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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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전략 조율사’ 어디로 갔나

국가안보실 내 큰 그림 그리는 ‘전략’ 부서 존재하지 않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3-11-22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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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전략 조율사’ 어디로 갔나

    취임 직후였던 3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 상황실에서 안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북한의 선제타격 위협이 정점에 이르던 시점이다.

    “터놓고 말해 국민이 대통령을 평가하는 잣대는 딱 한 가지, 경제 성적표뿐이다. 그러나 역사가 평가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남북한문제, 안보문제에서 어떤 성과를 기록했는지가 가장 오래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퇴임 무렵 통일문제에서 역사적 족적을 남기는 것, 통일을 이루거나 최소한 그 주요 기반을 쌓은 대통령이 되는 목표를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5년 후 통일 대통령론’. 최근 청와대와 안보부처 관계자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배경 설명의 골자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뒤에 따라붙는 구체적인 정책노선이 부처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점이다. ‘김정은 체제가 급속도로 취약해지고 있으므로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북한을 무너뜨려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이른바 조기 붕괴론과 ‘남북한 협력을 제도화해 사실상 통일에 준하는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 구축론이 그것이다. 서론은 같지만 본론은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들이 각각 “대통령의 본심은 내 얘기가 맞다”고 강조한다는 점.

    대통령 ‘생각의 차이’ 큰 혼선

    이렇듯 ‘조율되지 않은 생각의 차이’는 구체적인 부분에서도 혼선을 일으킨다. 11월 2일 프랑스 ‘르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와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고, 이내 관련 물밑 논의가 무르익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틀 뒤 공개된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 제1비서를) 신뢰할 수 없다. 말을 한 것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자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BBC와의 인터뷰는 10월 29일 진행된 것이다.

    정반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 시차 없이 등장해 뒷말을 낳자 청와대는 “정상회담 발언은 원칙적인 내용을 언급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한 전직 안보당국 고위관계자는 “그런 해명은 국장급 당국자가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다 실수할 때나 쓰는 표현”이라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메시지가 관리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안보정책의 주된 기조나 방향성이 명확히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 아니냐는 취지다.



    안보정책의 효율적 조정과 집행은 최근 동북아 국가의 핵심 이슈다. 일본은 내년 1월을 목표로 그간의 숙원사업이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백악관 NSC를 벤치마킹한 이 조직의 초대 수장으로 야치 쇼타로 내각관방참여가 내정된 상태. 자타가 공인하는 아베 신조 총리의 핵심 참모다. 중국은 11월 12일 끝난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를 통해 역시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창설하기로 의결했다. 외사영도소조와 국가안전부, 공안부 등으로 분산돼 있던 기능을 하나로 묶어 안보문제와 군사정책을 총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관장하는 이 위원회에는 권력서열 3위인 장더장 중국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등 막강 실력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신설 조직의 공통된 목표는 각 안보부처를 관장해 일관된 정책 추진 프로세스를 만들어내겠다는 것. 특히 각 부처의 이해관계나 타성 등이 개입될 여지를 최소화함으로써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결정자’에 가깝게 국가안보정책 결정 과정을 일신하겠다는 뜻이다. 주변국과의 긴장 파고가 높아갈수록 최고지도자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한 스마트하고, 신속하며, 일관성 있는 정책 대응이 필수적이라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한국의 경우 헌법 제19조 1항에 규정돼 있는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정권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강력한 NSC 사무처와 후신인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이 사실상 실무부처를 압도하는 권한과 기능을 수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진 크고 작은 마찰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이를 폐지하고 외교안보수석실을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을 운용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이명박 정부 역시 국가위기관리실 같은 별도 조직을 신설, 강화해야 했다. 대통령선거 기간 박근혜 캠프는 NSC 체제를 부활해 외교·안보·통일·국방 분야의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기에 이른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복안은 출범 이후 국가안보실 신설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NSC 체제의 부활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먼저 조직 자체가 전임 정부의 국가위기관리실 체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데다 직제나 인원 규모, 기능 등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 특히 대통령비서실 소속인 외교안보수석실과 두 개의 체제가 병립하게 된 점은 가장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달라진 것은 명칭과 김장수 실장이라는 실세 임명뿐”이라는 뒷말이 나온 배경이다.

    초기 세팅 과정부터 어려움

    ‘안보전략 조율사’ 어디로 갔나

    10월 22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부터)이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브로니 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폴란드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임기 초 정부조직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국가안보실이 한동안 법적 근거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김장수 실장이 방문증을 달고 청와대를 출입해야 했던 이 시기, 주요 안보부처는 수장 취임과 대통령 보고를 상당 부분 끝마쳤다. 한마디로 ‘초기 세팅’ 과정에서 국가안보실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던 셈이다.

    창설 직후 국회 보고자료에 따르면 국가안보실 직제상 정원은 총 13명. 김 실장을 필두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차장을 겸임하고, 국제협력비서관, 정보융합비서관, 위기관리센터장이 각각 임무를 나누어 맡는다. 그러나 각 실무부처에서 파견받은 30명을 포함해 실제 인원수는 40명을 조금 넘는 수준. 기억해둘 것은 파견자를 포함한 주요 직원이 대부분 전임 정부 위기관리실에서 그대로 넘어온 인력이었다는 점이다. 신설된 국제협력비서관을 포함해 실무자 선까지 모두 합해 4~5명만 김장수 실장 임명 후에 충원된 직원들로, 함께 손발을 맞춰온 ‘김장수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다.

