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5

2014.07.07

초조한 김정은 잇단 ‘치고 빠지기’

한중 정상회담 지켜보며 복잡한 속내…북·중 관계 약화와 고립 심화될 듯

  •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summer20@naver.com

    입력2014-07-07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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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 3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두 나라 사이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은 한중 정상회담이지만,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요인이 많았다. 특히 이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속내는 복잡할 것이다.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전통적 우방인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중국 방문을 타진해온 김 제1비서의 요청이 사실상 무시된 셈.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최근의 한중 관계는 ‘파격 중 파격’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김정은을 상대하지 않는 이유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의 오랜 인연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박 대통령이 국가 정상이 되기 전인 2005년 7월 시진핑 당시 저장성 서기로 방한했을 때 만난 것이 처음이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총 4차례 만났다. 이번 방문은 5번째 회담인 셈. 박 대통령 취임보다 1년 전인 2012년 권좌에 오른 김 제1비서는 아직까지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 주석은 왜 김정은을 상대하지 않는 것일까. 먼저 기억해둬야 할 것은 시 주석이 혁명 이후 세대가 배출한 첫 번째 지도자라는 점이다. 혁명 1세대인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은 물론, 혁명 마지막 세대인 후진타오에게도 북한은 항미원조(抗米援朝)의 혈맹국이자 공산주의 혁명의 우방이었다. 모두 종래의 북·중 관계에 익숙했던 이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중국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시중쉰의 아들로, 흔히 태자당 출신이라 부르는 혁명 후 세대다. 북한과의 전통적 혈맹관계보다 국가 대 국가로서의 관계를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특성이 있다.



    초조한 김정은 잇단 ‘치고 빠지기’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이 7월 3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북·중 관계가 이렇듯 꼬이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북한의 3차 핵실험이었다. 안 그래도 시 주석은 1, 2차 핵실험 과정에서 중국을 고려하지 않은 북한의 일방적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2013년 3월 14일 본인의 국가주석 취임을 코앞에 둔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한 김 제1비서에 대해 더 큰 불신을 갖게 됐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3차 핵실험을 앞두고 중국이 평양에 강력한 반대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핵실험 후인 2013년 3월 8일 중국은 이례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2094호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고, 6월 27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더 진전된 문안을 양국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전임자였던 후진타오 주석이 1, 2차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의 사건에도 북한을 두둔해온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만큼 김정은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것이다.

    더욱이 2013년 12월 12일 북한의 대중(對中) 창구 구실을 오랜 기간 맡아온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국가 전복 혐의로 갑자기 처형된 것도 중국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렸다. 베이징 처지에서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이후 장성택을 대신할 믿을 만한 파트너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 측이 장성택을 당 서열과 관계없이 실질적인 2인자로 대우한 것만 봐도 북·중 관계에서 장성택이 차지했던 정치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이 그를 숙청하면서 이 같은 중국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시진핑-김정은 시대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단적인 사례다.

    김 제1비서 또한 장성택을 대신할 중국통을 그 나름대로 모색해온 것으로 보인다. 2013년 5월 장성택에 대한 견제가 시작될 무렵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를 중국에 보낸 바 있다. 6월로 예정돼 있던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통적인 북·중 관계를 강조하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최룡해는 중국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가 먼저’라는 말만 듣고 물러나야 했고, 그의 방중은 별다른 성과 없이 외면당했다. 북한이 장성택의 최측근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주중북한대사인 지재룡과 당 국제부장 김영일, 통일전선부장 김양건 등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이유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초조한 김정은 잇단 ‘치고 빠지기’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오른쪽)가 북한군의 전술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은 6월 30일 “(김정은이) 감시소 정점에 올라 (로켓) 발사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훈련 장소와 날짜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전술로켓은 북한이 6월 29일 강원 원산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된다.

    전통적 전략 관계 유지 예상

    현재 시점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지켜본 김 제1비서의 마음은 초조할 것이다. 시 주석의 방한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향후 북·중 관계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였던 한국과 중국은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다는 게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미동맹 같은 포괄적 동맹을 제외하고는 최고 수준의 관계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전통적 혈맹과 순망치한 관계만을 되뇌며 일방적 원조를 받고 있는 북한 처지에서 이러한 한중 관계의 격상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한중 관계가 전략적 개념으로 발전한다면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관계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김 제1비서의 불안감은 최근 북한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북한은 6월 26일 방사포로 추정되는 비행체 3발, 29일 스커드 미사일 2발, 7월 2일 미사일 추정 비행체 2발 등을 각각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일종의 무력시위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6월 30일 국방위원회 명의로 “다음 달 4일 오전 0시부터 상호 비방, 중상과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무력시위와 평화 공세를 연이어 퍼붓고 있는 셈. 이러한 모순된 행동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대북 메시지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사전적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김 제1비서의 속내가 그만큼 복잡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번 박근혜-시진핑 정상회담은 향후 북·중 관계뿐 아니라 남북 관계의 미래에도 상당한 함의를 가진 회담이었다. 구체적인 대북 메시지 수준과는 별개로 한중 관계의 성숙과 북·중 관계의 약화라는 추세가 명확해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러했다. 앞으로도 북한과 중국은 완충지대로서의 전통적 전략 관계를 유지할 공산이 크지만, 점차 증가하는 양국 관계의 정치, 외교, 경제적 부담은 서로에게 짐이 될 개연성이 높다.

    두 나라 간 이해 교차점이 언제 어떻게 현실화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시점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 역시 한층 명확해졌다. 김 제1비서의 복잡한 속내가 북·일 관계 진전을 통해 분출될 가능성도 있으나, 이 역시 많은 걸림돌이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 북한의 고립은 시간이 갈수록 되돌릴 수 없는 추세고, 김정은의 운명도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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