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부동산 활황, 걱정 앞서는 이유

전세난·저금리 영향으로 매매 열기 지속…내년 입주 시기부터 타격 올 수도

  • 정혜연 기자 grape@donga.com

    입력2015-06-29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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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활황, 걱정 앞서는 이유
    2년 전 결혼한 은행원 정준호(33) 씨는 4월 고심 끝에 아파트를 샀다. 보증금 2억 원을 주고 전세로 들어간 신혼집을 떠날 생각이 애초 없었지만 전세 만기가 돌아오자 집주인이 보증금 인상 대신 반전세를 요구했다. 정씨는 ‘전세대출 이자도 은행에 꼬박꼬박 납부해야 하는데 반전세로 집주인에게 매월 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기준금리가 내려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정씨처럼 매매로 눈을 돌린 수요자가 늘어나자 집주인들이 매매가를 일제히 올렸다. 직장과 가까운 서울시내 아파트를 알아보던 정씨는 결국 경기도권 아파트로 눈을 낮췄고 집값의 50%에 달하는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샀다. 기준금리가 언제 오를지 모른다는 말이 많아 주택담보대출은 5년 3%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정씨는 지금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그는 “요즘 전세는 없고 대출금리 부담은 적어 집을 사야만 하는 때인 것 같다. 2~3년 뒤 돈을 더 모아 원하는 지역에 알맞은 크기의 집을 사고 싶었는데 상황에 떠밀려 무턱대고 집을 산 것 같아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하반기 분양 예정 17만 가구

    올해 상반기 정씨처럼 집을 산 사람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의 전국 아파트 거래 현황을 보면 5월 한 달 아파트 매매거래는 전년 동월 대비 전국은 1.5배가량, 서울은 2배 이상 늘었다(표 참조). 5~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경기가 악화됐지만 부동산만큼은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아파트 매매거래 현황을 보면 6월이 1주일 정도 남은 시점까지 거래된 건수는 8412건(~24일)으로 전년 동월 5164건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월등한 수치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해 소비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얼마 전 세종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제하(35) 씨는 “일단 은행의 3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이용해 자금을 마련하긴 했는데 기준금리가 언제 오를지 모르고, 그 여파가 적어도 내년에는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걱정”이라며 대출 부담을 호소했다. 그는 또 “여차하면 분양받은 집을 팔 생각도 있는데 세종시에 분양물량이 쏟아지고 있어 완공 시점에 실입주자들이 없으면 집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인터넷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의 아파트 분양물량은 15만1260가구였다. 하반기에는 이보다 많은 17만4123가구의 분양이 예정돼 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청약 규제, 재건축 규제 등 각종 규제를 푸는 등 적극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펼친 덕에 소비자들의 투자심리가 개선됐다. 하반기에도 신규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호황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하반기 부동산시장의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데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은 동의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금리가 연말까지 유지되고 자금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가 이어지리란 가정 하에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특히 부동산경기의 사전지표는 택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올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내놓은 공공택지 입찰에 민간건설사들의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그만큼 건설경기도 달아오른 상태로 공급과 수요가 맞물려 올해까지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분양이 완공되는 시점에는 가격 변동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심 교수는 “전세난에 매매로 돌아선 실수요자도 많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해 묵혀둔 부동자금을 부동산에 투입한 투자자도 많다. 이 경우 쏟아진 분양물량이 완공돼 입주가 시작되는 내년 혹은 내후년부터 부동산가격이 어떻게 변동될지 모를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방의 경우 지난해 연말부터 분양물량이 쏟아져 2016년부터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울과 수도권은 2017년부터 입주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은진 팀장은 “지역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앞으로 2~3년 사이 입주단계에서 가격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 가격 폭락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거시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여력이 호전되지 않으면 매매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부동산 활황, 걱정 앞서는 이유
    가계부채 줄이고 소득 개선 따라야

    가계부채도 꾸준히 문제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1분기 가계신용 1100조 원 가운데 예금은행과 비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총합은 469조9000억 원으로 전체의 42.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4~6월 부동산 거래량이 일정 수준을 꾸준히 유지한 점으로 추측건데, 2분기 가계부채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부동산 활황세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심 교수는 “산업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전체 경기를 보고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대출금리가 0.5%만 올라도 이자 부담이 매우 높아진다. 정부가 고금리 대출상품을 전환해주는 등 가계부채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반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것도 문제다. 6월 23일 제롬 파월 미 연준 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 주최 행사에서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회복되고 노동시장 개선과 물가상승률 2% 목표 달성을 위한 신뢰 기반이 커질 경우 이르면 9월이 금리인상 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연설했다. 여전히 인상 시기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일단 인상되면 한국도 즉각적이지는 않아도 순차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 경우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람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재의 부동산 호황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가계부채에 따른 위험까지 감소시킬 만한 방안은 없을까.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소비주체의 구매력, 소비력 등을 높이기 위한 소득 개선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여러 경기부양책을 구상 중이지만 향후 소득 분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규모의 성장은 없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5~6월 메르스 확산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낮아진 상황에서 정부의 하반기 경기부양책의 그림에 따라 부동산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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