    김홍균 국제협력비서관은 외교부 출신이지만, 서용석 정보융합비서관과 김희철 위기관리센터장은 모두 육군 장성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직위에 임명됐다. 최근 김 센터장이 전역을 신청함에 따라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 역시 현역 육군 준장이다. 파견직원 가운데도 군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 규정에 따라 양복을 입고 근무하지만 아침마다 거수경례를 하는 국가안보실 특유의 분위기는 출범 초기 청와대 안에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위기 대응과 상황 감시에 무게중심을 둔 이러한 체제는 2~4월 북한의 ‘말 폭탄’ 정국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수십 일간 귀가하지 않고 청와대 인근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한 김장수 실장은 개성공단 폐쇄와 재가동 정국에서 중심 구실을 수행했고, 박 대통령도 이에 만족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현재도 위기관리센터는 당연히 24시간 가동 중이고, 안보실 내 다른 부서도 오전 7시 출근, 10시 퇴근이라는 강도 높은 업무 스케줄을 이어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정작 눈에 띄는 대목은 따로 있다. 국가안보실 안에 ‘전략’을 전담해 다루는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 보고자료에 규정돼 있는 국가안보실의 첫 번째 임무는 ‘각 분야의 중·장기 정책과 전략 기획·조정·관리’이고 북핵 및 대북전략에 대한 기획이 그 핵심으로 적시돼 있지만, 역설적으로 안보실에는 이를 전담하는 비서관이나 부서가 없다는 의미다. 8월 첫 회의가 열린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의 관리를 국제협력비서관이 담당하고 실무부처 당국자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운영됐다고 하지만, 전략기획실이 NSC 사무처 선임부서였던 노무현 정부나 대외전략비서관이 외교안보수석실 선임비서관이었던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봐도 무게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제협력비서관실 주도로 8월 말 중기 국가안보전략지침 작성을 완료해 관계부처에 회람하게 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통합 안보기조 구체화를 위해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반박한다. 각 분야별, 지역별로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전략 업무에도 상당한 공력을 기울여왔다는 것. 대외비 문서라 공개할 수 없을 뿐, 박근혜 정부의 최상위 안보전략은 이미 안보부처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지침이 완성된 후 중·장기 대북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부처 간 시각차는 오히려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더욱이 이전 정부 청와대에서 전략 분야를 전담했던 부서의 비서관급 실무 책임자들은 모두 대선후보 시절부터 대통령과 함께했던 측근 참모들이었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한 전직 청와대 안보부서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안보정책 조정기구의 핵심은 상향보고와 하향지시 경로의 통합이다. 실무부처가 수집한 정보와 정책보고서가 오로지 이 기구를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거꾸로 대통령의 지시와 지침은 오직 이 기구를 통해 실무부처에 전달돼야 효율적인 조정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실무부처를 압도할 만한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조정기구 수장의 카리스마다.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이명박 정부의 김태효가 모두 그런 힘을 갖고 있었다.”

    반면 김장수 실장의 입지는 사뭇 다르다는 게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먼저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이전 정부의 ‘키맨(Key Man)’과 같은 위상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으리라는 것. 이를 잘 아는 김 실장 본인이 자신의 어젠다나 소신을 관철하려고 애쓰기보다 ‘두드러지지 않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분위기는 김 실장의 ‘고향’이라 할 국방부보다 국가정보원이나 외교부, 통일부 등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남재준 원장과 윤병세 장관 등 대선 참모 출신 ‘힘 있는 장관’들이 취임 초기부터 업무를 장악한 탓에 김 실장의 운신 폭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들어 원로그룹과 대통령의 측근 비서진이 안보 이슈에 관여하고 있다는 소식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명’을 등에 업고 칼을 휘두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는 뜻이다.

    ‘안보전략 조율사’ 어디로 갔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11월 18일 청와대에서 첫 한중 고위급 외교안보전략 대화를 갖고 있다.

    현 안보정책은 각개약진 형태

    일부 전문가는 ‘장기 대북전략 혼선’ 또한 이러한 현실과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개성공단 국제화나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등 대통령 본인이 꺼내놓은 주요 이슈가 벽을 넘지 못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 등 첨예한 사안에 대해 이렇다 할 복안을 내놓지 못하는 한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부처 간 시각이나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 이러한 한계가 한층 분명해지는 것이다. 역대 정부 정책자문에 참여해온 한 학계 전문가는 “최근의 안보정책 운용은 한마디로 각개약진, 이슈가 터져야 일대일로 반응하는 수세적, 단기적 대응에 가깝다. 통일된 비전이나 장기 플랜을 바탕에 두고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촌평했다.

    중국의 국가안전위원회에 통합될 예정인 외사영도소조는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향후 대북정책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바 있다. 그 결론이 ‘비핵화보다 북한 붕괴 방지가 중요하다’는 원칙이었고, 이러한 전략 기조는 최근까지 중국 정부의 모든 대외정책에 절대적으로 반영돼왔다.

    과연 현재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러한 토론을 주도할 수 있을까. 첨예한 내부토론으로 구체적 이슈에 대한 장기전략을 결론 짓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모든 정책을 조율, 수정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최소한 현재 모습만 보면 그 한계는 분명한 듯하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는 51개월, 업적을 만들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의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뒤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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