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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팔수록 손해…그래도 만든다

저단백밥과 특수분유·점자촉각 그림책 등 ‘따뜻한 적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팔수록 손해…그래도 만든다

정혜진 씨는 집에 늘 즉석밥 햇반을 잔뜩 챙겨 놓는다. 밥을 안 먹으면 하루도 못 견디는 ‘토종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 일반적인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딸을 위해서다. 정씨의 딸은 페닐케톤뇨증(phenylketonuria·PKU)을 앓고 있다. 신생아 6만 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성 질환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착한 제품’

이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선천적으로 아미노산(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다. 단백질 성분인 페닐알라닌을 먹으면 대사산물이 체내에 축적돼 장애가 생기고, 심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콩, 고기, 생선, 달걀 등 우리가 흔히 ‘음식’이라고 여기는 무엇도 먹을 수 없다. 심지어 쌀밥에 들어 있는 단백질조차 금물이다. 한평생 철저한 식이관리를 하며 살아야 하는 딸에게 정씨가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는 음식이 햇반. CJ제일제당이 2009년 전국에 200명 남짓한 PKU 환자를 위해 ‘햇반 저단백밥’을 내놓은 덕분이다.

단백질 함유량이 일반 제품의 10분의 1 수준인 이 제품을 개발하는 데 CJ제일제당은 약 8억 원을 투자했다. 별도 효소 처리 등을 위해 생산라인을 따로 관리하는 등 추가 비용도 적잖다. 까다로운 공정 탓에 완성품을 폐기하는 경우도 있다. 연간 매출은 5000만 원 미만이다. 일반 상품이라면 당장 판매를 중단할 상황이다. 그러나 햇반 저단백밥은 꾸준히 시장에 나온다. 이 밥이 없으면 위기에 놓이는 사람들 때문이다. 정씨는 “햇반이 나오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판매하는 저단백 전분미를 구해 밥을 해 먹이거나, 가격이 햇반의 너덧 배씩 되는 일본 즉석밥 제품을 공수해 먹였다. 맛도 떨어지고 구하기도 힘들어 아이를 고생시킬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CJ제일제당 햇반팀 김병규 팀장은 이에 대해 “햇반 저단백밥을 생산하는 건 일종의 재능기부”라며 “일반 햇반을 생산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특수질환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밥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윤과 무관하게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팔수록 손해…그래도 만든다

매일유업과 CJ제일제당이 후원하는 PKU 가족캠프와 CJ제일제당의 햇반 저단백밥,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팔수록 적자가 쌓이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착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은 더 있다. 1999년부터 15년째 특수분유를 생산하고 있는 매일유업도 그중 하나다. 매일유업은 특정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성분을 보충한 특수분유 8종 10개 제품을 꾸준히 생산 중이다. 이 역시 PKU를 포함한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자를 위해서다. 특수분유의 생산, 공급 과정은 녹록지 않다. 질환별로 제한해야 하는 아미노산 종류가 달라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설비를 세척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린다. 환자 수가 적다 보니 연간 판매량은 수천 캔 수준인데, 생산 공정상 소량 생산이 불가능해 최소 2만 캔씩 세상에 나온다. 매년 80%가량이 생산과 동시에 폐기 처분된다.



다섯 살배기 PKU 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미연 씨는 “아이가 PKU 진단을 받은 뒤부터 줄곧 매일유업 분유를 먹여 키웠다. 일반 우유와 비교하면 아무 맛도 없는 그 분유를 우리 아이는 정말 맛있게 먹는다”며 “기업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산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목이 메었다. 김씨에 따르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제한적이다. 채소 위주의 반찬을 골고루 먹이려 하지만, 간장에도 콩단백질이 들어 있어 희석해 사용하다 보니 풍부한 맛을 느끼게 해줄 수가 없다. 고단백 영양 보충은 꿈도 못 꾼다. 이처럼 영양 보충 방법이 제한적인 PKU 환자들은 특수분유를 평생에 걸쳐 먹는다고 한다.

기존에 매일유업이 생산하던 특수분유는 생후 3세까지 먹을 수 있는 1단계 제품으로, 이 나이가 지나면 환자들은 값비싼 수입제품을 들여와 먹어야 했다. 한 PKU 환자 어머니는 “어떤 때는 통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이를 2주일 동안 굶기다시피 한 일도 있다. 식품이다 보니 유통기한이 짧고 가격은 비싸 제때 음식을 챙겨주기가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매일유업은 이런 이들을 위해 2011년 4세 이상 환아를 위한 2단계 특수분유 제품도 내놓았다. 이 역시 상당량이 폐기되지만 꾸준히 생산 중이다. 매일유업 노승수 차장은 “수익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우리 회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서 ‘정감떡방’(032-327-8585)을 운영하는 박형기, 강소이 부부는 선천성 대사질환자들에게 떡을 해주는 이들이다. 강씨는 “지인의 자녀가 PKU 환자인데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남편과 함께 단백질이 들어가지 않는 떡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이들은 수개월간 연구 끝에 햇반 저단백밥과 전분, 소금의 ‘황금비율’을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떡볶이떡과 가래떡, 절편 등을 생산한다. 강씨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아이들 입맛에 맞는 떡을 만들려고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를 맛봤다가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일반적인 분유 맛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 먹일 게 너무 없어

팔수록 손해…그래도 만든다

점자와 일반 글씨가 함께 실려 있는 창비의 점자촉각 그림책 ‘점이 모여 모여’ ‘열두 마리 새’ ‘나무를 만져보세요’(위부터).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그는 “맛있는 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저단백 떡이라도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며 “쌀가루 대신 밥으로 떡을 하는 게 쉽지 않지만, 백설기를 만드는 방법도 개발 중”이라고 했다. 이곳은 부모가 햇반 저단백밥을 보내주면 그걸로 떡을 만든다. 받는 비용은 전분 구매비 등 최소한의 공임과 택배비가 전부다.

김미연 씨는 “이 떡으로 떡국을 끓이거나 떡볶이를 하면 아이가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저단백 밀가루가 없기 때문에 아이에게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는 간식은 이 떡 정도가 전부”라며 “떡집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가 우리에게 정말 큰 기쁨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을 위해 ‘따뜻한 손해’를 감수하는 출판사도 있다. 창비는 ‘책 읽는 손가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시각장애 어린이를 위한 점자촉각 그림책을 내놓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 그림책은 내용이 글씨와 점자로 함께 적혀 있고, 그림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손으로 만질 수 있다.

2007년 창비아동문고 출간 3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획을 시작해 2008년 첫 책 ‘점이 모여 모여’를 냈고, 2012년 세 번째 책 ‘열두 마리 새’가 출간된 상태다. 천지현 창비 어린이그림책팀 편집자는 “점자촉각 그림책은 양장본 책에 비해 제작시간은 2배, 제작비용은 4~5배 더 들지만, 더 많은 이가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정가는 일반 그림책 수준으로 책정했다”며 “공정이 어려워 많은 책을 내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콘텐츠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열두 마리 새’는 2011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라가치상 대상을 받은 김희경 작가의 작품이다. 천 편집자는 “대형서점 어린이 코너에 시각장애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 그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더불어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봤다. 출판사로서는 비용 측면에서 부담도 없지 않지만, 이 책들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더 많은 책이 출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4.12.08 966호 (p42~4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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