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6

2015.05.04

헉!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아직?

각 기업들 정부 기준 핑계 생활용품에 사용 중…정확한 안전보장 대책 없어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5-04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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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공식 추가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판정위원회’가 2014년 7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피해자 1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망자 36명 중 17명의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이 ‘거의 확실’ 또는 ‘가능성 높음’으로 판정됐다. 이로써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총 92명이 됐고, 지금도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논란은 2011년 4월 촉발됐다. 서울에서 산모와 영·유아 등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잇달아 사망하자 보건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폐질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 유해물질’로 밝혀졌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이 그것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이들 성분을 포함한 가습기 살균제로 동물흡입실험을 한 후 ‘PHMG, PGH가 주성분인 제품들과 폐 손상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환경부는 2012년 9월 PHMG, CMIT, MIT를, 2013년 5월에는 PGH를 유독물로 지정했다.

    이후 이 물질을 사용했다고 알려진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 가습기 살균제 6종은 질병관리본부의 수거 명령에 따라 자취를 감췄고, 이들 성분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물티슈, 샴푸, 콘택트렌즈(렌즈) 세척액 업계도 이들 물질을 더는 제품에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씻어내면 괜찮다” 주의사항 미비



    그렇다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이 유독물들은 정말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일까. 기자는 이런 의문을 풀고자 직접 대형마트를 찾아가 확인해봤다. 4월 20일 방문한 서울 성동구 이마트 왕십리점에선 가습기 살균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점원은 “2011년 논란 이후 가습기 살균제는 아예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1년 PHMG를 사용해 물의를 빚었던 A가습기살균제 제조사 관계자는 “살균제에 구아니딘 계열(PHMG, PGH) 성분은 이제 못 쓴다. 4년 전 소비자 불매운동 때문에 회사가 거의 폐업할 뻔했다”고 털어놨다.

    그다음으로 이마트 매장 안에 있는 20여 종의 물티슈를 점검했다. 제품 포장 뒷면에 적힌 성분을 일일이 확인했다. 환경부가 지정한 유독물 성분은 없었다. 당시 MIT를 사용해 논란이 된 S물티슈의 제조사 관계자는 “물티슈 업계에서 유독물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당시 국가기술표준원이 고시한 안전기준 내에서 사용했지만 여론에 밀려 성분 사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유독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물티슈를 생산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행사용 사은품 등 비판매용 물티슈 일부 제품에는 제품성분 표기가 없어 유독물질이 들어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유독물질 CMIT와 MIT가 함유된 제품은 판매되고 있다. 샴푸, 보디워시 등이 그것이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목욕용품 대부분에 이 성분이 포함돼 있다.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한 성분인데 어떻게 버젓이 진열대 위에서 팔리고 있는 것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계자는 “CMIT, MIT는 살균제처럼 기체 상태로 흡입했을 때 한해 독성이 밝혀진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가 2015년 3월 개정 고시한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CMIT와 MIT 혼합물의 사용 한도는 CMIT와 MIT 비율을 3 대 1로 한 혼합물에 한하며, 사용 후 씻어내는 제품에 0.0015%’라고 명시돼 있다. 이 성분들을 사용한 U사 관계자는 “우리 제품은 규정대로 CMIT와 MIT 혼합액을 전체 용액의 0.0009%만 사용하기에 문제없다”고 설명했다.

    PHMG, PGH 등 구아니딘 계열 물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PHMG와 성분이 비슷한 염산폴리헥사메틸렌비구아니드(PHMB)의 희석액은 콘택트렌즈 세척액에 흔히 사용되고 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는 3종류의 렌즈 세척액을 판매했고, 모든 제품 용기에 ‘염산폴리헥사메틸렌비구아니드 20%’라고 표기돼 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PHMB는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일기 전 유독물질로 지정됐지만, 제품 제조나 생산에 이르기까지 환경부가 일일이 점검하거나 허가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식약처가 고시한 ‘의약외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에 따르면 20% 희석된 PHMB 용액은 물 100ℓ에 0.5㎖가 들어가야 검액으로 쓸 수 있다. 렌즈 세척액 제조사 J업체 관계자는 “이 기준치 내 성분은 제품 사용시에도 안전하다”고 밝혔다.

    일일 권장사용량 표기해야

    문제는 일부 소비자가 PHMB가 들어간 렌즈 세척액과 코 세척 용도의 식염수를 혼용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주부 정유인(34·가명) 씨는 “아기 콧속을 씻는 식염수가 다 떨어져 렌즈 세척액을 찾았다. 알고 보니 렌즈 세척액은 PHMB로 인한 흡입 독성이 있더라. 그런데 용기 뒷면에 ‘렌즈 세척 외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잘 보이지도 않게 너무 작게 표기돼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PHMB는 2013년 유럽화학국이 ‘흡입하면 사망(Fatal if inhaled)’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상당히 둔감한 편이다. PHMB가 들어간 렌즈 세척액을 판매하는 J업체 관계자는 “렌즈 세척액으로 콧속을 세척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라며 “식염수는 1ℓ에 약 1000원, 우리 제품은 13㎖에 약 3000원인데 비싼 세척액을 누가 코 세척에 쓰겠나”라고 말했다. 해당 제품에는 ‘이 액은 눈에 직접 적용하거나 복용하지 말 것’이라고만 쓰여 있고, 다른 용도에 대한 주의사항은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렌즈 세척액을 판매하는 B업체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의약외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이라 문제없다. 우리 제품의 PHMB 농도는 100㎖에 0.13mg으로 극소량이며 PHMB가 없으면 렌즈 세척 자체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각 기업은 PHMB, CMIT, MIT 등 환경부가 지정한 유독물질의 사용에 대해 “정부에서 허가한 기준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용도에 알맞게 사용하면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경현 영남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2011년 덴마크 코펜하겐대학병원의 미샤엘 룬도프 교수팀의 ‘메틸이소치아졸리논 접촉 알레르기와 복용 반응 관계’ 논문에 따르면 화장품, 페인트 등에 사용된 CMIT, MIT가 공기에 노출돼 알레르기성 피부염, 천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제품에 있는 성분이 기화(氣化)해 공기 중 전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개인마다 쓰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일일 권장사용량 기준이 필요하고, 코에 갖다 대거나 흡입하지 말라는 등의 주의사항을 더 명확히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독물질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소비자가 개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경현 교수는 “살균제, 물티슈 등을 쓸 때는 성분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 위생 때문에 관련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망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아기가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제품은 오히려 피부질환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성분이 잔존하지 않게 마지막에는 항상 깨끗한 물로 닦아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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