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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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감성 안아주는 첼로 음유시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 조이영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lycho@donga.com

    입력2013-12-02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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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감성 안아주는 첼로 음유시인

    미샤 마이스키가 한국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12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를 한다.

    연주자 명성과 내한 빈도는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첼리스트만큼은 예외인 듯싶다. 미샤 마이스키(65)는 1988년 처음 한국 무대에 선 이래 25년간 총 18번이나 내한공연을 펼쳤다. 그는 첼리스트 장한나를 세계 음악계에 소개했고, ‘그리운 금강산’ ‘청산에 살리라’ 같은 한국 가곡을 음반에 담는 등 대표적인 친한파 음악인으로 꼽힌다.

    마이스키는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지만 워낙 자주 보다 보니 조금은 덤덤해진 것도 사실. 그럼에도 의미와 품질을 겸비한 이번 연주회는 특별한 면이 있다. 마이스키가 한국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12월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한다. 그가 엄선한 협주곡 3곡을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들려준다. 레퍼토리는 브루흐 ‘콜 니드라이’,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그의 연주를 두고 ‘동양적인 한의 정서’가 깃들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연주는 차분하기보다 자유분방함과 강렬한 개성으로 가득하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모로이시 사치오는 이렇게 평한다.

    “마이스키는 첼로를 쥔 음유시인 같다. 그가 연주하는 유연하면서도 강력한 칸타빌레는 관객을 포로로 만들고, 관객은 어느덧 그가 떠나는 여행의 동반자가 돼 낯선 곳에 환상을 머금고 다다르게 된다. 마이스키의 첼로는 아름다움으로 한정할 수 없는 최고의 기예를 보인다.”

    마이스키는 옛 소련 시절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유대계다. 1962년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고등음악원에 입학했으며, 3년 뒤 ‘미래의 로스트로포비치’라는 수식어를 달고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협연을 통해 데뷔했다. 이듬해인 6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건너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했다. 연주자로서 탄탄한 길에 들어서려던 무렵, 70년 반체제 운동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18개월간 투옥했다. 그는 누이가 이스라엘로 망명한 것이 빌미가 됐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는 수감 생활의 충격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1973년 옛 소련을 벗어나 이스라엘에 머물면서 카사도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했다. 이 연주회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서방 세계에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이 공연을 본 독지가가 그에게 1720년산 몬타니아나 첼로를 증정했고, 그는 지금도 이 악기를 사용한다.

    이 악기와 마이스키의 인연은 깊다. 1995년 아시아 투어 때 마이스키는 몬타니아나와 동행하지 못했다. 첼로를 벽에 기대어 놓았는데 고양이가 그 사이를 지나가다 악기를 넘어뜨려 깨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스키는 어쩔 수 없이 1690년산 첼로를 샀는데, 수리를 마친 몬타니아나는 전보다 소리가 더 좋아져 돌아왔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72)와는 일본 벳푸 페스티벌, 루가노 페스티벌에서 늘 호흡을 맞추는 절친한 사이. 5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와 아르헤리치는 듀오 콘서트를 열기로 했으나 아르헤리치가 건강 문제로 내한하지 못했다. 이에 마이스키는 이 콘서트를 독주회로 바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다.

    마이스키는 1985년 이래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첫 녹음은 명연으로 손꼽힌다. 2000년 바흐 서거 250주년을 맞아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새로 녹음한 음반을 내놨을 때 그는 “같은 곡을 연주한 이전의 내 음반을 들으니 마치 바흐의 패러디처럼 들렸다. 내 연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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