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7

2014.12.15

서금회 약진 우연이냐 필연이냐

우리은행·대우증권 CEO에 연쇄 낙점, 관치 금융 논란 불러

  • 김형선 내일신문 기자 egoh@naeil.com

    입력2014-12-15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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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금회 약진 우연이냐 필연이냐
    ‘서금회’(서강금융인회 :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가 연말 금융가를 들었다 놨다. 새해를 앞두고 이뤄진 굵직한 금융권 수장 인사에서 유력 후보가 탈락하고 갑작스레 부상한 서금회 인사가 낙점되는 사례가 연이었다. 12월 5일 우리은행 차기 행장직에는 애초 유임이 유력하던 이순우 행장을 제치고 이광구 우리은행 개인고객담당 부행장이 최종 내정됐다. 4개월간 공석이던 KDB대우증권 신임 사장 자리는 11월 26일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겸 부사장이 꿰찼다.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서금회 멤버라는 점, 그리고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선임됐다는 점이다.

    석연치 않은 과정 거쳐 선임

    우리은행장과 대우증권 사장 선임 과정은 한 편의 반전 드라마였다. 11월 초까지만 해도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연임은 거의 확실한 듯 여겨졌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청와대에 이 행장을 1순위로 한 행장 후보군을 올린 후 “사인이 안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반전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 구성이 예상보다 늦어지더니 이 행장의 연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으로 발전했다. 행추위가 가까스로 구성됐지만 행추위원들이 상견례를 하기도 전 서강대 출신 이광구 부행장의 차기 행장 내정설이 터졌다. 결국 이 행장은 12월 1일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며 이 부행장 내정설이 기정사실화됐고, 5일에는 행추위원들이 이 부행장을 행장 후보로 최종 내정했다.

    서금회 약진 우연이냐 필연이냐

    12월 5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왼쪽)은 ‘서금회’ 멤버인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의 차기 행장 내정설과 관련해 “시장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며 “인선은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대우증권 사장 선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진행됐다. 김기범 전 대우증권 사장이 7월 말 돌연 사의를 표한 후 4개월 동안 공석이던 사장직 후보군으로 이영창 전 부사장과 홍성국, 황준호 부사장의 3파전이 시작됐다. 당초 이 전 부사장이 선두주자로 꼽혔지만 예정됐던 주주총회가 돌연 연기되는 파행이 벌어졌다.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외부 입김이 작용했다는 전언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더니 서강대 출신 홍성국 부사장의 사장 내정설이 언론을 탔다. 공식 절차와 상관없이 터진 내정설이었지만 대우증권 이사회는 홍 부사장을 차기 사장으로 내정해 내정설을 ‘사실’로 만들어줬다.

    처음엔 눈에 띄지 않던 인물들이 연이어 금융권 수장 자리를 가져가자 서금회가 판을 뒤흔든 최대 배후로 꼽혔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후보는 서강대 경영학과 76학번,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은 정치외교학과 82학번이다. 박 대통령의 모교라는 점을 배경으로 서금회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선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이 거론되다 못해, 청와대 고위인사가 금융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언론을 달궜다. 정가에서 정윤회 문건으로 청와대가 도마 위에 오를 때 금융가에서는 서금회를 연결고리로 한 신관치(新官治) 의혹으로 역시 청와대가 입방아에 올랐다.



    금융권 최고 ‘빽’으로 떠오른 서금회는 2007년 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융권 동문들이 결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이다.

    서금회 논란이 거세지자 서금회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친목모임에 불과한 서금회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금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해온 한 인사는 “서강대 출신들은 고려대 같은 끈끈함이 없어 금융권 사람들끼리 알고나 지내자는 뜻으로 만든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첫 멤버는 10여 명 선이었고 모임 결성 후 3~4년이 지나도록 참석자는 20~30명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서금회 약진 우연이냐 필연이냐

    9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노조 투쟁상황실에서 열린 ‘관치금융 철폐 및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 분쇄를 위한 금융노조 2, 3차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에서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왼쪽).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원들이 9월 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종합운동장에서 관치금융 철폐와 정부의 금융공기업 정상화 대책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친목모임일 뿐…무슨 힘 있겠나”

    그러나 미미하던 서금회는 대선 분위기가 달궈진 2012년부터 극적으로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해 9월 열린 서금회 모임에는 300여 명이 넘게 참석했고, 이런 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1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송년회에는 서금회 멤버 100여 명이 모였다.

    멤버 면면도 화려하다. 현 회장은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경영·76학번·이하 학번), 전 회장은 박지우(정치외교·75) KB국민은행 부행장이다. 그 외 이덕훈(수학·67) 한국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수학·71), 김병헌 LIG손해보험 사장(경영·76), 황영섭 신한캐피탈 사장(경영·77) 등도 회원이다.

