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개혁 열차’는 어디로?

냉철한 상황 인식 후 개혁안 만들어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성공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4-01-06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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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거리는 ‘개혁 열차’는 어디로?

    2013년 12월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승리 위한 전국 철도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철도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2일 동안 진행된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파업은 2013년 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철도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는 우리 경제와 산업발전을 이끈 철도가 민영화된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주무부처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민영화는 없다”고 맞섰다. 코레일은 철도노조 간부 19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 및 고발했고, 파업 참가자 7641명 전원을 직위해제했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팽팽히 맞서던 정부와 철도노조의 대치는 결국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철도소위)를 구성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파업은 끝났지만, 114년간 독점구조를 유지하며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국가 대동맥을 이참에 제대로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은 여전히 높다. 2005년 코레일 출범 이후 누적 영업적자가 4조5000억 원으로 연평균 5000억~6000억 원 적자가 지속되고, 부채 17조6000억 원, 부채비율 435%에 달해 국가경제에도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부채 급증의 가장 큰 이유는 매출액 대비 48%에 이르는 인건비 비중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100만 원을 벌면 절반가량을 인건비로 쓴다는 것. KTX 기관사 연봉은 평균 9000만 원으로, 항공기 기장(9500만 원)과 비슷하다. 고속버스 운전기사 평균연봉 3600만 원의 3배에 이른다. 일정 연한이 되면 무조건 승진하는 자동승진 시스템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 인건비만 한 해 13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마다 철도 구조개혁을 외쳤지만, 철도노조가 1988년 이후 10차례 파업으로 맞서면서 철도 구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이번 파업의 도화선이 된 ‘철도산업 발전방안’도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정부는 2012년 6월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내놓고, 코레일 자회사를 세워 2016년 개통하는 수서발 KTX 노선 운영을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수서발 KTX 노선을 서울 지하철 9호선처럼 민영화해 경쟁체제로 가자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운임은 비싸지고, 일부 재벌에 특혜를 준다”는 ‘민영화 비판’의 덫에 걸려 흐지부지됐다.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 대신 코레일 자회사를 설립해 한 지붕 안에서라도 경쟁하게 하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독일식 지주회사제 운영방안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코레일과 민간 간 경쟁, 즉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민간자본 참여를 중시한 스웨덴 방식의 모델을 선택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독일식 지주회사제’ 운영방안을 꺼내들었다. 코레일 자회사를 설립해 코레일이 경영권을 갖는 방식으로, 코레일이 간선철도 중심의 여객운송사업을 하면서 지주회사 구실을 수행한다.

    나머지 기능은 △여객 부문(수서발 KTX, 공항철도, 벽지노선 등은 제3섹터 운영회사) △화물 부문(철도 물류회사) △지원 기타 사업 부문(철도정비회사, 철도시설회사, 역세권 개발 등 부대사업 회사)으로 나눠 자회사를 세우기로 한 것. 현재 코레일이 여객운송, 화물운송, 시설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모두 떠맡아 적자경영 책임이 명확지 않고, 비용을 절감할 유인책도 부족하므로 이를 분리해 회계와 책임을 명확히 하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 묵은 과제인 철도 구조개혁을 추진하려면 정부부터 냉철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개혁안을 만들어 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철도노조 파업 등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저항을 돌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는 정부의 철도 구조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몇 가지 논쟁거리를 낳는다는 점에서 아쉬워하는 전문가가 많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코레일 자회사가 운영하는 수서발 KTX와 코레일이 운영하는 서울·용산발 KTX가 경쟁하는 정부 방안의 경우 그 효율성을 따져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수서발 KTX는 서울 강남권과 경기 남동부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지역독점체제’가 형성될 개연성이 높은 만큼 경쟁 효과가 과연 나올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독일식 지주회사제의 기본 조건은 시설과 운영 통합이지만, 국토교통부(국토부) 안은 코레일 시설과 운영 분리를 전제로 한 만큼 그 효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수서발 KTX와 서울·용산발 KTX가 운행시간과 열차 시설도 비슷하다면 서울 강북권과 경기 북부 거주자는 거리상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찾게 된다. 제대로 된 비교와 서비스 경쟁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지하철과 달리) 같은 노선을 쓰면서 다른 민간회사가 참여하는 것은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요금과 선로 사용료, 운행횟수 등은 정부에서 부여한 면허조건과 선로사용계약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실질적 경쟁이 가능하다. 운영 과정에서 비용과 요금구조가 드러나는 만큼 비효율 요인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다”며 “오히려 현재의 불투명한 회계구조 아래에서 코레일이 수서발 KTX를 운영한다면 코레일 자구 노력 의지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용 마련과 민영화 여부도 논란

    덜컹거리는 ‘개혁 열차’는 어디로?

    철도노조는 2013년 12월 30일 파업 종료를 선언했다. 역대 최장기 철도파업으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여기에 경쟁체제 도입과 자구 노력으로 코레일의 적자를 해소하겠다지만, 정작 정부가 그 효율성을 예측하면서 정교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철도 길이의 10%(약 3600km)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복수사업자 체제를 도입하면 정확하게 어떤 기대 효과가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고,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4000억 원 이상 수익이 예상되는 수서발 KTX를 떼어내면 오히려 코레일 적자만 증가하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자회사를 세워 코레일의 효율성 향상을 꾀한다지만 민간회사와 비교해 출자회사가 가지는 장점은 명확지 않다”며 “수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노선을 분리할 경우 철도 경영여건 악화와 철도 공공성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예측 수요가 국토부 운영사업제안서에는 4만1412명, 철도시설공단 용역보고서에는 7만8279명, 국토부의 토론회 제출 자료에는 10만7490명으로 제각각이어서 KTX 분할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고 주장한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제대로 된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비용 마련과 민영화 여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초기 자금 1600억 원 중 50%(800억 원)는 자본금, 나머지는 차입금으로 조달된다. 코레일은 초기 자본금 800억 원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328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자금 59%가 투자된다. 연기금은 보통 7% 정도의 목표수익률을 두고 운용되는 만큼 수서발 KTX 운영 이익은 철도산업에 재투자되지 못하고 철도 외 분야로 빠져나가게 돼 공공 성격의 철도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효진 꽃동네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투자 가능한 연기금은 소수에 불과하고 기금 또한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투자 가능 지분율 상한선이 정해진 만큼 정부가 말한 공적자금 투입과 유지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여기에 투자자의 매각금지 정관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언제든 개정할 수 있어, 민영화 수순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정부는 “민간 매각 제한에 동의하는 공적자금만 유치하고, 공공부문 지분을 매각할 경우 이사회의 특별결의(3분의 2 출석, 5분의 4 찬성)를 거치도록 하는 등 코레일 동의 없이 정관 개정이 불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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