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2015.06.22

도쿄서 열린 신은미 ‘통일토크 콘서트’

삼엄한 경비, 이어지는 강경 발언…“맥주 맛있다고 했다 고무찬양됐다”며 국보법 비판

  • 장원재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입력2015-06-22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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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서 열린 신은미 ‘통일토크 콘서트’

    6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 통일토크 콘서트’에서 재미교포 신은미 씨가 강연하고 있다.

    6월 16일 오후 5시 40분. 일본 도쿄 기타(北)구 호쿠토피아 15층 페가수스 홀. 한국말을 하는 이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니 1000엔(약 9000원)씩 내고 소책자를 받은 뒤 입장했다. 입구에 앉은 안내원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다 행색이 다소 이상하면 “어디서 왔느냐” “어떻게 왔느냐”고 한국말로 물었다. 일본인 몇 명은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들은 “일일이 체크하더니 일본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라.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실내는 컴컴했고, 상당수 의자가 이미 차 있었다. 무대에는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 통일토크 콘서트, 재미동포 아줌마 일본에 오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신은미 씨에 대한 한국 뉴스가 흘러나왔다. 보수단체로부터 항의를 받는 모습, 한국에서 강제 출국되는 모습 등이 차례로 이어졌고,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분위기는 다소 경직된 편이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신씨의 강연 도중 일어난 폭발물 테러를 의식해서였을까. 곳곳에 건장한 안내요원이 배치돼 있었다. 취재용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돌아다니는 이들은 주최 측으로 한정돼 있었고, 자유롭게 취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나는 심령술사가 아니다” 변명도

    오후 6시, 행사가 시작됐다.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신은미 씨는 “아줌마는 무서울 게 없다”며 거침없이 말을 시작했다. 신씨는 이날 강연 중 상당 시간을 할애해 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북에서 본 동포들의 아름다운 모습, 따뜻하고 정 많고 순박한 삶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얘기했는데 언론에서 허위 왜곡 보도를 내보내면서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를 했다”며 가슴을 쳤다. “(북한의) 대동강맥주가 그저 그렇더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아주 맛있었다고 한 게 고무찬양이 됐다.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천하의 악법 중 악법”이라는 정부 비판도 이어졌다.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설움도 털어놨다.

    “원래 친척 결혼식과 돌잔치 때문에 한국에 간 김에 토크 콘서트를 하게 된 거다. 그런데 종북이라 보도되니 집에도 오지 말고 결혼식, 돌잔치에도 오지 말라는 카톡(카카오톡)이 왔다. 어머니까지 ‘당분간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 남한에서는 가족애보다 반공이 최고 가치다.”

    국내에서 “북한 사람들이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고 희망에 차 있는 게 보였다”고 말해 문제가 됐던 것을 두고는 “어느 나라든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면 국민들이 희망에 차 있고 좋아질 거라고 기대 안 하나”라고 반박했다.

    한국 강연장 앞에서 반대 집회를 하던 이들에 대해서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가는 곳마다 비슷한 얼굴의 할아버지들이 ‘북으로 가라’고 하더라. 얼핏 들으니까 일당을 받으신다는 것 같더라. 노인 복지가 잘돼 있다면 추운 겨울에 돈 몇 푼 받으려고 나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도쿄서 열린 신은미 ‘통일토크 콘서트’

    ‘종북 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재미교포 신은미 씨가 1월 10일 강제 출국에 앞서 인천 중구 공항로 인천국제공항정부합동청사 출입국사무소에서 지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같은 날(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는 그를 환영하는 인사들과 반대 시위자들이 뒤섞여 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씨가 묘사하는 북한은 일반 상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고급 레스토랑, 독일 사람도 감탄하는 수제 생맥주 전문점에서 멋을 부린 여성들이 어울려 맥주를 마시는 모습, 건설 붐으로 높이 올라가는 빌딩들, 많은 차가 다니는 평양거리, 시골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 황북 사리원에 있는 성불사를 방문한 경험을 얘기하면서 강연 도중 홍난파의 가곡 ‘성불사의 밤’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날 행사자료에 따르면 신씨는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6번 북한을 방문한 뒤 인터넷 언론에 북한 여행기를 50여 차례 기고했다. 연재 원고를 바탕으로 책 3권도 냈다.

    신씨의 여행기에 대해서는 북한 정부가 보여주는 것만 보고 현실을 제대로 모른 채 북한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심령술사가 아니다. 마음을 읽을 줄 모른다. 그들(현지인)이 해주는 말 그대로, 보이는 것 그대로 남녘 동포에게 전달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기사 마감시간 때문에 강의만 보고 자리를 떴으나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북한 동포가 굶주린다는데 북한 모습을 얼마나 아느냐”는 질문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나는 여행자로 간 사람이며 그런 중요한 일들은 더 깊이 연구하시는 분이 많이 있으니 그분들의 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내게 편지를 보내온 탈북자 중 70~80%가 고향(북한)이 다시 받아준다면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북에서 가졌던 절대적 빈곤보다 남에서의 상대적 빈곤에서 오는 상실감, 모욕감, 자괴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게 종북이라면 종북 하겠다”

    이날 행사에는 재일교포 200명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채웠다. 주제 때문이었을까,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서 ‘종북 강연’으로 규정하며 참가를 금지해서였을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관련한 교포가 많아 보였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신씨 말에 크게 호응하는 모습이었다. 크게 박수를 치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다. 호응이 좋아서인지 강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씨는 다소 흥분한 듯 언성이 높아졌다.

    “예전에 북에 대해 냉철하고 차가웠고 그들을 미워했는데 정 많고 사랑스러운 동포들을 진정 사랑하게 됐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게 종북이라면 종북 하겠다. 그렇다면 종북이야말로 조국과 민족이 통일을 이루는 실천에서 절대적 선을 실현하는 길이다.”

    질의응답을 앞두고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분위기가 산만해졌다. 회의장을 떠나려다 마지막 자료 화면을 찍기 위해 캠코더를 꺼냈다.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한 남성이 다가와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소개받아 왔다”고 답하자 “누구 소개냐”고 재차 물었다. “그것까지 말해야 하느냐”고 하자 다소 당황하더니 “(촬영한 영상을) 페이스북이나 그런 데 올리면 안 된다”고 했다.

    행사를 주최한 6·15 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는 조총련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단체다. 신씨는 이 단체 주최로 가나가와, 교토, 오사카, 효고 등 일본 각 지방을 돌며 6월 20일까지 토크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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