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美-佛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올랑드 訪美 두 나라 정상 ‘신밀월관계’ 대내외 과시

  • 정미경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입력2014-02-17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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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1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기자회견. 한 프랑스 기자가 물었다. “프랑스가 영국을 제치고 유럽에서 미국의 최고 우방이 된 것이냐.”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웃으며 답했다. “나에게는 딸이 2명 있다. 둘 다 멋지고 근사하다. 두 딸 가운데 누가 더 중요한지 내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프랑스와 영국은 나에게 두 딸 같은 존재다.”

    프랑스가 미국의 영원한 우방인 영국과 견줘도 처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됐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이 말을 들은 올랑드 대통령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반면 이 발언을 전해들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아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유럽 최대 우방 자리를 프랑스와 함께 나눠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말이다.

    요즘 미국과 프랑스는 신(新)밀월관계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오바마 대통령이 2월 10~12일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올랑드 대통령에게 베푼 환대를 보면 프랑스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6번째 외국 정상이다. 2011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방미 후 2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실무형 방문을 선호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쉽게 국빈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국빈 방문에는 수많은 의전이 따라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에 도착한 올랑드 대통령을 맞으러 직접 앤드루스 공군기지까지 나갔다. 양국 대통령은 공항 접견실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곧바로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버지니아 주 몬티셀로에 있는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을 찾은 외국 정상을 다른 지역으로 안내하는 것은 최고 예우를 보여주는 것. 이 전 대통령 방미 때는 디트로이트 자동차공장에 동행했다.

    극진한 예우와 ‘찰떡궁합’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인 제퍼슨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친불(親佛)파 정치인이었다. 프랑스에 처음 파견된 미국 외교관이었으며 프랑스 센 강 주변에 그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인에게는 친숙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랑드 대통령을 제퍼슨 생가로 데려감으로써 양국관계가 미국 독립 때부터 지속된 돈독한 관계임을 확인한 것이다.

    양국 대통령은 또 ‘워싱턴포스트’와 ‘르몽드’에 공동 기고문을 실어 우의를 과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국 정상 방문에 맞춰 단독 기고문을 실은 적은 있지만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는 합동 기고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양국 정상은 기고문에서 ‘미국과 프랑스가 이렇게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며 ‘양국 동맹관계는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10년 전만 해도 양국관계가 이렇게 호시절을 맞을 것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외교정책과 각을 세우며 맞서왔다. 2003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양국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인 사이에서도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확산됐다.

    ‘프리덤프라이’ ‘프리덤토스트’ 일화는 당시 양국관계가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미 하원 구내식당은 일부 하원의원의 요구로 메뉴에서 ‘프렌치프라이’ ‘프렌치토스트’를 ‘프리덤프라이’ ‘프리덤토스트’로 이름을 바꿨다. 프랑스와 달리 미국은 이라크 국민의 자유를 위해 이라크에 개입한다는 의미였다.

    이후 양국관계는 계속 서먹하다가 보수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호전됐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전임 프랑스 대통령들과는 달리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을 펼치며 미국을 지지했다. 예상 밖으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친미(親美) 노선은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프랑스는 2011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축출 때 공중폭격을 주도했다. 리비아 개입에 부담을 갖고 있던 미국은 프랑스가 작전 주도권을 쥔 덕에 쉽게 카다피를 몰아낼 수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좌파 출신이지만 친미 정책만큼은 우파인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국제사회 반대를 무릅쓰고 시리아 공습 계획을 추진할 때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의회 반대로 중간에서 포기했지만 프랑스는 끝까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란과 P+5(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 핵협상 때는 미국보다 더 강력하게 이란 측에 핵 포기를 요구해 미국에 힘을 실어줬다. 또 말리,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내전 확산을 막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미국의 개입 고민을 덜어줬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정보 수집 파문이 벌어진 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강력하게 성토하던 것과 달리 올랑드 대통령은 비난을 자제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미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지지하는 국가다. 또 올랑드 대통령은 유럽 금융위기 해법으로 독일이 주장하는 긴축정책보다 미국이 제시하는 경기부양책을 지지한다고 밝혀 오바마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찰리 커프챈 미국외교협회(CFR)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영국이 미국의 최대 유럽 우방이지만 사르코지와 올랑드 시대에는 프랑스가 가장 친밀한 동맹이 됐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에 초점 맞춘 2박3일

    물론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이란 제재를 주도하는 가운데 프랑스 기업들이 제재를 피해가며 이란 기업과 거래를 시도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구글, 아마존 등 미국 인터넷 기업을 겨냥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인터넷 기업이 편법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갈등 이슈는 양국의 밀월관계 모드에 큰 걸림돌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지지율이 바닥권인 올랑드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의 초점을 경제협력에 맞췄다. 도착 당일 시티그룹, 페덱스 등 미국 기업 대표들과 면담한 그는 귀국 당일에도 실리콘밸리에 들러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대표들과 만난 뒤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방미 기간 중 올랑드 대통령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여배우 쥘리 가예와의 스캔들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스캔들 때문에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와 헤어진 올랑드 대통령은 배우자 없이 나 홀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의전팀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국빈 방문의 하이라이트인 백악관 만찬에서는 대개 양국 정상 부부 4명이 엇갈려 앉는 것이 관례인데, 2월 11일 만찬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부부 사이에 올랑드 대통령이 끼어 앉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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