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2014.09.01

양심 불량 먹거리 딱 걸렸어!

‘먹거리 X파일’ 진행자, 쓰레기봉투 뒤지고 잠복 취재로 먹거리 사수

  • 김진 채널A 기자 holyjjin@donga.com

    입력2014-08-29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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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 불량 먹거리 딱 걸렸어!

    채널A ‘먹거리 X파일’ MC 김진 기자.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 대전의 한 음식점 거리 뒷골목. 가게 문이 모두 닫힌 고요한 밤 고양이처럼 작전은 시작됐다.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손놀림은 누가 볼까 바빠졌고, 음식물 쓰레기 악취와 얼굴에 자꾸 꼬이는 파리와의 사투는 벌써 몇십 분째였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의 신경은 온통 쓰레기봉투에 집중됐다. 타깃은 냉동돈가스 포장지다.

    ‘요리사가 직접 손으로 정성 들여 만든 수제 돈가스’라고 홍보하며 다른 가게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고 판매하는 한 유명 음식점의 쓰레기봉투에서 ‘냉동돈가스 포장지’가 대량 발견됐다. 원가 몇백 원짜리 냉동식품이 2만 원 상당의 고급 수제 돈가스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하고 충격적인 현장

    건강한 먹거리를 사수하는 일은 매우 힘들고 피곤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한여름 밤 악취 나는 쓰레기봉투를 견뎌야 할 비위와 걸핏하면 잠복에 부산, 대전, 청주 등 숱한 지방 취재를 버텨낼 체력과 지구력도 필요하다. 믿었던 취재원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수없이 겪었기에 대범한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수다. 같이 취재를 나갔던 조연출은 업체 사장에게 멱살을 잡히고 주먹으로 구타당하기도 했다. 그는 바로 다음 날 이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진행자가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스튜디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의 모습은 취재 현장에선 단언컨대 사치다.

    이번엔 부산의 한 닭 가공업체. 취재팀 여자 팀원이 카메라를 몸에 숨긴 채 닭 가공공장에 잠입했다. 혹여 카메라를 들킬 새라 그는 손으로 카메라를 조심스레 감싸며 취재를 진행했다. 그가 찍어온 화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영상에는 생닭을 가공하던 직원이 수북이 쌓인 닭고기 바로 옆에서 소변을 보고, 소변을 쓸어낸 빗자루로 닭을 자르는 도마를 청소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심지어 여자 팀원에게 소변을 보라고 권하는 모습까지.



    닭 수십 마리를 해동하려고 담아둔 수조 안에는 몇 개월째 청소 한 번 하지 않아 닭기름과 찌든 때, 죽은 파리들이 둥둥 떠 있었다. 며칠치 입맛이 한 번에 달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가공한 닭은 우리가 평소 즐겨 먹는 닭찜, 치킨, 삼계탕으로 탈바꿈돼 유통되고 있었다. 증거를 잡고 경찰서 지능수사팀 형사 십여 명과 공장을 불시에 급습했다. 냉동창고엔 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난 닭이 보관돼 있었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간판 프로그램 ‘먹거리 X파일’의 진행자가 노련한 PD에서 팔팔한 기자로 바뀐 만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 취재를 나가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취재팀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힘들어서 안 될걸요. 스튜디오 녹화에 더빙, 그리고 매일 아침 생방송도 진행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우겨서 시작한 진행자의 현장 취재. 먹거리가 부산에 있으면 아침 생방송을 마친 뒤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다가 취재를 마치고 심야 기차로 올라와 곧바로 출근해 생방송에 들어갔다. 심야에 장대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다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 입술 한쪽이 헐어 있다.

    양심 불량 먹거리 딱 걸렸어!

    유통기한이 3년 넘은 냉동닭의 유통 실태를 취재한 영상을 관련 형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유황오리 농장을 방문해 유황 없는 유황오리 실태를 취재하는 모습. 인류가 지켜야 할 먹거리 ‘맛의 방주’로 선정된 오계탕을 맛보고 있다(위부터).

