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5

2015.04.27

쫄깃하고 고소한 내장 음식의 왕

서울에서 먹는 소 양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4-27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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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깃하고 고소한 내장 음식의 왕

    서울 종로1가 ‘청진옥’의 해장국.

    맹수는 먹이를 잡으면 내장부터 먹는다. 살집이 가장 얇아 먹기 쉽고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한다. 내장은 육식의 종착점이다. 살코기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와 맛을 가진 내장을 가장 즐겨 먹는 민족은 단연 한민족이다. 간이나 처녑(천엽) 같은 내장은 아예 날것으로도 먹는다. 살코기를 날로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는 외국인에게 내장 회는 하드코어 음식에 속한다.

    소 내장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부위는 단연 양이다. ‘고려사’(1451년 완성) ‘최안도’전에는 마계량(馬系良)이란 사람이 우두(소의 위)를 즐겨 먹는 탓에 ‘말이 소를 먹는다’고 비웃었다는 기록이 있다. 어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1450년쯤 출간)에는 양을 꿀이나 탁주를 넣고 삶은 팽양이나 솥 안에 참기름을 조금 넣고 쪄낸 증양, 양으로 만든 식해인 양해 등 양으로 만든 다양한 조리법이 등장할 정도로 양은 오래전부터 먹어왔고 조선시대 내내 내장의 왕으로 군림했다.

    소의 첫 번째 위인 양의 중간에 있는 두툼한 부위는 양깃머리라 부르는데 일반 양보다 가격이 비싸다. 소는 원래 풀을 먹고 자란다. 위 속에 사는 박테리아가 풀을 분해해 소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양은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특성 때문에 강하고 졸깃한 맛을 낸다. 하지만 최근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만들기 위한 곡물 사료가 발달하면서 양의 기능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좋은 양은 풀을 먹고 자란 소에게서 나온다. 풀을 먹고 자라는 뉴질랜드산 양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양 가격은 만만치 않다. 서울 중구 을지로 ‘양미옥’은 좋은 재료를 사용해 가격은 좀 비싸지만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양미옥’ 양구이는 양념을 발라주는 형태다. 몇 년 전 질 나쁜 내장에 양념을 사용한다는 논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한민족은 오랫동안 고기나 내장을 구울 때 양념을 발랐다. 재료 질의 좋고 나쁨은 식당 개개의 문제다.

    쫄깃하고 고소한 내장 음식의 왕

    서울 중구 다동 ‘부민옥’의 양곰탕(왼쪽)과 양무침.

    마포구 합정동의 ‘합정동 원조 황소곱창구이’집도 유명하다. 두툼한 특양(양깃머리)과 상대적으로 얇지만 고소한 양을 섞어서 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양념하지 않은 양을 불판에 올리고 마지막에 양념 가루를 뿌려주는 게 특징. 그래서 이 집에선 양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양은 이전에는 구이보다 찜이나 탕으로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중구 다동에는 양무침으로 유명한 ‘부민옥’이 있다. 5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양무침은 삶은 양을 버섯, 양파 등과 함께 무쳐 낸다. 구우면 쫄깃해지는 양은 삶으면 부드러워진다. 채소와 식감도 잘 맞고 간도 적당하다. 양을 넣고 맑은 탕처럼 끓여 낸 양곰탕도 별미다. 양을 건져 수육처럼 양념에 찍어 먹는다. 저녁이면 양 안주에 술을 먹는 사람이 많다.



    고려대 근처 동대문구 용신동에 있는 ‘개성집’ 양무침은 삶은 양을 후추와 소금으로만 살짝 간하고 오이, 대파, 양파, 풋고추, 붉은 고추를 양과 같은 크기로 썰어 버무린 뒤깨를 뿌려 낸다. 재료 맛에 충실한 음식이다. 원래 양은 담요처럼 쭈글쭈글하고 검다. 해장국집에서는 양 껍질을 벗기지 않고 국에 넣어 끓이기 때문에 양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종로1가 ‘청진옥’은 양과 선지로 만든 해장국이 좋다. 선지의 부드러움과 양의 쫄깃한 식감이 잘 어울린다. 개운한 국물과 내용물의 균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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