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4

2015.04.20

“첨단 도시 서울을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만들자”

기술에 예술 더하는 뉴미디어 아트 선두주자 조성현

  • 최충엽 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albertseewhy@gmail.com

    입력2015-04-20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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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 도시 서울을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만들자”
    “연주가는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이잖아요. 피아노를 포함한 악기 대부분은 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게 최선이지만, 과연 미래에도 악기를 제자리에서 손으로만 치게 될까요. 방방 뛰어다니며 지구 반대편에서도 몸으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성현(34·사진) 작가는 빛과 소리의 마술사라 불린다. 그가 태권도 시범에서나 쓸 법한 두툼한 ‘사운드 가드(Sound Guard)’라는 장치를 손에 끼고 춤을 추면 주위에서 소리와 빛이 신비롭게 반응한다. 관객의 박수 소리나 심장 박동에 따라 소리 강도와 울림이 달라지기도 한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무관심한 사람이 보면 마술쇼를 떠올리거나 나이트클럽의 테크노 DJ로 오해할 법하다.

    조 작가처럼 멀티미디어 환경을 적극 활용해 관객과의 상호작용(인터랙티브)을 이끌어내는 예술가를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예술가들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돌이나 철 같은 재료를 써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냈다면, 미디어 아트의 재료는 전기와 비트로 이뤄진 ‘미디어적 환경’ 그 자체다. 1980년대 백남준 작가가 비디오 영상을 캔버스로 활용한 이후 시작된 젊은 작가들의 도전이 기술 발전에 따라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사운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

    조 작가는 웬만한 정보기술(IT) 전문가처럼 최신 테크놀로지에 정통하다. 그가 쓰는 사운드 가드에는 환경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와 이를 제어하는 각종 칩셋이 연결돼 있다. 이러한 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한 건 기존에 없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다. 그는 “빛과 소리를 만들고 제어하는 과정에서 많은 작가가 그동안 쌓아놓은 오픈 소스(open source)를 활용한다”며 “이 모든 기술은 내가 직접 배우고 코딩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조 작가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그의 관심 분야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같은 가짜 소리’, 즉 디지털 사운드다. 조 작가는 “보통 미디어 아트라고 하면 시각적인 걸 떠올리는데 사실 시각을 제어하는 건 청각이다. 인간은 시각에 압도되기보다 소리가 주는 상상력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매력에 빠진 조 작가는 네덜란드에서 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전자공학을 전공한 동생으로부터 하드웨어를 배웠으며,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익혀 이른바 ‘융합적 미디어 환경’을 적극 활용하는 아티스트로 활약하게 됐다. 이 분야는 최근 예술 영역을 뛰어넘어 널리 주목받고 있다. 조 작가는 “내가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사운드 가드는 웨어러블 컴퓨팅 개념과 서로 통한다. 융합을 고민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는 첨단에 서 있는 미디어 생산자이자 소비자”라고 했다. 조 작가에 따르면 최근 미국 MIT(미디어랩)와 스탠포드대(디-스쿨) 등 유수 명문대에서 미디어 분야 연구가 각광받고 있다. MIT 미디어랩에서는 공학 지식에 예술적 사고를 융합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인간 뇌를 컴퓨터처럼 분석해 뇌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눈동자로 움직이는 마우스, 감정을 이해하는 컴퓨터 등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기도 개발 중이다. 컴퓨팅 기술과 인간의 접점을 넓혀 인간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게 이곳의 구상이다.

    “첨단 도시 서울을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만들자”

    조성현 작가가 제작한 사운드 랜턴(왼쪽)과 직접 만든 사운드 가드를 끼고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조성현 작가.

    조 작가는 이러한 흐름을 스스로 깨닫고 작품으로 표현해내는 아티스트다. 나아가 작품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미디어 퍼포밍 아트’ 분야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작가가 없을 때는 설치미술이지만, 그가 참여하면 퍼포먼스가 되는 특징을 지닌다. 조 작가가 건축가로서,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사운드 전문가로서, 그리고 전자공학과 프로그래밍 기술자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해 개발한 장르다.

    조 작가의 이런 작품에는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아이들이 쉽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랜드마크가 될 만한 설치작품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일을 들려줬다. 당시 조 작가는 임시 철골 구조물을 사용해 외형을 만들고 비닐과 조명, 그리고 전자 장치 등을 사용해 거대한 악기를 완성했다. 마치 거인국에 존재할 법한 웅장한 규모의 이 작품은 멋진 조명까지 갖춰 작은 마을을 밝히는 화려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장착한 전자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였다. 기이한 소리에 대한 민원이 제기돼 공무원이 점검차 출동하게 된 것. 이 위기 상황을 해결한 것은 해당 공무원의 자녀였다. 현장에 나갔던 공무원은 자신의 아홉 살배기 자녀와 친구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신기한 미디어 기기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게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의 조화

    조 작가의 작업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과학자, 엔지니어들도 많은 관심을 표한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아마도 사물인터넷(IoT)이나 웨어러블 기기 등 첨단 분야를 연구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엔지니어는 기술적 완성도에 집착하지만 아티스트는 사용자 관점에서 이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과거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는 미국 뉴욕에서 바이올린을 질질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조 작가는 대선배의 도전보다 더욱 전복적인 미디어 행위예술을 꿈꾼다. 그는 “대한민국 서울은 무선네트워크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더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가 등장해 서울을 첨단기술뿐 아니라 예술로도 각광받는 도시로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첨단 도시 서울을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만들자”

    영상과 소리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하게 해주는 조성현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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