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2014.07.14

월드컵 별 중의 별 ‘펠레’

英 가디언 발표 월드컵 역사상 ‘최고 선수 100인’ 중 3人의 활약상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4-07-14 11: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월드컵은 ‘별들의 전쟁터’이자 ‘별들의 등용문’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선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브라질 네이마르 다 실바(이상 바르셀로나), 독일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 스타플레이어가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활약으로 축구팬들을 열광케 했다. 콜롬비아 샛별 하메스 로드리게스(AS모나코), 멕시코 수문장 기예르모 오초아(전 아작시오) 등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1회 대회가 열린 월드컵은 이번 브라질 대회로 20회를 맞았다. 역사가 깊은 만큼, 그동안 많은 별이 월드컵을 찬란하게 빛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얼마 전 각종 기록과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발표한 ‘월드컵 역사상 최고 선수 100인’ 명단에 따르면 펠레(브라질)가 1위,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2위, 프란츠 베켄바워(독일)가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16골)가 신기록을 쓰기 전까지 15골로 역대 통산 최다골 기록을 갖고 있던 호나우두(브라질)와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프랑스)이 각각 4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별로 보면 브라질이 22명을 배출해 ‘축구의 나라’임을 입증했고 이탈리아(15명), 독일(13명)이 그 뒤를 이었다.

    세계인이 인정한 ‘축구황제’

    펠레는 세계가 인정하는 ‘축구황제’다. 1958 스웨덴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월드컵까지 4차례 월드컵에 나가 3번(1958, 62, 70)이나 우승 감격을 누렸다. 지구상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3번이나 들어 올린 사람은 펠레가 유일하다.

    17세 때 출전한 스웨덴월드컵 8강전에서 웨일스를 맞아 결승골을 터뜨려 월드컵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운 펠레는 이어 열린 준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역대 최연소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개최국 스웨덴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도 2골을 넣으며 조국 브라질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남미팀이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한 때가 바로 이 대회다. 스웨덴전에서 펠레가 양쪽 무릎으로 공을 튕기며 상대 수비수 키를 넘긴 뒤 오른발 발리슛으로 골망을 흔드는 장면은 현재까지도 월드컵 사상 가장 멋진 골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펠레는 1962 칠레월드컵 당시 부상으로 중도 낙마했지만 동료들의 힘으로 2번째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회였던 1970 멕시코월드컵에서는 결승전 1골 2도움 등 총 4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3번째 우승을 완성해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브라질은 이 대회 우승으로 당시까지 유일한 3회 우승국이 돼 우승 트로피 줄리메컵을 영구 보관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1958년 브라질 정부로부터 ‘축구영웅’ 타이틀을 받은 펠레는 62년에는 급기야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0년 선정한 ‘20세기 최고 선수’ 역시 펠레였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자랑하던 펠레는 스피드가 뛰어났고, 개인기가 탁월해 어떤 각도나 위치, 자세에서도 본능적으로 정확한 슈팅을 날렸다. ‘축구 아이큐’가 남달라 경기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와 동료들과의 팀플레이 능력에서도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였다. 축구선수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쌓은 그는 1978년 ‘국제평화상’, 97년 ‘영국 명예훈장’ 등을 받으며 세계 평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월드컵 별 중의 별 ‘펠레’
    악동 이미지 ‘축구의 신’ 마라도나

    브라질 사람들이 펠레를 ‘황제’라 부르고 추앙한다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신’이라 부르며 정말 신처럼 대한다. 왼발 하나로 세계를 정복했던 그라운드의 마술사 마라도나는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5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멕시코월드컵은 마라도나 한 사람을 위한 대회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의 활약은 빼어났다. 당연히 최우수선수도 그의 몫이었다.

    멕시코월드컵에서 그가 기록한 5골 중 3골은 축구팬 사이에서 영원히 기억될 만한 골이었다. ‘그라운드 위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불린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마라도나는 악명 높은 ‘신의 손’ 골을 터뜨려 상대를 분노케 했지만, 잉글랜드 팬들조차 몇 분 후 터져 나온 마라도나의 ‘신의 발’에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아르헨티나 진영에서부터 시작된 마라도나의 신기는 잉글랜드의 6명 수비수를 따돌리고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창조해냈다. 마라도나의 마술은 벨기에와의 준결승전에서도 계속됐고, 특히 4명의 벨기에 수비수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두 번째 골은 잉글랜드전 장거리 드리블에 버금가는 명작이었다. 아르헨티나는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도 그의 활약에 힘입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라운드 내에서 마술에 가까운 기술을 뽐내던 그는 필드 밖에서는 온갖 기행과 악행으로 구설에 오를 때가 많았다. ‘모범생’ 이미지의 펠레와는 정반대였다. 코카인 흡입과 음주, 총기 사고, 탈세, 폭행 같은 비행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폐인처럼 망가졌다 다시 재기해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자국 팀을 이끌고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도 했지만 8강에서 주저앉으며 선수 시절 명성을 지도자로서 이어가지는 못했다.

    리베로 개념 창시자 프란츠 베켄바워

    독일의 전설적 수비수 프란츠 베켄바워는 현대 축구의 리베로 개념을 창시한 선구자로 꼽힌다. 펠레, 마라도나가 골을 넣는 공격수였다면, 베켄바워는 골을 넣는 수비수였다. 베켄바워가 국가대표로 첫 출전한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서독은 2위를 차지했고, 그는 득점 3위를 기록했다. 베켄바워는 4년 뒤 멕시코월드컵에서 서독을 다시 3위로 이끈 뒤 자국에서 열린 1974 서독월드컵에선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는 빼어난 실력뿐 아니라 최고 리더십을 갖춘 선수로도 추앙받았다.

    은퇴 후에도 그는 1984년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해 1986 멕시코월드컵 준우승, 1990 이탈리아월드컵 우승을 일궈냈다. 그는 주장과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다. 펠레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탈리아월드컵 우승 뒤 베켄바워는 98년 독일축구협회 부회장, 2006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행정가로서도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