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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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회담 때 날아온 파격 e메일

북 14개 경제 관련법 전문…외자 유치 위해 국제법 적극 수용 담겨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4-06-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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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회담 때 날아온 파격 e메일

    북한의 14개 경제 관련법 전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2012년 2월 21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틀 뒤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미 3차 고위급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를 보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비행기에서 막 내린 김계관 제1부상에게 CCTV 기자가 달라붙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방송된 것.

    베이징에서 기자가 공항 내부 VIP 통로까지 들어가 취재하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특히 북한 관료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처럼 취재 방송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전례 없는 취재의 배경에는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 체제하에서 첫 북·미 회담이 잘 풀려 북핵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길 희망하는 중국 정부의 뜻이 담겨 있기도 했다.

    김정일 사망 애도기에 7개 법 개정

    이렇듯 세계 이목이 집중된 제3차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필자에게 e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중국에서 알고 지내는 북한 취재원이 보낸 것이었다. e메일 본문에는 내용이 없었고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당시 북·미 고위급 회담 취재가 끝난 뒤에야 확인한 첨부파일에는 북한의 14개 법 전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두 경제 관련법으로, 당시까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내용이었다.

    그에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외국인투자법 등 경제 관련법을 제정 또는 개정했다고 보도했지만 법 내용이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필자가 법 전문을 입수한 시점은 북한이 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고 불과 2~3개월 정도 후였다.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건의 진위 여부와 의미 등에 대해 좀 더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베이징 외교가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 약속을 잡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북한 경제법 전문에 대해 말을 꺼내니 그의 눈이 빛났다. e메일로 받은 파일을 USB 메모리에 담아 통째로 그에게 건네주며 분석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저녁 다시 만났다. 그는 꽤 상기돼 있었다.

    “북한 경제법이 맞다. 과거와 달리 파격적인 내용이 다수 담겼다. 외국 투자 기업의 투자 자산을 보호하고 이윤 송금을 허용하는 등 국제법상 법규를 수용한 것이 특징이다. 매우 중요한 자료다.”

    14개 법 가운데 새롭게 제정된 것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이었고, 나머지 13개 법은 개정된 것이었다. 전자는 2011년 12월 3일 제정됐고, 후자는 같은 해 11월과 12월 개정됐다. 13개 개정법은 나선경제무역지대법, 외국인기업법, 외국인투자기업노동법, 외국인투자기업재정관리법, 외국인투자기업파산법, 외국인투자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 외국투자기업등록법, 외국투자기업회계법, 외국투자은행법, 토지임대법, 합영법, 합작법 등이었다.

    북한은 법 제·개정에 앞서 2011년 중국과 싱가포르, 유럽 등에 경제 관료와 국제법 전문가를 다수 파견한 바 있다. 이처럼 북한이 관련법 마련과 손질에 나선 이유는 해외 사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학습’의 결과물이자 ‘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겠다’는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였다.

    14개 법의 공통적 특징은 한마디로 외자 유치를 위해 국제 법규를 적극 수용했다는 점이다. ‘투자자 재산을 국유화하지 않고 거둬들일 경우 보상을 한다’는 규정이 14개 법 모두에 들어가 있다. 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한 내용을 들자면 이렇다.

    ‘국가는 투자자의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거둬들이지 않는다.’(나선경제무역지대법 제7조)

    ‘부득이한 사유로 외국인 투자기업의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거둬들일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는 보상을 한다.’(외국인투자기업재정관리법 제8조)

    ‘외국투자가가 얻은 합법적 이윤과 소득, 또 기업 또는 은행을 청산하고 남은 자금은 제한 없이 북한 영역 밖으로 송금할 수 있다.’(외국인투자법 제20조)

    “투자 기업 친화적으로 법을 마련해뒀으니 이제 마음 놓고 투자해달라”는 북한의 신호와 손짓이었다. 특히 나선경제무역지대법과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에는 조선 동포도 투자 가능하도록 조항을 마련했는데 이는 향후 남북경협이 활성화할 경우 남쪽 기업의 투자 유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회담 때 날아온 파격 e메일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중국 단둥의 분향소 모습(왼쪽). 새롭게 제정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의 무대인 황금평 경제지대.

    개성공단과 유사한 황금평法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14개 법 가운데 절반인 7개 법이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개정됐다는 점이다. 2011년 12월 21일 개정된 7개 법으로, 모두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법이었다. 외국인투자기업노동법, 외국인투자기업재정관리법, 외국인투자기업파산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 외국투자기업등록법, 외국투자기업회계법, 외국투자은행법이 바로 그것. 비상시국인 ‘김정일 사망’ 나흘째 이들 7개 법을 개정했다는 점에서 경제 문제에 대한 김정은 체제 북한의 절박함을 엿볼 수 있다.

    14개 경제 관련법 가운데 유일하게 새로 제정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은 총 7장 74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의 특징으로 개성공단의 모델을 많이 반영한 것을 꼽았다. 황금평 운영 자체를 기업책임자 회의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과 출입에 대한 자율, 각종 세금 감면 등 개성공단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황금평을 북한의 다른 지역 산업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황금평 개발을 토대로 산업 전반적인 경제 회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북한 의도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황금평에 은행과 그 지점, 보험기구 설립에 대한 법적 토대를 마련해 향후 황금평 개발이 본격화하면 금융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에는 필자가 ‘주간동아’ 942호에서 언급했듯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이 작성한 ‘황금평·위화도 개발’ 관련 보고서의 건의 사항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다. ‘황금평을 첨단기술 산업과 금융, 관광 단지 등으로 육성할 것, 기업의 이윤 송금을 보장하는 합법적인 은행 결산 통로를 건립하고 황금평 경제구 내 각종 특혜 정책을 실시할 것’ 등 보고서 건의 사항이 법에 그대로 반영된 것.

    한편 북한과 중국은 황금평 경제구를 관광 코스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6월 초순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의 단둥시위원회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북한 관광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중국이 건의하고 북한이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에 반영한 ‘황금평의 관광지구 개발’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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