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7

2014.07.21

누가 덜 나쁜지 뽑는 선거라니…

역대 최대 규모 재보선이 공천부터 역대 최고 싱거운 전투로

  • 이종훈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4-07-21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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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덜 나쁜지 뽑는 선거라니…

    7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 수여식을 진행했다.

    재미있을 뻔했다. 무려 15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역대 최대 규모 재·보궐선거(재보선)이기 때문이다. ‘미니 총선’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렸다.

    만약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하면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간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안대희,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신설한 사회부총리 후보자마저 낙마하는 인사난맥상으로 생각보다 레임덕이 빨리 닥친 터라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재미없어졌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할 가능성이 갑자기 낮아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잘해서라면 그나마 흥미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잘못해서 그런 방향으로 흘렀고, 그 바람에 흥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투가 여러 곳에서 벌어지더라도 전쟁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더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7·30 재보선 전쟁 승패의 판단 기준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유지 여부다.

    문제는 공천이었다. 새정치연합은 당초 ‘개혁공천’을 내걸었다. 새누리당도 이에 질세라 당 혁신위원회를 띄웠다. 개혁 대 혁신. 방향은 바로잡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정서가 변화를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공천은 역주행했다. 일단 이기고 싶은 심정에 새누리당은 중진 차출에 매달렸고, 새정치연합은 중진 배제에 목을 맸다. 그런데 중진이 달리 중진인가. 다루기 힘들었고 결국 분란을 유발했다. 결국 ‘누가 더 잘하나’가 아니라 ‘누가 더 못하나’ 경쟁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공천 열풍이 지나고 결산을 해보니 새누리당이 ‘덜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권자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덜 나쁜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약한 선거다. 그나마 당 지도부의 손을 덜 타 경선을 치른 지역의 유권자는 행복한 편이다. 익숙한 지역 인재 가운데 편하게 선택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차제에 전략공천이란 것을 아예 없앴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향식 공천, 국민경선은 궁극적으로 우리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이자 국민이 여망하는 변화, 곧 정치개혁 과제가 아니던가.



    與野, ‘누가 덜 못했나’ 경쟁

    초반 판세는 비록 근소한 차이지만 새누리당 우세다. 4곳에서만 승리하면 과반 의석을 지킬 수 있는데, 텃밭인 부산과 울산 2곳은 물론 서울과 경기, 그리고 충청에서마저 전반적으로 앞서가는 양상이다. 돌발 악재만 터지지 않는다면 안정적 과반 확보는 거의 확실하다. 기대 밖 선전이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고전 중이다. 새누리당을 텃밭 2곳으로 봉쇄하고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싹쓸이할 정도로 선거 환경이 유리했지만 그 기회를 스스로 날린 결과다. 공천 이전 분위기를 상기해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속절없이 하락 중이었고 청와대발(發) 인사난맥상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압승이 코앞이었다. 지금은 본래 의석을 보유했던 5곳에서만 이겨도 잘하는 것이라는 자평을 내놓을 정도로 옹색해졌지만 말이다.

    본격 선거전에 들어가면서 새누리당은 지역 일꾼론을 내걸었다. 새정치연합은 여전히 세월호 심판론이다. 또 심판론? 선거전략 면에서도 새정치연합은 변화에 굼뜨다. 그사이 새누리당은 ‘굽네치킨 마케팅’에 열심이다. 본래 의도한 중진 차출이 원활했더라면 쓰지 않았을 전략이다. 그런데 공천을 완료하고 보니 경선을 거친 후보자 가운데 지역 일꾼론에 딱 맞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포의 홍철호 후보.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치킨 홍경호 대표의 형으로 함께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개혁공천을 내건 새정치연합이 오히려 영입했어야 할 후보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카카오톡의 김범수 의장 같은 인물을 영입해 이번 재보선을 ‘굽네치킨 마케팅’ 대 ‘카카오톡 마케팅’으로 치렀다면 어땠을까. 국민은 환호했을 테고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됐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새정치연합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했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재보선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개혁공천은 그런 공천이어야 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선택했다. 철 지난 심판론에 매달린 탓이다. 심판론? 호남에서는 반색할지도 모르겠으나 수도권에서는 좀 식상해한다. 수도권 유권자의 시선은 벌써 포스트 박근혜 시대를 향하고 있다.

    굽네치킨 vs 카카오톡 마케팅

    누가 덜 나쁜지 뽑는 선거라니…

    7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의 7·30 재보선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 수여식에서 지도부와 기념촬영하는 후보자들.

    선거 초반 구도가 그대로 굳어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한다면, 새정치연합은 혼돈에 빠질 것이다. 당연히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일 것이다. 여기에는 범친노(친노무현)계는 물론 구민주계까지 가세할 공산이 크다. 다만 내년 3월까지가 임기이므로 문제제기만 강하게 하고 그때까지 참으면서 기다릴 개연성이 높다. 현재 중앙위원회와 당무위원회도 없이 최고위원회가 독주하는 체제인데, 이런 상위조직을 만들라는 요구를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선전(善戰)한다면, 두 공동대표에게 그나마 힘이 좀 실릴 것이다. 문제는 선전 기준점이다. 안철수 대표는 5석을 제시했지만 15석 가운데 절반 이상, 특히 9석 정도는 확보해야 당 내외에서 선전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수도권과 충청권 9석 가운데 5석 정도는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부담이 훨씬 덜하다. 먼저 최근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를 선출해 설령 지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분위기다. 선거 지형을 악화한 것도 당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다. 반면 선거가 압승으로 귀결된다면 오히려 김무성 대표 체제에 힘이 실릴 것이다. 비박(비박근혜)계의 지원을 받은 김 대표의 선출로 당청(黨靑) 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여론이 호전된, 이른바 컨벤션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대표는 지금 ‘굽네치킨 마케팅’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이제 재보선 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정부 여당발(發) 돌발 악재뿐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사고, 대통령 핵심 측근이나 고위 관료의 비리, 정부의 정책 실패 같은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북한 도발과 부적절한 정부 대응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돌발 악재만 불거지지 않는다면 이번 재보선은 유권자의 낮은 관심 속에 지루한 고지전 또는 참호전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당연히 투표율도 낮을 것이다.

    물론 야권발 돌발 호재, 바람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도 막판 변수이긴 하다. 흥미를 잃고 휴가나 가려던 야권 지지세력이 화들짝 놀라 다시 돌아올 만한 사건. 하지만 새정치연합 현 지도부의 실력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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