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2015.06.22

바이러스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가난하면 더 아픈 현실…불평등은 사회적 자본 잠식, 부유층 건강에도 악영향

  •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5-06-22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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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러스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6월 15일부터 부분 폐쇄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로비 앞에 줄 지어 선 빈 휠체어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난리다. 전염병은 소득수준이나 계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전염병에 대한 대처는 그렇지 않았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은 5월 30일 14번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은 뒤 900여 명을 격리했고 이후에도 확진환자가 나올 때마다 접촉이 의심되는 사람을 격리나 관찰 대상 명단에 추가했다. 하지만 응급실 이송요원은 대상자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정규직원이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섰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박 시장을 향해 “흑색선전과 계급 선동을 중단하라”고 비난했다. 메르스 사태가 급기야 계급투쟁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일까. 삼성서울병원의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기 전 사회학자인 권영숙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미 ‘질병은 설사 그것이 전염병일지라도 결국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평소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빈민층이 부유층보다 전염병 감염 고위험군에 속하고, 국립의료원이 메르스 거점병원이 되면서 서민층 환자 100여 명이 병상을 비워야 했다는 게 그 이유다.

    모든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건 사회과학의 상식이다. 같은 사회에서 빈자가 말라리아, 폐렴, 에이즈(후천면역결핍증) 등 감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부자보다 높다. 질병의 계급성은 전염병에 한정되지 않는다. 만성질환도 계급적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비만도가 높고,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으며,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낮다.

    불평등이 일으키는 사회적 병리현상

    한국에서는 빈곤층의 흡연 비율이 부유층보다 높고, 담뱃값을 올렸을 때 금연율은 빈곤층이 더 높았다. 김진영 고려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교육수준, 소득 등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20대부터 시작해 70대까지 계속 확대된다. 평생에 걸쳐 질병은 계급적이다. 건강과 질병의 사회성을 연구하는 많은 사회학자가 빈곤을 질병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질병만이 아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미국의 경우 대략 연봉 7000만 원)까지는 돈이 많으면 행복감도 그에 비례해 높아진다. 국가별 비교 연구에서도 부유한 국가의 행복도가 가난한 국가의 행복도보다 높다. 범죄 희생양이 되거나 범죄 행위에 가담할 확률도 빈자가 부자보다 높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심지어 경제적 궁핍은 아이큐 같은 인지능력도 떨어뜨린다.

    그러나 불평등이 일으키는 여러 사회적 병리현상은 가난한 사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불평등이 빈곤층 문제로 제한된다면 부유층에게 불평등은 감성적 불편함이나 도덕적 이슈일 뿐 그들이 당면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평등은 사회 전체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예를 들어 불평등이 심해지고 빈곤층이 늘어나 이들의 건강이 악화되면 의료보험에서 빈곤층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지출이 늘어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빈곤 구제를 위한 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불평등 증가로 범죄가 늘면 치안에 소요되는 자원이 늘어난다. 불평등은 사회의 신뢰를 낮춰 메르스 사태 같은 위기대응의 효율성도 떨어뜨린다. 이 모두가 사회 전체가 세금을 걷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고, 추가 재정수요의 큰 부분을 부유층에서 담당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병리학자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과 케이트 피킷(Kate Pickett)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건강 문제를 비롯한 사회병리 현상의 발생 빈도와 확률이 높다. ‘그래프1’에서 가로축은 소득 불평등 수준이고, 세로축은 건강과 여러 사회문제를 종합한 지수다. 이 지수는 기대수명, 영아사망률, 비만율, 정신질환, 알코올 및 마약 중독, 문맹률, 살인, 수감률, 10대 임신, 신뢰도, 사회이동지수 등을 종합한 것이다. 세로축 위치가 높을수록 전체 사회의 병리현상이 크다. ‘그래프1’에서 나타나듯 소득 불평등과 사회병리지수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불평등이 가장 큰 미국의 사회병리지수가 가장 높고 불평등이 낮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사회병리 지수가 전반적으로 낮다.

    부유층도 불평등을 줄이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이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회 전체의 간접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윌킨슨과 피킷의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은 빈곤층뿐 아니라 부유층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프2’에서 가로축은 지역 내에서 소득 수준이고 세로축은 사망률이다. ‘그래프2’의 실선은 불평등 수준이 높은 지역의 평균이고, 점선은 불평등 수준이 낮은 지역의 평균이다. 모든 지역에서 부유층의 사망률이 빈곤층보다 낮다. 그런데 불평등이 낮은 지역은 불평등이 높은 지역과 비교해 모든 계층에 걸쳐 사망률이 낮다. 불평등을 낮추면 빈곤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과 부유층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반대로 불평등이 높은 지역의 부유층은 낮은 지역의 부유층보다 더 높은 건강상 위험에 직면한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부유층의 건강을 악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 불평등과 사회병리 현상의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인지에 대해서도 학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윌킨슨과 피킷은 높은 불평등이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한 경쟁을 지나치게 심화하고 사람들 간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등 사회적 관계를 악화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불평등은 사회적 자본을 잠식하고, 이는 빈자와 부자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사회적 자본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한국 사회가 곱씹어야 할 내용이다.

    질병의 계급성을 줄이는 길

    바이러스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응급차 이송요원이 옮기는 전염병에 대해서는 똑같이 위험하다. 삼성서울병원 용역업체 이송요원이 비정규직이어서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게 질병의 계급성을 드러냈다면, 이로 인해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감염 위험이 확대된 것은 계급의 문제가 어떻게 사회 전체 문제로 전환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 사례 하나는 우연히 겹친 단순 실수일 것이다. 설령 비정규직 차별이 상존하더라도 삼성서울병원과 정부에서 관리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평등이 높고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 그래서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이 같은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가능성을 낮추는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 질병의 계급성을 줄여 모두가 안전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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