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2015.02.09

박수근의 정겨움과 이중섭의 열정이 한곳에

서울미술관 ‘거장’전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2-09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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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의 정겨움과 이중섭의 열정이 한곳에

    이중섭의 ‘환희’.

    꽃으로 둘러싸인 배경 안에 푸른색 수탉과 붉은색 암탉이 있다. 서로 마주 보며 춤을 추는 듯, 다정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중섭의 회화 ‘환희’다. 지난해 5월 한국을 방문한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는 서울미술관에 들러 이 작품을 감상했다. 그 자리에서 소장자인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으로부터 “부군이 일본에 사는 아내를 떠올리며 완성한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미술품 수집가인 안 회장은 서울미술관 설립자이기도 하다. 제약회사 말단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시절부터 월급을 쪼개 그림을 사온 그는, 평생에 걸쳐 수집한 ‘거장’의 작품을 모아 미술관을 세웠다. 그리고 지금 그 여정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거장’이다.

    2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의 ‘환희’를 비롯해 박수근, 천경자, 장욱진,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등 한국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작가 36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작 하나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박수근의 대표작 ‘우물가’도 그중 하나다. 빨래가 널린 초가집 풍경과 그 앞 우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정겨운 색채와 향토적인 질감을 통해 박수근이 왜 ‘국민화가’로 불리는지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단순한 구도 안에 해학을 담아 한국적 추상화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꼽히는 장욱진의 ‘까치와 아낙네’,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등 우리 현대화의 다양한 얼굴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것도 즐겁다. 2012년 서울미술관 개관기념전에 등장했던 이중섭의 ‘황소’도 이번 전시를 통해 또 한 번 관객 앞에 선을 보인다.

    박수근의 정겨움과 이중섭의 열정이 한곳에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연작 중 ‘십자가를 지고’(왼쪽)와 ‘수태고지’.

    2층에서는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 모두가 서울미술관 소장품이라는 점에서는 ‘거장’전에 포함되지만, ‘오, 홀리나잇!’이라는 별도 제목을 붙여 꽤 실한 ‘별책부록’처럼 꾸몄다. 김기창 화백은 6·25전쟁 중 전북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성화(聖畵)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그 결과물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를 알리는 순간부터 예수의 탄생과 수난, 부활, 승천에 이르는 삶의 과정이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 안에 담겨 있다. 마리아는 녹색 치마에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으로, 예수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선비로 표현돼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서울미술관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한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과 이어져 있다. 전시를 감상하면 한옥과 계곡, 숲이 어우러진 이 공간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문의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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