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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오바마와 하메네이 악수는 너무 이르다

핵협상은 IS 격퇴 위한 ‘전략적 합의’…양측 다 강경파 반대에 시달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오바마와 하메네이 악수는 너무 이르다

미국과 이란의 냉각된 관계가 서서히 해빙하고 있다. 두 나라는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점거와 인질사건으로 단교한 이래 그동안 국제사회를 통틀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당시 이란 과격 시위대가 미국대사관에 난입해 외교관과 직원 수십여 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인질사태는 1981년 1월 444일 만에 종료됐지만 양국은 아직도 감정의 앙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평화주의자로 유명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조차 지난해 90세 생일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이란을 공격해 세계지도에서 아예 사라지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인질들의 생명을 고려해 참아야 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특히 이란이 2002년부터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자 미국은 강력한 제재조치를 단행하며 ‘이란 옥죄기’에 앞장서 왔다. 이 때문에 이란은 미국을 ‘거대한 사탄’으로 불렀고 테헤란에선 반미시위가 일상생활이 됐다.

절대 타협할 수 없을 것 같던 핵협상이 4월 2일 잠정 타결되면서 ‘견원지간’이던 양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란 국영방송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핵협상 타결 특별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란 국영방송이 미국 대통령의 연설 전체를 생방송한 건 1979년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해 이란회교도혁명을 일으킨 이래 처음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부터 이란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천명해왔다. 200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연설에서도 “불량정권의 지도자들과도 만날 수 있다”며 북한, 쿠바와 함께 이란을 지목한 바 있다. 또한 그는 2013년 9월 27일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뉴욕에 온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15분간 전화통화를 해 직접 접촉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중동 출구전략의 결정적 카드?



이후 미국과 이란은 비밀협상을 벌이는 등 핵문제 해결에 공을 들여왔고, 이번 잠정 합의안으로 마침내 결실을 도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을 타결하고자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이스라엘과의 갈등도 무릅쓰고 있고, 중동 지역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왕정국가들의 반발도 감수하고 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고 중동 지역에 장기적인 안정을 가져올, 일생에 한 번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바마 대통령의 신념과 비전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 이란 핵협상 타결은 그가 이러한 자신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핵협상 타결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은 백악관이 이란과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격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IS는 이라크, 시리아는 물론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무차별 테러를 감행하는 등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IS를 소탕하려면 대규모 미군 병력의 투입이 필요하나, 이를 반대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이란을 개입시켜 IS 격퇴에 나서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실제로 최근 IS가 점령하고 있는 이라크 티크리트에 대한 탈환작전은 이란 특수부대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가 주도했다. 이란 정부도 “우리 도움 없이 IS를 완전히 격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같은 시아파인 이라크 지도부와 손잡고 IS 격퇴 작전을 적극적으로 벌인다면 미국으로선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다. 이란은 같은 시아파인 시리아 지도부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또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01년 9·#129;11 사태 직후에도 미국과 이란은 반(反)탈레반 전선을 구축하고자 관계 개선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러한 그간의 흐름을 감안하면 미국은 올해 말로 예정된 아프간 병력 철수 이후 이란이 탈레반의 득세를 어느 정도 제어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백악관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탈(脫)중동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의 외교정책 핵심은 중동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서 원유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조만간 원유와 천연가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는 크게 낮아지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전쟁으로 국력을 상당히 소진했고,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중동 지역에서 이어진 반미 정서 고조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때문에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와 리비아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 한 것도 사실. 이란 핵 문제가 해결될 경우 미국은 골치 아픈 중동 지역에서 한 발 뺄 수 있고, 이는 중동 출구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강력한 반발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美·이란의 딜레마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강경파 수장인 하메네이는 이란에서 가장 철저한 반미주의자다. 그는 1960년대부터 이란 국왕 퇴진운동에 뛰어들어 호메이니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이 됐고, 79년 이란회교도혁명 이후 이슬람공화당 사무총장과 혁명수비대 차관 등 요직을 거쳤다. 하메네이는 81년 마무드 알리 라자이 당시 대통령이 폭탄테러로 살해된 후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해 89년까지 재임했다. 호메이니가 사망한 뒤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하메네이는 지금까지 반미주의를 앞세우면서 국가를 통치해왔다. 하메네이가 그동안 미국과의 핵협상을 물밑 지원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로하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개혁 노선을 지지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하메네이가 로하니 대통령의 유화정책을 지원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로 이란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세계 4위 산유국이지만 경제제재 탓에 수출을 제대로 못해 2012년부터 3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또 이란 리얄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물가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 실업률도 계속 높은 수치를 보여왔다. 국제유가 하락은 이러한 어려움을 한층 가중했다. 국민의 불만이 갈수록 고조하는 상황에서 하메네이 역시 더는 핵개발을 고수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간 핵협상에 대한 강경파의 불만을 잠재워온 하메네이는 6월 말 최종합의 때까지 또다시 강경파 달래기에 나서야 한다.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군부와 성직자, 상당수 의원은 모두 하메네이를 추종하는 강경파. 이들은 이란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면 반드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메네이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페르시아의 봄’을 말하기에는 너무 성급한 셈이다.



주간동아 2015.04.13 983호 (p66~67)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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