐제 ‘라스고(RASGO)’다. 기존 방호복에는 납 성분이 든 값비싼 미국산 소재가 쓰였지만 인체에 해롭고 폐기물이 환경을 파괴했다. 라스고는 나노 세라믹 계열의 미세입자와 고분자수지, 금속산화물 등 10가지 이상의 원료를 배합한 시트 형태로 만들어졌다. 섬유에 코팅하면 아주 작은 기공을 만드는데, 기공 크기와 모양을 조절해 투습성은 유지하면서 방사능(감마선, 엑스(X)선, 중성자) 등을 막는다. 기존 소재보다 얇고 가벼워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이를 활용한 옷을 만들겠다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실생활 점령, 나노기술의 힘
    2년 전 출범한 청년 벤처 ‘엔트리움’도 있다. 어떤 소재든 나노 입자화해 제어할 수 있으며, 얇고 균일하게 코팅할 수 있는 게 이 회사의 주요 기술이다. 폴리머·은(Ag)·세라믹이나 복합소재 등을 모두 다루는데, 관련 설비를 자체 설계해 원재료를 나노 크기로 입자화할 때 그 특성을 조절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일본 기업들이 주도하던 도전성 입자를 개발해 역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이 입자는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 패널과 기판을 연결하는 필름에 쓰인다.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처럼 컴퓨터에서 발열이 심한 부품의 열을 빠르게 빼내주는 열계면(TIM) 소재나 전자기기의 전자파를 막는 소재(EMI)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나노기술을 활용해 이전보다 성능을 끌어 올리거나 저렴하게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이 회사를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 정부는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IoT) 같은 유망 분야에 나노기술을 접목해 2020년까지 세계 2대 나노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이 추진하는 ‘나노기술 산업화 전략’으로, 올해 투자액만 1772억 원이다.

    국내 나노기술, 어디까지 왔나

    그렇다면 국내 나노업계 기술 수준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해 있을까.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의뢰해 10대 분야 120개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점검한 ‘2014년 기술수준 평가’에서 한국의 나노·소재 기술은 75.8점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인 미국을 100점으로 전제했을 때로, 미국과 기술 격차는 4.1년이다. 일본이 94.3점으로 2위에 올랐고 유럽연합(EU)은 93.6점으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또한 69.2점으로 우리와 기술 격차가 1.1년밖에 나지 않는다. 특히 그래핀 등 ‘첨단 나노 구조 제어 및 무기·탄소소재’ 기술에서 우리나라 점수는 78.2점으로 그나마 최첨단 분야에서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학계에서 꾸준히 연구개발을 한 게 주효했다”고 분석하면서 “나노산업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도 기술은 확보했지만 어디에 적용해야 성공할 수 있을지를 몰라 대다수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산업에서처럼 대기업 중심의 시장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으려면 인력 수급, 특허 확보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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