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2015.07.06

네 돈은 내 돈…신종 사기, 중고나라론

물건 판매 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고 입금되면 잠적, 모은 돈은 도박 탕진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7-06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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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돈은 내 돈…신종 사기, 중고나라론
    직장인 김준영(32) 씨는 얼마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아이패드 미니2 Wi-Fi 전용 32GB 모델을 25만 원에 판다는 글을 보고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생각에 판매자에게 돈을 보냈는데 물건을 받지 못한 것. 김씨는 “급하게 필요한 제품이었는데 가격이 저렴한 데다 입금하면 선착순 배송해준다고 해서 마음이 급해 입금부터 한 게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도 택배는 오지 않았고, 그전까지 문자메시지를 꼬박꼬박 확인하던 판매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온라인 ‘먹튀’ 사건과 유사하다. 그러나 김씨가 수차례 독촉하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판매자는 “보내려던 제품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액정이 깨져서 팔 수 없게 됐다”며 일주일이 지나서야 돈을 되돌려줬다. 김씨는 “그 와중에도 25만 원을 한 번에 준 게 아니라 15만 원만 보냈다. 다시 독촉하자 지금은 돈이 없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니 5만 원씩 총 사흘에 걸쳐 돈을 보냈다. 환불받아 다행이지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나중에 보니 판매한다던 제품의 사진도 구글 검색에서 나오는 다른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이었다. 아무래도 ‘중고나라론’에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누리꾼 사이에서 ‘중고나라론’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중고나라론은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와 대출을 뜻하는 ‘론(loan)’의 합성어로, 처음부터 물건을 판매할 목적이 아님에도 글을 올려 구매자의 입금을 유도하고, 입금된 돈을 유흥비나 도박자금으로 쓰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포털 디씨인사이드 대출갤러리에서는 ‘중고나라론으로 ○○만 원 땡겼다’는 식의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박자금 없으면 중고나라에서?

    검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도박 범죄는 평균 하루에 18.2건, 한 시간에 0.8건 발생했다. 전과를 살펴보면 초범이 21.4%(5531명), 재범이 78.6%(2만339명)로 나타났다. 도박범의 직업 구성을 살펴보면 피고용자 47.4%(1만2488명), 자영업자 25.5%(6737명) 외에 무직자도 20.8%(5478명)에 달했다. 전체 도박범 가운데 소년범(18세 이하) 비율은 0.04%(12명). 무직자와 소년범처럼 도박자금을 자력으로 조달하기 어렵거나 신용불량자가 돼 정상적으로는 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는 사람이 중고나라론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인터넷 중고물품 판매를 빙자한 사기행각을 벌인 피의자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수원남부경찰서는 5월 4일 인터넷 불법 스포츠도박에 빠져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월 20일쯤까지 중고나라 카페에서 운동화, 낚싯대 등 물건을 구매한다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선입금하면 물건을 보내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55명으로부터 1100만 원 상당을 편취한 피의자 A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예전에도 같은 혐의로 처벌받은 적이 있었다.

    남의 돈을 내 것으로 만드는 중고나라론 사기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을 판다는 글을 올린다. 가격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제시하고 선입금만 받겠다고 한다. 직거래를 하면 돈을 받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비싼 제품은 피해자가 곧바로 신고할 수 있으니 적당한 가격대의 제품 혹은 문제가 커지면 늦게라도 택배로 보내줄 수 있는 제품을 올린다. 전자제품이나 상품권, 공연티켓 등이 주요 사기 품목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이 입금되면 카지노 강원랜드로 달려가거나 불법 스포츠도박 등에 도박자금으로 활용한다. 게임에서 돈을 따면 사정이 있었다며 환불해주거나 뒤늦게라도 물건을 배송해 상황을 무마한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치면 양반 축에 속한다. 대다수는 이렇게 당겨 받은 돈을 모조리 탕진하고 잠적해버린다. 중고나라론을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어차피 돈을 돌려주기 때문에 경찰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입금 계좌번호를 불러줄 때 처음부터 사설 스포츠토토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입을 씻으면 된다”는 식의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한다.

    네 돈은 내 돈…신종 사기, 중고나라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 모아 도박으로 탕진

    중고나라론 중독자들은 이 밖에도 자금을 끌어모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피싱이나 도박업체 사람들에게 통장 또는 휴대전화를 팔고 그 돈으로 도박하는 걸 ‘대포통장론’ ‘스마트폰론’이라고 부르며, 절판돼 중고거래가가 높아진 ‘무소유’ 같은 책을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중고로 팔고 도서관에는 책을 분실했다며 원가만 돌려주는 ‘무소유론’, 주택 또는 빌라 등 폐쇄회로(CC)TV나 경비원의 감시가 소홀한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상자를 훔쳐 그 안에 든 제품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택배론’ 등이 도박자금 조달법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 중에는 혼자 있는 아이를 꼬드겨 데려간 후 부모에게 연락해 돈을 빌린다는 ‘아이론(칠드론)’이나 모금함에 ‘세월호 모금’이라고 써놓고 지하철에서 모금을 받아 그 돈으로 도박한다는 ‘세월호론’, 불전함을 훔쳐 달아나 도박자금으로 쓴 뒤 다시 메우는 ‘미륵론’ 등 듣기만 해도 황당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가산을 탕진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사람 중에는 유사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어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인터넷 사기는 2015년 1분기 총 1만7898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수치다. 사이버안전국 관계자는 “중고나라론은 인터넷 사기 유형의 일종이다. 판매자가 사기죄로 처벌받으려면 처음부터 돈을 돌려주지 않거나 물건을 팔지 않을 생각으로 거짓 판매 글을 올렸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두 건으로는 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 건이 접수되면 그전에 접수된 내용 등을 조사관이 고려해 처벌한다.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면 거래대금을 송금한 이체명세서, 판매자의 계좌번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기록 같은 증거자료들을 첨부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인터넷 홈페이지나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해 신고하라”고 말했다.

    인터넷 거래 전 이것만은! 인터넷 사기 피해 예방 수칙

    인터넷 사기 피해를 예방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거래 이력을 최대한 신중하게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에서 거래하기 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알아봤다. 먼저 △상품 대금을 현금결제(계좌이체)로만 유도하는 경우 거래를 자제하고,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제도를 활용한다. △물품 거래 전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사이버안전국(http://cyberbureau.police.go.kr)이나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https://ecc.seoul.go.kr)와 더치트(http://thecheat.co.kr) 등에서 판매자의 전화번호나 계좌번호가 신고 접수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한다. △사이트에 올라온 사업자 정보가 맞는지 확인한다. △파격 할인가 판매 광고를 주의한다. △선착순, 공동구매 등 사행성 판매 방식에 현혹되지 않는다. △사이트 게시판 등에 배송·환불 지연 글이 있으면 이용을 자제하고 판매자의 과거 판매물품과 이용 후기, 댓글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 △일반 쇼핑몰보다 배송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긴 경우 조심해야 한다. △판매자가 단기간에 많은 물품을 판매했거나, 한 번에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고 있다면 거래에 주의한다. △가능하면 직거래를 한다.

    네 돈은 내 돈…신종 사기, 중고나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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