    최근에는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키즈카페 문제를 방송에서 다뤘다. 이 문제를 다루려고 경기도에 있는 한 시청 위생과를 찾았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 먹거리로 판매하는 음식에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재료를 쓰고 지저분한 위생 상태에서 음식을 조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썩은 냄새가 나는 닭으로 치킨을 만들고, 쓰레기통에서 일회용 조리기구를 꺼내 음식을 만드는 영상을 본 시청 직원은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빠른 시일 내 함께 단속하자는 약속을 받아내고 며칠 뒤 시청 공무원들과 불시 단속에 나섰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위생 상태가 완벽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가장 문제가 많은 곳으로 이미 확인한 곳마저 말짱한 상태로 취재진과 단속 공무원들을 맞았다. 하지만 곧 그 이유가 밝혀졌다. 알고 보니 단속해야 할 공무원이 단속일 하루 전 미리 업체를 돌면서 언질을 준 것이었다. 사인이 잘 안 맞은 한 업체 사장이 “어제도 오더니 오늘도 단속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하지 않았다면 공무원들에게 깜빡 속을 뻔했다. 그 공무원은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망각한 것이 분명했다.

    이렇듯 황당하고, 충격적이고, 피곤하기만 한 현장 취재를 진행자가 직접 챙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현장에서 오는 감동 때문이다. 식당 주인들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밝혀내는 통쾌함이 다가 아니다. 그런 수준 이하의 식당과 선명히 비교되는 착한 식당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착한 도시락’편은 개인적으로 진한 감동을 받은 취재였다.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를 대신해 한식, 일식, 제빵 요리를 배운 삼남매가 의기투합해 차린 작은 도시락 집. 당일 쓸 반찬만 깔끔하게 만들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화학조미료 없이 건강하고 맛있게 만든 도시락. 인스턴트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먹다 남은 음식을 재탕, 삼탕하는 나쁜 도시락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찾은 소중한 ‘착한 도시락’이었다. 삼남매가 만든 표고새우버섯 반찬을 스튜디오에서 먹었을 때의 감동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정직한 음식이 착한 세상 만들어

    ‘착한 물회’편도 마찬가지였다. 물회로 유명한 포항에서조차 다른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로 물회를 만들어 판매할 때, 대구의 한 작은 횟집에서는 고령인 어머니와 몸이 불편한 아들이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직접 회를 떠서 물회를 만들고 있었다. 한 식당 주인은 “누가 알아준다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착한 식당의 고집을 평가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방송에 나갔다.

    결론적으로 그 식당 주인의 말은 틀렸다. 착한 물회 식당과 착한 도시락 집은 ‘대박’이 났고 손님이 무척 많이 몰려 식재료를 공급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착한 음식은 소비자가 알아주게 돼 있다. 당장은 멍청하고 바보 같아 보여도 결국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대다수 식당 주인은 왜 모를까.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하며 영상으로만 보는 감동보다 현장에서 이 착한 식당을 찾았을 때, 그 음식을 먹었을 때, 직접 착한 식당 주인과 인터뷰할 때 느끼는 감동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현장에서 받은 감동과 강한 인상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고스란히 전달할 때 시청자는 더 생생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행자의 현장 취재를 포기할 수 없다. 시청자를 향한 혼자만의 약속인 셈이다.

    황태에 유대인 학살 당시 사용됐던 것과 비슷한 농약이 들어가고, 거봉에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농약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직접 우렸다는 샤브샤브 육수는 화학조미료 덩어리고, 우리가 즐겨 먹는 육포가 원래는 검은색이라는 사실이 방송됐을 때 충격을 받은 시청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무수히 많은 먹거리가 충격적인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 민낯을 드러내려고 오늘도 나는 스튜디오를 벗어나 현장으로 출동한다. 정직한 먹거리가 착한 세상을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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