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실패와 절망 딛고 성공의 길로 나서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 거친 CEO 3인의 희망 스토리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4-02-17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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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와 절망 딛고 성공의 길로 나서다
    사업 부도와 가정 파탄, 절망의 나락….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인도에 들어가 처절히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2011년 경남 통영 죽도에 문을 연 재기중소기업개발원(개발원) ‘재도전 중소기업경영자 힐링캠프’(캠프)에서다. 산속 1인 텐트 생활, 사이코드라마 출연, 명상 등으로 짜인 캠프 프로그램은 자아성찰과 반성을 통한 내적 치유, 한계 극복을 통한 자신감 회복, 바람직한 기업가정신 회복 등을 목적으로 한다.

    캠프를 거쳐 간 CEO는 지금까지 150명. 그 가운데 49명이 재기에 성공했고, 50여 명은 재취업했다. 부도로 가정 해체를 맞았던 다섯 가족이 재결합에 성공하기도 했다. 재기한 CEO 3인을 만나 도전과 실패, 새로운 희망에 대해 들었다.

    박승자 사장

    두 번의 실패…CCTV 회전용 슬립링 개발

    박승자(55·사진) KP전자 사장은 두 번의 사업 실패와 대형 교통사고, 가정해체 위기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0년 10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업가 기질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박 사장은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면 마진율이 30~40%여서 수익이 많았다. 나중에는 컴퓨터부품을 개발해 미국에도 수출해 회사가 해마다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회상했다.



    창업 후 실패를 모르고 뻗어가던 사업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만나면서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거래처가 해외로 나가면서 일감이 끊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돌아오는 가계수표와 어음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부도를 내고 살던 집과 공장을 처분한 돈에 친정식구들이 모아준 2억 원을 합해 ‘빚잔치’를 했다. 수중에 남은 돈 2500만 원으로 낡은 지하공장을 얻어 다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시력을 잃어가며 밤낮으로 일에 매달린 끝에 7년여 만에 빚을 다 갚았다. 이후 중소기업진흥공단(중기공단)으로부터 자금 10억 원을 지원받아 2007년 10월 공장을 이전, 확장했다.

    하지만 1년 뒤 국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회사는 다시 벼랑으로 내몰렸다. 설상가상 승용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수개월간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결국 또 한 번 부도가 났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 없었다. 박 사장은 중기공단에 도움을 호소해 2억6000만 원을 지원받았고, 2011년 6월 신용불량자인 자신 대신 남편 명의로 KP전자를 설립했다. 기존 거래처 사장들을 찾아다니며 선수금을 달라고 설득해 사업자금을 마련했다는 그는 “납품 전 돈부터 받아 재료를 사서 공장을 돌렸다. 사업이 망해도 거래처엔 어떻게든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쓴 덕을 봤다”고 했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지 1년 만에 박 사장은 남편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개발원으로 떠났다. 두 번째 부도 여파로 연대보증을 섰던 큰아들이 이혼한 탓에 불쑥불쑥 치솟는 화를 누를 길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금녀의 집’이던 개발원 문을 두 차례나 두드린 끝에 캠프 참가 기회를 얻은 박 사장은 “산속 텐트 생활, 타다 남은 장작 위를 맨발로 걷기 등 모든 프로그램을 남자와 똑같이 수행했다”고 했다.

    캠프를 통해 아픔을 딛고 다시 세상과 맞설 용기를 얻은 박 사장은 중소기업 대상 R·D(연구개발)기술개발사업 과제에 도전해 기술개발자금 1억 원을 받아 폐쇄회로(CC)TV 회전용 ‘슬립링’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박 사장은 “슬립링은 CCTV를 비롯해 로봇청소기, 전기히터 등 회전하는 가전제품이면 어디든 들어가는 부품으로 향후 시장 전망이 밝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CCTV용 슬립링을 하청으로 생산, 납품했지만 9월부터 자체 브랜드인 ‘KP슬립링’ 제품을 출시하고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설 예정이다.

