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4

2014.09.15

4개 외국어 능력 시험 1년 동안 흘린 땀 ‘유종의 美’

인터넷 화면에 ‘합격(APTO)’ 글자로 스페인어 성공적인 통과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09-15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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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 외국어 능력 시험 1년 동안 흘린 땀 ‘유종의 美’

    김원곤 교수가 4차례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에 응시하며 사용한 참고서적들과 전자수첩들.

    드디어 1년여에 걸친 긴 도전의 마지막 시험일이 다가왔다. 2012년 5월 26일 토요일이었다. 말하기 시험은 그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 3시 45분으로 정해졌다. 시험 장소는 서울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였다.

    아침 9시 시험 시간에 맞춰 시험 장소인 경희대 한의과대 건물로 올라가니 다니던 스페인 전문학원의 담당 강사가 격려차 나와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시험장 앞에 붙은 안내문에는 그날 내가 치르는 B2 등급 시험에 총 311명이 응시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 수험생들을 1층에서 4층까지 4개 강의실에 나눠 배정했으니 시험장당 80명 정도 수험생이 입실한 셈이었다.

    “할아버지도 시험 보세요?”

    그래서인지 중고교 교실에서 치른 앞선 세 번의 시험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수험장도 상당히 컸고, 그만큼 시험 감독관도 여러 명 배치됐다. 정해진 책상에 앉으니 시험 접수할 때 스캔해서 보낸 신분증 복사본이 자리에 놓여 있었는데, 수험생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험생 수가 많아서인지 시험감독 방법도 그 나름대로 엄격했다. 이전 세 번의 시험에서는 허용되던 필통조차 책상 위에 둘 수 없었다. 연필과 볼펜, 그리고 지우개(수정액 포함) 외에는 모두 강단 쪽에 둬야 했다. 9시에 시작된 독해와 작문 시험은 11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각 영역에 할애된 정해진 시간은 없었으나 쓰다 보니 독해에서 1시간, 작문에서 1시간을 소요했다.



    독해와 작문 시험이 끝나고 2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다녀와 교실 앞에 잠시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여학생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나를 아는 학생인가 싶어 눈을 맞추며 약간 다가섰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도 시험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직설적인(?) 표현에 약간 당황했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미소를 참지 못하고 여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부모를 따라 칠레에서 2년 반가량 생활하다 얼마 전 귀국한 초등학생이었다. 문득 생각하니 그 여학생이 그날 그곳에서 시험을 치른 수험생 중 가장 어린 것 같았다.

    그래서 “네가 오늘 수험생 중 최연소자겠구나” 하고 말을 건네니 뜻밖에 ‘최연소자’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 아닌가. 세대 차이인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생활하다 막 돌아온 탓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어린 여학생 덕에 힘든 시험 중에도 즐겁게 ‘망중한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고 11시 20분 시험이 다시 시작됐다. 청취와 문법·어휘 시험이었다. 먼저 청취 시험을 마치니 시간이 12시에 가까웠다. 이어 1시까지 문법·어휘와 관련한 필기시험이 진행됐다. 평소 자신 있는 분야였지만 예상보다 문제가 어려웠던 데다 몇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느라 집중도가 약간 떨어진 탓에 간신히 시간에 맞춰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렇게 첫날 필기시험은 그럭저럭 끝났다.

    그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 일찌감치 말하기 시험 장소인 경희대 정경대 건물을 향해 출발했다. 시험장 앞에서 머리를 정리하며 얼마간 기다린 후 오후 3시 30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준비실로 들어가 10분 동안 말하기 주제를 추첨했다. 그리고 추첨한 ‘오늘날의 젊은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내용을 정리했다.

    3시 45분 말하기 시험 장소로 이동하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 시험관과 부드러운 인상의 여자 시험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관 한 명은 직접 수험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시험관은 옆에서 수험생 이야기를 듣고 평가하며 채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스페인어 학습에 관한 의례적인 이야기를 잠깐 나눈 뒤 첫 시험 과제로 4컷 만화를 보고 상황을 설명하고 시험관과 롤플레이를 하는 과제를 진행했다. 약간 긴장해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열심히 준비한 덕분인지 큰 문제는 없었다. 두 번째로 ‘오늘날의 젊은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정작 발표를 시작하니 긴장한 탓인지 목도 마르고 한두 차례 준비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무난히 해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발표 주제에 대한 질의응답과 의견 피력 시간을 가진 뒤 공식적인 시험을 모두 끝냈다. 말하기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4시쯤 됐다. 긴장이 일시에 풀리면서 상당한 피로가 느껴졌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나조차 당락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무난히 합격할 것 같다가도, 문득 청취와 말하기로 이뤄진 제3영역에서 발목이 잡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다. 사실 스페인어 능력 평가시험의 당락 여부가 내 일상생활이나 미래 계획에 무슨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앞선 세 번의 시험을 모두 한 번에 합격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하는 욕심이 없을 수 없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긴 도전 성공

    4개 외국어 능력 시험 1년 동안 흘린 땀 ‘유종의 美’

    스페인어 능력 평가시험 델레 B2 합격증.

    8월 초 드디어 합격자 발표가 났다. 인터넷 홈페이지 화면에 먼저 ‘APTO’(합격)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불가능할 것 같던 1년간의 긴 도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 고생스러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벅찬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세부 점수를 확인했다.

    제1영역에서 독해는 예상대로 20점 만점에 18.33점 고득점을 했다. 작문도 웬만큼 점수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점수가 높게 나와 15점 만점에 14.25점으로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아마 나 나름대로 고급 어휘를 사용하려고 노력한 점과 스페인 속담을 글에서 여러 번 인용한 것이 채점관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었다.

    제2영역은 20점 만점에 15점 득점으로 오히려 예상보다 점수가 낮게 나온 편이었다. 시험 전 두 차례 모의고사를 포함해 수차례 기출문제를 풀 때마다 16~18점을 받았던 데다, 관련 시험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 만큼 사실 이보다는 높은 점수를 예상하고 있었다.

    제3영역에서는 역시 청취 점수가 가장 나빴다. 15점 만점에 8.75점으로 만점 대비 58% 정도의 득점이었다. 관건은 회화였다. 30점 만점에 25.5점 득점으로 만점 대비 85% 정도라 상당히 흡족했다. 결과적으로 청취에서 부족한 점수를 회화에서 만회하겠다는 작전이 성공한 셈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스페인어 능력 평가시험까지 성공적으로 통과함으로써 1년 동안 4개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의 도전은 그야말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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