    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경영·80), 이정철 하이자산운용 사장(경영·76), 정은상 GS자산운용 전무(사학·81), 남인 KB인베스트먼트 사장(경제·76), 김홍달 OK저축은행 수석부사장(경영·76) 등도 멤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모임에는 정치권 인사도 참여하고 있다. 서병수(경제·71) 부산시장은 서금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금융인은 아니지만 18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됐다. 서 시장은 새누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물이다. 이렇듯 금융인뿐 아니라 정치인까지 참여하고 있다 보니 서금회가 금융권 인사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파워로 작용한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서금회 논란을 지켜본 금융가 사람들은 격세지감을 토로한다. 박 대통령 정권 초에는 서강대 출신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인데, 이제는 서강대 천하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정권 초를 되짚어보면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서강대 출신으로 실속 있는 자리에 올랐을 뿐, 이후로는 특별히 눈에 띄는 인사가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 출신 금융지주 회장 4명이 ‘4대 천왕’으로 불리며 온갖 잡음의 원천이 됐다는 점을 의식한 듯, 서강대 연줄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실제 이덕훈 행장은 1년 반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 도전했지만 서금회와 서강바른금융인포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낙마했다. 이 행장은 당시 “실력으로만 평가해야 하는데 서강대 출신이라서 역차별을 받는 것 같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로 금융가 사람들은 정권 3년 차 진입을 꼽는다. 정권 초에는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에 부담을 줄 만한 논란이 제기되면 알아서 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권력 기세가 꺾이는 3년 차를 앞두고는 어떤 논란이 있어도 자리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이 더 세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유력 후보 낙마→서금회 멤버 내정설→공식 낙점 수순으로 흘렀던 우리은행, 대우증권 CEO 선임 과정에서 서금회를 배경으로 한 관치·정치·청치(청와대발 관치) 금융 논란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서금회 멤버에게 자리가 돌아간 것을 보면서 하는 말들이다.

    우리금융지주 임원을 역임한 한 인사는 “1년 반 전만 해도 VIP(대통령)가 거론되는 어떤 논란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눈치 볼 것 없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면서 “정권 3년 차로 들어가면 막판 자리 챙기기가 심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조심스레 분석했다.

    눈치 볼 것 없이 자리를 챙기는 분위기는 비단 우리은행이나 대우증권 CEO 선임 과정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최근 선임된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도 청와대부터 금융위원회까지 온갖 배경설이 난무해 비판 여론이 들끓었던 인사다.

    정권 3년 차 진입으로 분위기 달라져

    서금회 약진 우연이냐 필연이냐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당시에도 역시 우리은행, 대우증권 때처럼 공식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하영구 내정설’부터 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이 하영구 내정설의 배경이었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가 나서 신관치를 비판하며 전국은행연합회 회원인 은행장들의 총회를 저지하는 상황까지 갔지만 은행장들은 인근 호텔로 옮겨 차기 회장으로 하 회장을 선출했다.

    상황을 지켜본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이 정도 반발이 있으면 하영구 씨가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솔직히 놀랐다”면서 “여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분위기로 미뤄보면 금융권 인사를 둘러싼 관치 금융 홍역은 최근 사례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연말에 은행권 임원 인사가 대폭 이뤄질 예정인데, 일부 임원은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정관계에 줄을 대려는 과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장들이 정관계 줄을 타고 온 마당에 임원들도 살기 위한 자구책을 찾는 셈이다.

    내년 3월에는 서진원 신한은행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비교적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어 이들 두 수장의 연임이 유력시되지만 거센 신관치 물살에 어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농협금융지주도 내년 자회사 CEO를 대폭 교체할 전망이다.

    인사난맥상을 바라보는 금융인의 심정은 씁쓸하다. 시중은행의 한 본부장급 인사는 “최근 신관치가 금융을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격하했다”고 말했다. 금융사 수장 인사가 구멍가게 운영하듯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에 참가하는 한 대학교수도 “금융권 인사에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저마다 줄 대기에 나서는 분위기가 더는 지속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 ‘서금회 좌장’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아무것도 아닌 모임을 왜…무슨 의도냐”


    서금회 약진 우연이냐 필연이냐
    “아무것도 없는 조직을 갖고…. 유령이 있는 것 같아요. 서금회는 청와대 실세와 교류하거나 금융권 인사에 관여하거나, 그럴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서금회’(서강금융인회)의 좌장으로 알려진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사진)은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금융권 안팎에서 불거진 서금회 논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서금회의 최연장자(수학·67학번)이자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이 행장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과 교류하며 최근 금융권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뒷말이 금융계에 무성하다.

    이 행장은 이와 관련해 “이 비서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누군지도 잘 모른다. 언론을 통해 ‘저런 분이 있구나’ 하는 정도밖에 모른다”고 강조했다.

    서금회가 현 정부 핵심 세력으로 부상해 금융권 요직을 차지한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동창들이 모여 밥 먹는 모임을 두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다”며 “서금회는 정관도, 조직(체계)도, 회계도 없는, 아무 조직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후보 등 최근 서금회 멤버가 연이어 CEO에 선임된 것과 관련해 그는 “‘우연’이 아니라 실력으로 된 것”이라며 “두 사람이 외부 출신도 아니고 부사장, 부행장이 사장, 행장이 됐는데 뭐가 이상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서강대 출신인데 서강대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할 수 없으니 서금회라는 이름을 붙여 얘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행장은 “서강대 경제대학원 초빙교수를 할 때 연락을 받고 서금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하지만 올해 한국수출입은행장이 되고 나서는 바빠서 한 번도 못 나갔다”고 말했다.

    정임수 동아일보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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