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4强 힘겨루기 불똥 한반도로?

중·러 동해서 사상 최대 해상훈련…미·일 동맹 강화 견제, 아태지역 패권다툼 본격화

  • 이장훈 국제 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6-29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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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强 힘겨루기 불똥 한반도로?
    중국과 러시아가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동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이번 훈련은 9월 3일 중국 정부가 주최하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이다. 훈련 장소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표트르 대제 만(灣)을 비롯해 동해 일대 해역이다.

    이번 동해 훈련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진행한 5차례의 해군 연합훈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클 것으로 보인다. 20여 척의 각종 함정과 잠수함, 전략폭격기가 동원될 계획이며 상륙훈련도 실시할 예정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현역 최상급자인 판창룽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장군 28명을 대동하고 5월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을 만나 양국의 연합 군사훈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주변에서 전략폭격기와 함께 대규모 해상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동해 훈련의 의도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 강화를 견제하는 동시에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아태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강의 전략요충지 동해 노림스

    중국은 5월 9일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을 맞아 흑해와 지중해에서 해상 연합훈련을 사상 처음 실시했다. 당시 중국은 북해함대 소속 054A형 미사일 호위함 웨이팡호와 린이호, 종합보급선인 웨아산후호, 함정 이착륙 헬기 2대, 특전부대를 파견했다. 러시아는 흑해함대 소속 순양함 모스크바호를 비롯해 각종 호위함과 상륙함 6척을 투입했다. 당시 중국 함정이 흑해에 진출한 것도, 지중해에서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실시한 것도 사상 처음이었다. 열흘간 계속된 훈련에서 양국 함정들은 실탄 사격까지 했다. 흑해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곳이다. 중국 측 의도는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동해 훈련도 러시아와 중국이 사실상 동맹관계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대폭 격상된 미·일 군사동맹에 맞서 러시아와의 안보협력이 긴요한 상황이다. 러시아로서도 중국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은 물론, 아태지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 8일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새로운 틀’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새로운 동북아 안보의 틀은 미·일 동맹에 맞서 중·러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 전략요충지다. 1860년 제정러시아 당시 군사기지로 세워져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항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항로의 시발점이다.

    4强 힘겨루기 불똥 한반도로?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현재 바랴그급 미사일 순양함 1척, 우달로이급 구축함 4척, 소브레메니급 구축함 1척, 델타급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 5척, 아쿨라급 핵잠수함 4척, 그리고 오스카II급 5척을 비롯한 20여 척의 잠수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최신예 보레이급 전략핵잠수함 2척도 태평양 함대에 실전배치했다. 이 잠수함들은 사거리가 8000km에 달하고 핵탄두를 10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블라바 미사일 16기를 탑재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전략폭격기인 Tu-95MS를 아무르 주 블라고베셴스크에 증강 배치하는 등 극동지역 공군력도 강화했다. Tu-95MS는 핵탄두 장착 크루즈미사일 16기를 탑재하고 1만km를 비행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해 훈련은 상당한 노림수가 있다. 무엇보다 동해는 지정학적으로 태평양과 북극해로 진출할 수 있는 출구이기 때문이다. 북극해가 해빙되고 북극 항로가 열릴 경우 동해는 교통요충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양국 해군은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 자위대를 직접 견제할 수 있다. 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해군 제7함대는 일본 요코스카항을 모항으로 두고 있다.

    게다가 동해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비롯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요충지다. 양국 해군은 북한으로부터 보급품을 조달받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북한 나진항 3호 부두를 50년간 임대한 바 있다. 중국도 나진항 1호를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중국은 하얼빈에서 훈춘까지 고속철도를 건설해 나진을 통한 동해 진출 교두보를 확보한 상태이며, 러시아도 나진-하산 간 철도 보수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나진항까지 연결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6월 나진항에 드나드는 대형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보조함대를 항구에 주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빤히 보이는 중·러의 속셈

    동해는 수심이 깊어 한반도 주변 4강 잠수함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돼왔지만,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기 때문에 음파탐지기(소나)를 이용한 잠수함 추적이 어려운 해역이다. 일본 잠수함이 지난해 8월 동해에서 은밀하게 정보를 탐지하다 러시아 함정에 발각돼 도주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러시아 잠수함이 지난해 7월 초 함경북도 청진시 앞바다에서 갑자기 부상하는 바람에 북한 경비정과 어선이 뒤집혀 해군 11명, 어민 8명이 사망했다는 미확인설이 나돌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러시아 해군의 동해 연합훈련을 상당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중국 함정들이 대한해협을 통해 동해까지 가는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 함정의 대한해협 통과는 미국이나 일본이 유사시 대한해협을 봉쇄할 경우를 상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 해군은 또 이번 동해 훈련에서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섬 사이 소야해협을 통과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훈련도 실시할 계획이다. 중국 해군은 그동안 일본 오키나와섬 남부의 미야코해협을 통과해 태평양으로 나가는 훈련을 해왔다. 앞으로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한다면, 해군력을 동원해 일본열도를 포위하는 전략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중국 해군은 이번 동해 훈련을 위해 이미 각 함대의 정예함정들을 차출해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러시아도 중국과 협력을 통해 자국 해군력을 대한해협을 거쳐 남중국해 등으로 손쉽게 투사할 수 있게 된다.

    양국 해군의 동해 훈련은 한반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동해 훈련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고 볼 수도 있다. 동해는 110년 전 러일전쟁의 무대였지만 지금은 미·일과 중·러 간 패권다툼의 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지만, 자칫하면 4강의 힘겨루기에 한반도가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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