    유정무 대표

    중국서 처절한 쓴맛…초소형 흑체 제작

    실패와 절망 딛고 성공의 길로 나서다
    “캠프에서 매일 밤 명상을 했다. 어느 순간 캄캄한 어둠 속에 불이 켜지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원망과 회한 대신 감사와 기쁨이 마음속에 차오르는 느낌은 경이 그 자체였다.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2월 말 캠프에 입소했던 유정무(58·사진) ㈜아이알티코리아 대표의 말이다. 1993년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가전제품 대리점을 개업한 유 대표는 1년 만에 매출 10억여 원을 올렸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2005년 중반 중국에서 사업하던 지인이 투자를 요청해왔다. 유 대표는 “내 손으로 뭔가를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진짜 사업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7000만 원을 투자했다. 이후 1억5000만 원을 추가로 투자한 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쳐볼 생각으로 국내 회사를 정리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지인이 동원한 조직폭력배 등의 협박에 못 이겨 경영권을 내놓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낭패를 당한 것이다. 유 대표는 1년 6개월간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이미 지인이 모든 재산을 빼돌려 회사는 빈껍데기만 남은 뒤였다.

    2010년 4월 빈손으로 귀국한 그는 대리운전을 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보내다 유망 벤처기업에 취직했지만 그마저 2년 만에 그만뒀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담보로 잡아둔 국내 부동산들이 강제 경매됐고, 체납한 양도소득세와 이자, 가산세에 빚 3억 원까지 있어 월급과 통장이 압류돼 더는 회사를 다니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사면초가 상황에서 캠프에 갔다”고 했다.

    캠프 수료 후 중기공단의 재창업아카데미에 참가해 교육받은 유 대표는 중소기업청 R·D지원사업자금을 융자받으려고 법인 설립에 나섰다. 주변 도움으로 2013년 7월 사업장을 마련하고 자본금 100만 원으로 회사를 설립한 뒤 중기공단에서 재창업자금을 지원받고 생산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후 10대 1 경쟁을 뚫고 중소기업청 자금도 지원받아 제품 개발에 나섰다. 유 대표는 현재 초소형 흑체(열상카메라 테스트용 절대온도발생기)를 제작, 판매한다. 그는 “열상카메라는 유치원, 병원, 축사 등에 설치하면 사람 혹은 동물 체온을 감지해 질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로, 향후 시장 전망이 좋다”고 밝혔다.

    김영만 대표

    10년간 시련 이기고 ‘숭늉차’ 판매

    실패와 절망 딛고 성공의 길로 나서다
    김영만(48·사진) ㈜향천 대표에게 지난 10년은 시련의 세월이었다. 2002년 누룽지 제조 기계를 개발해 한때 연매출 36억 원을 기록했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신제품을 개발하려고 조급하게 진행한 투자와 그로 인한 자금 압박 때문이었다. 제품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공장은 경매에 넘어갔고 2007년 결국 회사가 도산했다. 그동안 신제품 개발에 투자했던 10억5000만 원도 공장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졌다.

    차마 가족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던 김 대표는 “회사 형편이 어렵다”고 둘러대고 아내와 아이들을 친정으로 보냈다. 살던 아파트를 팔아 직원들 밀린 월급을 청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자신 대신 친구를 대표이사로 내세워 동업에 나섰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과 제품 아이디어를 활용해 재기하려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8년 동업자가 회사를 몰래 매각하고 도망간 것.

    더 황당한 일도 겪었다. 부도 후 경매로 나온 그의 공장을 사들인 사람이 중국 쌀을 국산으로 속여 누룽지를 만들어 판매하다 구속되는 바람에 ‘부도덕한 영업’에 대한 모든 비난이 김 대표에게 쏟아진 것이다. 그는 “내가 망한 줄 몰랐던 지인들이 ‘괜찮은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욕을 했다. 너무 억울해 방송사에 항의했더니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다고 했다. 사업 실패보다 그 일이 더 큰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두 번의 사업 실패 후 무작정 캠프를 찾아간 김 대표는 그곳에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다. 이후 중기공단이 주최한 재창업아카데미에서 교육받고 2012년 역시 중기공단으로부터 2억5000만 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재기 발판을 마련했다. 1년간 발품을 팔아 창업과 벤처, 특허 및 기술 관련 교육을 찾아다닌 그는 대구 달성군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돌입, 커피믹스 같은 형태의 스틱형 냉온 숭늉차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2013년 4월부터 9개월간 매출 약 3억 원을 올린 김 대표는 지난해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주최한 농·식품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하는 R·D 과제에 참가해 개발 자금 7000여만 원도 받았다. 과제를 열심히 수행해 중국에서 들여오는 찹쌀누룽지를 국산화하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패와 절망 딛고 성공의 길로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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