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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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仁術…몸도 마음도 치유

르포 | 가톨릭 영등포 요셉의원…노숙인 등 한 해 2만 명 진료와 상담

  • 김한빈 인턴기자·고려대 법학과 졸업 novamaruhb@gmail.com

    입력2014-08-1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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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 없는 仁術…몸도 마음도 치유

    서울 영등포역 앞 쪽방촌에 위치한 요셉의원 전경.

    서울 영등포역 앞 ‘쪽방촌’에 자리한 ‘요셉의원’. 1987년 8월 ‘영등포 슈바이처’로 잘 알려진 고(故) 선우경식 원장이 노숙인 등 국민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없거나 진료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곳이다. 요셉의원이라는 이름은 선우 원장의 세례명 ‘요셉’에서 비롯됐다. 현재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의료기관.

    개원 후 진료비가 없어 고생하던 환자 일부를 진료하던 요셉의원은 현재 노숙인, 알코올 의존증 환자, 국민건강보험료 연체로 급여가 정지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를 환자로 받고 있다. 2014년 7월까지 진료 연인원은 56만여 명, 등록된 환자 수만 2만8700명이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던 8월 13일 오후 6시 55분 가난한 자를 위한 의원인 요셉의원 입구와 2층 접수처로 올라가는 통로에 봉사자 2명이 섰다. 이윽고 7시부터 저녁 진료가 시작되자 잦아든 비에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밖에 줄을 선 20여 명이 들어왔다.

    “약국 쪽으로 (줄을) 서줘요.”

    절반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고 목발을 짚은 사람만 셋이었지만 이들은 안내에 따라 가파른 계단을 질서 있게 올라갔다. 환자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가벼운 두통을 앓는 이, 뒷목에 심한 상처를 입은 이, 10년 전 공사장에서 머리를 다쳐 뇌손상을 입은 이….



    한 환자가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갑상샘 질환으로 방문한 2급 장애인 백모(26) 씨. 며칠 묵은 야구모자에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거처를 묻는 질문에 처음에는 인근 고시원에 산다고 하더니 몇 번 더 묻자 “요즘엔 밖에서도 잔다”고 털어놨다.

    “당뇨를 앓다 합병증까지 생겼어요. 무릎 관절까지 안 좋아 고생이죠.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크면서 16세 때부터 껌팔이로 살았어요. 그 후 결혼해선 남편의 폭행으로 고생하다 집 나온 지 20년 됐어요.”

    내과 진료를 받고 나온 한 환자가 기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기구한 삶을 털어놓았다. 편치 않은 몸으로 의원 인근에서 채소 장사를 한다는 이모(65·여) 씨. 그의 얼굴은 부어 있었다. 하루벌이가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자식들에게 수입이 있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서 빠진 상태. 그는 오른쪽 눈을 깜박이며, 몇 해 전 같은 교회 신도에게 맞아 실명된 왼쪽 눈을 보여줬다. 그는 당시의 배신감을 삭이며 “요새는 장사가 빨리 끝나 여기 올 수 있어 무척 좋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등록된 환자 수만 2만8천여 명

    요셉의원 3층 진료실 벽에는 틀니를 했던 환자가 감사하다며 후원을 약속한 편지가 걸려 있다.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의료봉사를 나온 치과의사 이서영(48·여) 씨는 이 방에서 한 환자에게 틀니를 해주며 상냥하게 말한다.

    “여기 환자들은 이 정도(틀니를 할 정도) 상태가 돼야 오세요.”

    이씨가 이곳에서 봉사를 해온 지도 12년. 환자에게 구강 구조를 설명하려고 마련한 치아 모형의 잇몸은 대부분 헐어 있었고 남은 치아 모형도 3개뿐이었다. 그나마 하나는 누워 있었다. 이씨는 병원에 꾸준히 오기 힘든 환자들이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치료법을 고민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치료하려면 환자 본인의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끝까지 이해시키고 더 쉽게 설명하는 것이 어렵죠. 몸이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셉의원에는 과목별로 90여 명의 의료진이 이씨처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원봉사자 500여 명이 그들과 함께 의료지원 일과 주방, 미용, 목욕, 행정, 운전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이들 가운데 10년 이상 된 봉사자도 10%가 넘는다고 한다.

    “귀찮은 적도 없진 않았다”며 부끄러워하는 의료지원 봉사자 김모(40·여) 씨는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생각하면 힘이 난단다. 그는 “가족과 혼자 떨어져 지내는 환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면 그들도 마음을 열고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직원들도 사명감으로 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중에는 요셉의원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도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위한 부속시설인 ‘목동의 집’에서 약 1년간 생활하다 당시 선우 원장의 요청으로 공석이던 회계 업무를 맡게 된 40대 후반 김모 씨.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딸이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닌다”며 “병원에 찾아온 아이들이 봉사자들로부터 ‘잘 자랐다’고 칭찬받을 때는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교수를 지낸 신완식(64) 의무원장은 선우 원장이 2008년 지병으로 세상을 뜬 후 6년 남은 교수생활을 마다하고 2009년부터 요셉의원을 맡았다. 당시 가톨릭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은 그에게 “전인치료를 하라”고 당부했다.

    실제 요셉의원은 단지 몸의 병만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건물에는 진료실뿐 아니라 인근 노숙인을 위한 목욕실, 기증받은 옷을 나눠주는 옷방, 도서관, 휴게실 등이 갖춰져 있다. 의원 앞에 자리 잡은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이 쉬는 매주 목요일에는 의원에 있는 1층 식당이 그 구실을 대신한다. 신 의무원장은 “보통 150~200명이 오는데, 이들은 어느 급식소에서 무슨 요일에 고기반찬을 주는지 훤히 안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병원에서 식사 나눔을 하는 이유에 대해 ‘치료도 중요하지만 밥을 먼저 줘야 한다’는 선우 원장의 말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 없는 仁術…몸도 마음도 치유

    요셉의원에서 매주 목요일 진행하는 식사나눔 광경(왼쪽)과 요셉의원을 찾은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각계 후원금으로 진료비 충당

    4층 도서관에서는 영화포럼이 진행 중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8세 소녀 미셸과 그의 꿈을 펼칠 수 있게 한 사하이 선생님의 헌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그린 영화 ‘블랙’. 17명의 참석자 가운데 50대 초반 이모 씨는 “치료받다가 장애가 있는 아내와 함께 이 포럼에 참여했다”며 “용산 집에서 여기를 오가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웃 장애인들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요셉의원에서 치료를 끝까지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회사업가 송모 씨는 “검사를 통해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는 환자는 시립의료원 등 진료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긴다. 하지만 서울시가 우리 의원에 지원하는 사회안전망 예산이 바닥나 현재는 후원금으로 진료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드물지만 큰 병원에 옮겨져 사망하는 사례도 1년에 2~3건 있어,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며 “가족들이 수습을 원치 않거나, 오더라도 장례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의무원장은 “한 해 2만 명 이상 다녀가는데, 최근 추세를 보면 오히려 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는 직원 양모 씨(여)는 “선우 원장 시절부터 6000여 명이 보내주는 후원금을 소중히 써왔고, 그때부터 밴 절약 습관으로 한낮에도 선풍기를 잘 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이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지원을 하는 것이야말로 요셉의원이 가진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8월 13일 하루 요셉의원을 다녀간 인원은 89명. 평소보다 10명가량 적었지만 자원봉사자들은 마지막 환자가 돌아갈 때까지 봉사자 조끼를 벗지 않았다. 요셉의원 원장 이문주 신부는 “아픈 몸만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에 건강하게 복귀하고 자활할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는 곳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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