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5

2015.04.27

협업과 조정 이끌어내는 지휘체계 일원화

태스크포스에게 필요한 통일의 원칙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4-27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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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과 조정 이끌어내는 지휘체계 일원화

    미국 육군 야전교범 ‘TACTICS(전술)’.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는 ‘통일’에 대한 선호가 깊이 침투해 있다. 맞춤법 통일안에서부터 음식점에서의 메뉴 통일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하나로 맞추려 한다. 하지만 정작 업무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효과적으로 통일성을 구현해내는 것 같지는 않다. 복잡한 사안을 두고 협업하거나 전문 영역에서 의견을 조정할 때 드러나는 능력의 수준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전쟁영화나 첩보물을 보면 ‘지휘체계(Chain of Command)’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명령체계의 정점을 하나로 유지한다는 ‘지휘통일(unity of command)’ 원칙을 계서(階序)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전략, 군사작전, 전술 등의 영역에서 모든 부대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목표’다. 목표가 없는 부대는 없다. 그렇지만 이 목표는 똑같지 않다. 다른 목표를 각자 추구하는 것은 전투력의 낭비이고, 따라서 각 목표를 통합된 상위의 목표나 필요한 최종 상태(end state) 형태로 엮어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지휘통일의 원칙이다.

    ‘결정적 장소’를 찾아라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 명의 책임 있는 지휘관이 모든 부대를 통제하는 것’이다. 미군 야전교범 ‘TACTICS(전술)’는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휘관이 ‘결정적 장소’에 위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정적 장소에서 이뤄지는 직접 지휘가 지휘통일의 가장 우선적인 원칙이라는 것이다. 물론 결정적 장소인지가 어디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지휘관 몫이다. ‘TACTICS’는 △적과 접촉 가능한 곳으로 이동하라 △지속적으로 상황 변화를 판단할 수 있는 곳을 찾아라 △과감한 행동으로 주도권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현대 군사작전이 정치, 경제, 사회 현상까지 고려하게 되면서 군 조직의 경계도 느슨해졌다. 오늘날 통합작전 지휘본부 내에는 정부, 민간기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온 다양한 인원이 함께 일한다. 협력이 필요한 작전을 수행할 때 전체 조직을 통제하려 애쓰기보다 각 조직의 필요를 파악해 지원하고 조정하는 게 더 높은 차원의 지휘라고 지휘통일의 원칙은 강조한다. 임무와 지휘관의 의도를 중심으로 권한을 분배하고 각 부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자산을 적절한 시점에 지원하는 것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지휘관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갈 수는 없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지휘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히 제시하는 데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각광받는 기술이 ‘작전설계(Operational Design)’라는 개념이다. 수용자의 직관을 중시하는 디자인업계의 이론에서 차용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해 사용자가 눈으로 보고 “아, 이건 의자구나” 하고 알아서 앉게 만드는 디자인이 가장 우수하다는 취지다. 작전계획도 그렇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전에 적용하고자 미 육군은 2000년대 초반 샤넬 디자이너를 초빙하기도 했다.

    이제 비즈니스 현장이다. 펩시코 최고경영자(CEO)였던 존 스컬리가 1983년 애플에 스카우트됐을 때 가장 어색해했던 것은 임원과 직원이 같은 식당, 사무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는 리더가 현장에서 일하는 애플 기업문화가 오늘날 아이폰을 탄생케 한 원동력 중 하나라고 말한다.

    협업과 조정 이끌어내는 지휘체계 일원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3월 30일 공개한 페이스북 신사옥 내부. 사무실을 분리하지 않고 2800여 명 직원이 하나로 연결된 초대형 사무공간에서 함께 일하도록 설계됐다.

    이 때문에 최근 세계적 기업의 CEO들, 예컨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나 페이팔의 맥스 레브친은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의 옆자리에 책상을 놓고 일한다. 기업, 부서, 다양한 전문가를 연결하고 조화하는 조정자 노릇이 이들의 몫이다. 첨단기술을 다루는 업종일수록 리더가 현장을 벗어나면 안 된다. 갈등과 협력, 마찰과 조정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야말로 ‘결정적 장소’인 셈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의사결정과 실행은 모두 현장에서 이뤄진다.

    2001년 미국 9·11테러는 연구가 거듭될수록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는 분석이 늘고 있다. 예방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1996년 설립된 미 중앙정보국(CIA) ‘대테러센터’의 기능 상실을 꼽기도 한다. 테러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던 두에인 클래리지가 소장으로 임명되고 중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로버트 바에르를 영입했음에도, CIA 작전국과 중동지국의 비협조로 대테러센터의 기능이 거의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테러센터의 통제권을 놓고 벌어진 조직 간 알력이 아니었다면 빈 라덴의 테러 네트워크를 사전에 색출할 수 있었으리라고 진단한다. 주도적 기관에 의한 강력한 통제와 지휘체계의 일원화는 언제나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목표와 임무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면 실패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가시화’가 중요한 이유

    이를 헷갈리지 않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가치와 비전이다. 가치와 비전을 가시화하는 작업과 관련해 고(故) 스티브 잡스만큼 다양한 일화를 가진 인물은 드물다. 1981년 어느 날, 잡스는 매킨토시 운영체제 개발팀을 찾아가 부팅시간이 느리다면서 더 단축할 것을 주문했다. 엔지니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잡스는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만약 그걸로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당신은 부팅시간을 10초 줄일 방법을 찾아보겠죠?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죠. 매킨토시 사용자가 500만 명이 되고 나면 그들이 절약한 10초는 1년에 3억 분이 될 겁니다. 그건 100명의 일생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요!”

    결국 그 엔지니어는 부팅시간을 28초 앞당기는 데 성공한다. 다른 의견과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의 핵심은 가치와 비전을 보여줘 스스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가시화 능력이야말로 협업과 조정을 통해 미래 기업을 이끌어갈 리더의 필수 덕목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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