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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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쭉한 스트라이크존 마운드 ‘와르르’

프로야구 핸드볼 경기 같은 다득점 속출…“가운데로 던져야” 투수들 죽을 맛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입력2014-05-26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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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한국 프로야구는 극심한 타고투저를 보이고 있다. 4월 19일까지 경기당 평균 득점은 10점 이상이다. 20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도 3번이나 나왔다.

    5월 중순 162경기를 소화한 시점에서 292개 홈런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162경기에서 182개 홈런이 터졌다. 110개가 늘어난 것이다. 팀에 1명씩 총 9명의 외국인 타자가 합류했고, 류현진(LA다저스), 윤석민(볼티모어), 오승환(한신) 등 리그를 지배했던 에이스가 보이지 않아 일어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삼성 류중일, NC 김경문 감독 등 리그를 대표하는 명장들은 한목소리로 “스트라이크존을 넓혀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들이 말하는 스트라이크존 확대 이유는 심각한 수준으로 추락한 경기 질, 그리고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는 경기 시간 축소에 있다.

    류중일 감독은 “야구가 핸드볼도 아니고 다득점 경기가 속출한다. 시간만 길어지고 동네야구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프로야구는 팀당 128경기를 하는 장기 레이스다. 경기 초반 대량 실점하면 ‘필승조’, 즉 주축 불펜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기 어려워진다. 그다음 날 경기를 위해 마운드 전력을 아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불펜에서 공 위력이 떨어지는 투수가 나와 경기를 마무리한다. 점수가 더 많이 쌓이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이유다. 류 감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박빙 승부 재미있는 야구 사라져

    “최근 각 팀을 보면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모두 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타자 처지에서 안타를 만들기 어려운 공을 파울로 만드는 능력도 뛰어나다. 투구 수가 늘어나고 선발투수가 빨리 내려간다. 그만큼 다득점 경기가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면 투수가 더 공격적인 투구를 할 수 있다. 그럼 타자도 더 적극적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5점 안팎에서 박빙 승부를 펼치는 재미있는 야구, 그리고 1점 승부를 벌이는 명품 투수전도 기대할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은 “스트라이크존이 점점 더 위축되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한다. 스트라이크존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데는 많은 선수가 공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테랑 투수는 “방송중계를 보면 스트라이크존이 가상의 사각형으로 나온다. 조금이라도 벗어난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면 팬부터 난리가 난다. 심판이 방송을 의식해서인지 스트라이크존이 굉장히 타이트해지는 것 같다. 존을 타고 들어가는 공도 지금은 다 볼로 판정한다. 어쩔 수 없이 공이 가운데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9년 투구추적 시스템을 도입한 후 각 방송사는 입체적인 중계를 위해 중계 화면에 스트라이크존을 구현해 활용하고 있다. 스트라이크존은 홈플레이트 위 3차원적 공간이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투수 시선에서 바라보는 2차원적 면을 주로 활용한다. 실제 심판 판단과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스트라이크존은 심판이 바라보는 각도, 타자 체구에 따라 크기 차이가 매우 크다. 그만큼 2차원적인 TV 화면에 그래픽으로 정확히 구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홀쭉한 스트라이크존 마운드 ‘와르르’

    5월 1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NC와 LG 경기에서 박기택 주심이 투수의 투구를 바라보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존에 걸쳐 들어가는 공, 타고 들어가는 공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 화면은 참고용이어야 한다. 스트라이크존이 점점 위축되면 리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빠른 경기, 현 상황에서 최대한 수준 높은 경기를 하려면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구 역사를 돌이켜보면 스트라이크존 크기는 계속 변화해왔다. 타고투저, 혹은 투고타저를 깨뜨리려는 인위적인 개입도 자주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1970년 이전까지 심판들이 옷 속에 프로텍터(보호장비)를 입었던 내셔널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이 더 넓었다. 프로텍터를 옷 밖에 걸치고 있던 아메리칸리그 심판들과 달리 더 낮은 공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각 차이 때문이었다.

    1961년 로저 매리스가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 루스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60개를 넘어서자 당시 커미셔너였던 포드 프릭은 스트라이크존 확대를 지시했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대를 맞았다. 68년 아메리칸리그에서는 칼 야스트르젬스키 단 1명만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관중이 호쾌한 홈런과 더 많은 안타를 그리워하기 시작하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마운드 높이를 낮추고 스트라이크존을 다시 좁혔다. 그 영향으로 80년대 후반 다시 타고투저가 극심해지자 스트라이크존은 다시 넓어졌고, 투수 시대가 돌아왔다.

    메이저리그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투구추적 시스템을 도입하자 심판들이 위축되면서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2003년 좁아진 스트라이크존에 화가 난 투수 커트 실링이 방망이로 측정 카메라를 부셔 벌금을 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볼 카운트, 점수 차, 투수나 타자가 스타플레이어인 경우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늘거나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했다.

    홈플레이트와 선수 유니폼, 공에 모두 센서를 달아 정확한 스트라이크 판정을 심판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시스템 개발까지 고민했다. 이는 비용과 매끄럽지 못한 경기 진행 등의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그는 전 구장에 설치된 장비로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 판정을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고 있다.

    홀쭉한 스트라이크존 마운드 ‘와르르’

    5월 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두산 경기에서 1회 2사 후 삼진아웃을 당한 넥센 윤석민이 심판에게 스트라이크존과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차라리 홈플레이트를 키워라”

    한국 프로야구도 제도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한 적이 있다. 2010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스트라이크는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공’으로 규정된 규칙에 ‘양쪽으로 공 반 개씩 확대’를 덧붙였다. 경기 시간 단축과 더 공격적인 야구가 목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심판의 적응이었다. 스프링캠프부터 준비했지만 ‘공 반 개씩 확대’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제각각이었다. 공 지름은 약 7cm로, 확대된 3.5cm에 눈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경기 때마다 타자와 감독은 불만을 쏟아냈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차라리 홈플레이트를 키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판정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고 때마침 방송 중계에 투구추적 시스템 활용이 늘어나면서 스트라이크존은 슬그머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각 팀 선수는 2011시즌부터 사실상 2009시즌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KBO는 “규칙상 2010년 이후 변화는 없다”고 밝히지만, 사실상 한국 프로야구 심판들은 스트라이크 규칙보다 훨씬 좁은 판정을 4년째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당장 타고투저 구도를 깨트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러나 신중할 필요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다. 올 시즌부터 도입하는 것은 위험이 높다. 심판들은 각 팀 해외 전지훈련지를 방문한다. 훈련 목적도 있지만, 시즌 개막 전 각 팀 선수에게 ‘여기까지가 스트라이크존’이라고 확실히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2010년에는 이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타고투저가 9구단, 10구단으로 리그가 확대되는 시기에 투수가 부족해지면서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외국인 타자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다각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타고투저뿐 아니라 경기 시간 단축에도 분명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만약 넓힌다면 지금은 볼로 판정되는 코스지만 타자가 충분히 안타를 날릴 수 있는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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