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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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 두 번 죽이는 비정규직 대책

‘4년 뒤 정규직 되려나?’ 희망고문…고용 보장 없는 ‘속 빈 강정’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1-26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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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그래’ 두 번 죽이는 비정규직 대책

    권영순 고용노동부 정책실장이 2014년 12월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제 청년 취업자 5명 중 1명은 계약직인 시대다. 1월 14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 중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졸업 또는 중퇴하고 처음 가진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던 만 15∼29세 청년은 76만1000명으로 전체 청년 취업자의 19.5%였다. 이 비중은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1.2%였다가 2009년 12.4%, 2010년 16.3%, 2011년 20.2%로 급격히 증가했다. 2011년부터는 4년째 2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정규직 일자리가 단기 계약직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도드라졌고, 사회생활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청년 취업자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통계청의 ‘비정규직 고용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은 607만7000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32.4%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남성(46.5%)보다 여성(53.5%)이 많고 사업서비스업과 건설업, 도소매업에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2년 연장, 고통도 2년 연장?

    높은 비정규직 비중으로 인한 고용 불안과 차별,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2014년 12월 29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남용과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고자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35세 이상 기간제 및 파견(비정규직) 근로자가 원할 경우 현행 2년에서 최장 4년까지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 방안이 담겼다. 기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보호법)은 기간제 근로자의 근무 기간이 2년을 넘으면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종합대책안이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간 격차를 해소하고, 기업의 정규직 채용 문화 확산 및 정규직 전환 기회 확대를 통해 고용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다면 이 대책의 당사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 중견기업에서 비정규 사무직으로 1년 4개월째 근무하는 최모(29) 씨는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대해 “비정규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내놓은 발상”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원래 2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2년이 되기 전 퇴사 후 재입사하는 형태로 고용을 이어간다고 한다. 법이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기업들은 어떤 꼼수를 써서라도 비용 절감 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비정규직을 4년으로 연장해버리면 3년 11개월 일하고 잘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는 전모(31) 씨는 2년 넘게 일했지만 제대로 된 계약서 대신 서약서를 썼다고 한다. 사내외에서 업무상 문제를 일으켰을 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 그대로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서약서였다. 그는 “열심히 하면 정규직을 해줄 것처럼 말해 추가 수당 없이 야근과 주말 근무를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규직이 된 동료를 본 적 없어 정규직 전환에 회의적이다. 비정규직 근로 기간 연장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규직 채용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4년은 가혹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거나, 지금의 2년을 1년으로 단축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장그래’ 두 번 죽이는 비정규직 대책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일명 ‘장그래 죽이기 법’으로 불린다.

    정규직 일자리 계속 사라져

    ‘장그래’ 두 번 죽이는 비정규직 대책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비정규직은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합리한 차별, 임금 차별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사는 물론 정부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의 의견도 달라 3월 합의가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태다. 노사정위가 논의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관련 법령 개정이 추진될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지난번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발표 이후 아직까지 관련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동계 대표로 노사정위에 참여한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1월 20일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 대리권’을 주겠다는 것은 환영하지만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 기간 연장은 반대한다”고 했다. 정부가 계약 기간 2년을 4년으로 늘리면 정규직 전환이 늘 것으로 봤지만, 전환이 안 된다면 2번의 계약으로 8년이 지나간다는 것. 김 위원장은 “기간 연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계약 기간 종료 후에는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1월 2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상시적 근무를 하는 비정규직이 그나마 2년 뒤에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 기간을 4년으로 늘린다는 것, 그리고 이후 잘려도 10%의 비용을 지불하는 정도로 해서 결국 정규직 전환에 대한 희망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면서 “정부의 종합대책안대로 계속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전보다 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다른 의미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반대하고 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직무대행은 1월 19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정부가 해고의 절차와 기준을 명확히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데, 근로자들이 반발하면 가이드라인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반 해고의 절차와 기준은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 연장에 대해서는 “기업 처지에서는 4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라면 ‘밥값’을 하는 시기인 데다 기업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해고하기 어렵다. 직원을 새로 뽑는 게 돈이 더 든다는 걸 아는 정부가 시점을 4년으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카트’의 클라이맥스에서 대형마트 비정규직 근로자 선희(염정아 분)는 “저희가 바라는 건 저희를 좀 봐달라는 겁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라고 외쳤다. 정부는 지금 하루하루가 생존인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희망고문을 할 게 아니라 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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