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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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히피’에게 보내는 모든 시대의 경의

한대수 트리뷰트 앨범 ‘Rebirth’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4-13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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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히피’에게 보내는 모든 시대의 경의

    4월 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대수 40주년 기념’ 앨범 감상회 및 공연 간담회. 왼쪽부터 가수 강산에, 한대수, 손무현.

    4월 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한대수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리뷰트(tribute·헌정) 앨범 ‘Rebirth’와 4월 25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공연, 그리고 노래 가사와 악보, 에세이를 엮은 책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을 동시에 발표하는 자리였다.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 신곡 ‘My Love’에 대해 한대수는 “이 앨범에 신곡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옛날 노트를 뒤졌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갓 귀국한 후 종로의 한 음악다방에서 공연을 시작한 한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 아무리 젊은 세대라도 그의 긴 머리와 히피 스타일의 차림새에 익숙할 수 없을 때였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음악다방 DJ였다. 음악에 대한 호감은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연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한대수의 하숙방에 와서 살림도 도맡았던 모양이다. 단벌 신사였던 자신의 바지를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빠는 모습을 보며, 20대 초반 한대수는 ‘내 사랑은 꿈같이 내 옷 빨아주지요’로 시작되는 노래를 썼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다. 곡은 미완성 상태로 누렇게 변해가는 노트 속에 40년을 머물렀다. “가사를 다시 보니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회견장에서 한대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대수의 미발표 곡을 포함해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등 대표곡 13곡이 담긴 ‘Rebirth’는 여러 면에서 기념할 만하다. 애초 기획 자체가 음반 제작사에 의해 시작된 게 아니다. CBS 프로그램 ‘라디오 3.0 이병진입니다’에서 1974년 발표된 한대수 1집 40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음반을 만들기로 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지난해 5월 시작된 이 기획은 제작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방송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청취자와 소통하며 진행된 기획은 11월까지 이어졌고, 소셜펀딩과 팬클럽 후원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한대수 3집 ‘무한대’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던 손무현 한양여대 교수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자신의 제자들로 밴드를 꾸려 사운드 기반을 닦았다.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이자 ‘사랑과 평화’로 요약되는 1960년대 히피 정신을 한국 대중음악에 불어넣었던 이 위대한 선배를 위해 후배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였다. ‘Rebirth’에 참여한 음악가들 면면은 화려함을 넣어 우리 대중음악의 계보를 보여준다. 음악감상실 ‘쎄시봉’ 시절부터 한대수의 친구였던 조영남이 에코브릿지가 편곡한 ‘바람과 나’를 불렀다. YB는 ‘행복의 나라’를 동시대적 포크록 사운드로 들려주고, 이현도는 ‘물 좀 주소’를 일렉트로니카로 재창조했다. 전인권이 ‘자유의 길’을, 강산에가 ‘옥의 슬픔’을 원곡 이상으로 뽑아낸다. 호란과 이상은은 각각 ‘그대’와 ‘One Day 나 혼자’를 여성 목소리로 흘려보낸다.

    한대수는 그들 사이에서 40년 동안 발효된 굵직하고 흐트러진 육성을 입힌다. 여느 리메이크 혹은 트리뷰트 앨범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거장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원곡에 대한 이해, 탁월한 해석이 한데 어우러진다. 한대수 또한 팔짱 끼고 근엄하게 인사를 받는 대신 그들과 함께 놀며 영원한 청춘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앨범의 백미는 1997년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에 담겼던 ‘Run Baby Run’이다. 로큰롤 스타일 원곡을 김목경, 김도균, 신대철, 손무현이 기타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했다. 이 호쾌하되 각자 개성이 뚜렷하게 살아 있는, 근래 드문 기타 배틀에 기자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좋은 해석이란 좋은 텍스트가 있을 때 가능하다. 대중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1999년의 한대수는 그때도 이런 곡들을 만들어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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