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2014.06.23

도쿄에서 ‘교향악의 영웅’과 만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06-23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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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에서 ‘교향악의 영웅’과 만남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왼쪽)과 극장 로비.

    6월 초 일본 도쿄에 잠시 다녀왔다. 2박 3일간의 짧지만 알찬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도쿄는 방사능과 대지진에 대한 우려, 껄끄러운 정치적 상황에 따른 거부감 등만 아니라면 좀 더 자주 찾고 싶은 도시다. 그곳의 클래식 음악 환경은 필자 같은 애호가 처지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다. 산토리홀, 도쿄문화회관 등 세계적인 공연장이 있고, 수준 높은 공연도 넘쳐나며, 심지어 음반시장도 아직 살아 있다.

    도착한 날 저녁 신주쿠에 위치한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쿄 필)의 특별공연이, 그다음 날 오후에는 바로 옆 신국립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두 공연 지휘는 모두 프랑스 지휘자 베르트랑 드 비이가 맡았는데, 드 비이는 그 직후 내한해 KBS 교향악단의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두 공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6월 11일 탄생 150주년을 맞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R.) 슈트라우스가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도쿄 필은 R. 슈트라우스의 대작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연주했고, 신국립극장은 그의 성숙기 오페라 ‘아라벨라’를 무대에 올렸다. ‘R. 슈트라우스 기념해’에 더없이 어울리는 공연들이었다 하겠다.

    먼저 도쿄 필 공연은 프로그램 구성부터 흥미로웠다. 1부에서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연주한 다음, 2부에서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했다. 19세기 교향악의 역사를 관통하는 ‘영웅’이라는 주제를 부각한 셈이다.

    드 비이는 명쾌하기 그지없는 지휘 동작으로 두 악곡의 세부와 전체를 두루 아우른, 세밀하고도 다이내믹하며 균형감이 탁월한 해석을 선보였다. 도쿄 필은 R. 슈트라우스 음악에 어울리는 사운드의 세련미나 화려함은 부족했지만, 잘 짜인 앙상블로 견실한 연주를 들려줬다. 일본 악단다운 고집스러움마저 엿볼 수 있었던 흥미롭고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도쿄에서 ‘교향악의 영웅’과 만남

    일본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도쿄 필은 그다음 날 ‘아라벨라’ 공연에서도 드 비이와 호흡을 맞췄다. 동일 레퍼토리의 시즌 마지막 공연이어서인지 전날보다 한결 잘 다듬어진 사운드와 앙상블을 들려줬다. 이날 공연의 종합적인 완성도 또한 매우 높았는데, 주역으로 나선 외국 가수 중에는 타이틀롤인 아라벨라 역의 안나 가블러와 츠덴카 역의 아냐 니나 바르만의 노래, 연기가 훌륭했고, 조역을 맡은 일본 가수 중에서는 밀리 역의 하기와라 준이 빼어난 콜로라투라를 뽐냈다.

    아울러 유럽 정상급 오페라 극장들에서 활약해온 드 비이의 노련한 리드도 명불허전이었다. 무대 연출은 지난해 내한해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파르지팔’을 연출하기도 했던 프랑스의 필립 아흘로가 맡았다. 그 특유의 선명한 색감을 앞세운 화려한 무대와 복잡다단한 부수적 장치들이 시종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연들은 만족스러웠지만, 왠지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어지간한 R. 슈트라우스 애호가가 아니라면 접근하기도 어려운 ‘아라벨라’ 같은 작품을 상설 오페라 극장의 정규 레퍼토리로 편성하는 일본의 저력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기념해임에도 작곡가의 대표작 중 대표작인 ‘장미의 기사’는 엄두도 못 내고, 엉뚱한 공연으로 비난을 샀던 모 오페라단의 ‘살로메’에 쓴 입맛을 다셔야 했던 우리 공연계 현실이 아팠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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