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8

2013.10.14

베이징 목 조른 ‘가을 스모그’

중국 대기오염 갈수록 심각 숨 못 쉬는 공포…공기 질 개선 방안 효과 미지수

  • 베이징=이헌진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입력2013-10-14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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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절 연휴(10월 1~7일)로 고질적인 교통체증이 사라졌다. 공장은 휴업하고 공사장도 작업을 멈췄다. 난방철도 아니다. 그런데 스모그가 왜 생기지?”

    9월 말~10월 초 중국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허베이(河北)성 일대를 뒤덮은 악성 스모그는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민심은 ‘빨라도 너~무 빨리 온’ 스모그로 동요하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를 ‘황금의 가을(金秋)’이라고 부른다. 하늘도 높고 푸르다. 베이징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인 이때 스모그가 들이닥쳤다. 그렇다면 11월 난방을 시작하면 훨씬 심한 스모그가 생길 게 아닌가. 원래부터도 난방을 시작하면 베이징 뒷골목은 연탄 연기로 자욱하고, 도시 곳곳에 매캐한 연탄 냄새가 떠도는데…. 사람들은 올해 초 발생한 역사상 최악의 겨울 스모그를 떠올린다. 이러다 베이징의 대기오염은 치유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9월 한 달 동안 15일 발생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스모그가 관측된 날은 사흘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측정치를 통해 오염을 확인할 뿐 실생활에 큰 영향은 없었다. 올해는 다르다. 9월 한 달 동안 스모그 발생일이 15일이나 됐고,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심했다.



    특히 9월 27일부터 연속 사흘간 스모그 농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10월 4일 베이징에 있는 대기오염 측정소 35곳 가운데 28곳에서 심각한 오염을 알리는 빨간불이 켜졌다. 5, 6일에는 더욱 심해져 6일 중국 중앙기상대는 스모그 황색경보를 발령했다.

    도시 대부분에서 스모그의 주요 성분인 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PM 2.5) 초미세먼지가 ㎥당 300㎍을 넘었고, 일부 도심에서는 500㎍까지 높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인 25㎍/㎥의 20배가 넘는,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오염 수준이다.

    스모그로 고층건물 윗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낮이 밤처럼 어두컴컴해지자 차량들은 낮에도 비상등과 헤드라이트를 켰다. 손을 잡고 길을 걷는데 애인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시야가 100m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이 지역 고속도로 30여 곳이 봉쇄됐다. 이번 스모그는 10월 7일부터 호전되기 시작해 8일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사라졌다.

    이번 스모그의 원인에 대해 중국 중앙기상대 장팡화(張芳華) 수석예보관은 10월 6일 중국 중앙(CC)TV에서 “화베이(華北) 지역의 찬 공기 세력이 약하고 북쪽으로 치우친 데다, 특히 지면에 가까운 대기층의 풍속이 약하다”며 “상대습도가 높아 짙은 안개가 끼면서 오염물질이 확산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산지인 서북쪽이 대도시가 많은 인구밀집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도 스모그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이는 현상적 분석일 뿐이다. 주민들은 이 지역의 대기정화 능력이 이미 한계를 한참 넘어섰다는 상황을 절감하면서 대책 마련을 호소한다.

    중국에서 스모그가 건강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결과는 드물지만, 모두 소름 끼치는 결론을 담고 있다. 먼저 평균 기대수명을 5.5년 단축시킨다고 한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와 중국 칭화(淸華)대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북부의 스모그는 폐암, 심장질환, 뇌중풍 등의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의료계 거물인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도 이를 인정한다. 그는 CCTV에서 “스모그는 호흡기계통 질병의 직접적인 발병 원인이며 심혈관, 뇌혈관, 신경계통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중 원사는 또한 “PM 2.5가 ㎥당 10㎍ 증가할 때마다 호흡기계통 질병으로 인한 입원율은 3.1% 높아지고, 200㎍까지 증가하면 하루 평균 사망률이 11% 늘어난다”고 전했다. 그는 “스모그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훨씬 무섭다”면서 “사스는 격리 등 각종 대응방법이 있는 데 반해 대기오염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베이징 목 조른 ‘가을 스모그’

    붉은색이 스모그 발생지역이며, 색이 짙을수록 오염이 심하다는 뜻이다. 이날 베이징에서는 스모그 황색경보가 발령됐다.

    또 중국 종양등록센터가 6월 공개한 ‘2012년 중국 종양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인의 폐암 발병률은 최근 30년 사이 465%로 급증했다. 중국인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운동과 식사조절 등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도 폐암 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실을 두려워한다.

    특히 외부 활동은 즉각적인 건강 손상으로 이어진다. 이들 지역 교통경찰의 비염 발병률은 40%, 인후염 발병률은 23%로 일반인보다 3분의 1, 또는 절반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스모그가 몰려올 때마다 재채기, 콧물, 인후통 등 호흡기계통이 즉각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때 이른 스모그에 베이징 사람들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난방으로 석탄 연소가 급증하는 겨울 한 철을 견디기도 벅찬데, 가을에도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는 “수십 년을 베이징에서 살아 온갖 풍상을 겪었지만, 스모그 때문에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글이 유행한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온갖 정이 떨어진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이런 반응은 1월의 스모그 공포에서 비롯한 것이다. 1월 12일 베이징의 PM 2.5 농도가 WHO 기준치의 40배에 가까운 993㎍/㎥을 기록하는 등 1월 내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지속됐다. 1월 중 스모그가 발생하지 않은 날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당시 중국과학원 대기물리연구소 왕위에스(王躍思) 연구원은 “베이징 상공에 4000t의 오염물질이 떠 있다는 의미”라며 “베이징에서 공기는 더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물질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되살아나는 1월 악몽

    베이징은 공기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주민이 피부로 느낄 만한 스모그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1년 전만 해도 PM 2.5는 베이징에서는 낯선 단어였다. 오죽하면 지난해 6월 중국 환경당국이 주중 미국대사관의 PM 2.5 측정 수치 공표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겠는가. 외국 공관이 중국의 PM 2.5를 측정해 발표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로, 중국의 요구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규범에도 맞지 않는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중국인은 PM 2.5에 대해 잘 몰랐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1월 홍역을 치른 뒤 베이징 사람들은 PM 2.5의 폐해를 절실히 깨달았다. 신문, 방송, 라디오에서 매일 수십 차례 이 단어가 나온다. 환경당국의 과거 오만함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스모그는 단숨에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스모그 해결에) 행동으로써 인민이 희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부총리였던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현재 상황은 하루 이틀 동안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돼온 것”이라며 “그것(스모그)은 중국 현대화와 함께 진행돼왔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스모그의 근본 원인과 난제

    베이징 목 조른 ‘가을 스모그’
    스모그의 발생 원인은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략 비슷하다. 베이징 환경보호국은 베이징 PM 2.5 발생 기여율로 볼 때 배기가스(22.2%), 석탄 연소(16.9%), 공사장 등의 비산먼지(16%), 공업용 도료 휘발(15.9%)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베이징의 자동차 수는 급증을 거듭해왔다.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03년 200만 대에서 올해 8월 말 현재 이미 537만 대를 돌파했다. 자동차들이 매년 소모하는 석유만도 700만t이며, 배출되는 오염물질 총량은 90만t으로 집계된다. 또 베이징을 둘러싼 지역은 중국 제2의 석탄소비 지역이다. 제철, 화력발전소, 화학공장이 밀집해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 지역에서 연간 3.5억t의 석탄이 불탄다. ㎢당 이산화황 배출량은 8.5t으로 전국 평균(2.3t)의 3.7배에 이른다. 이런 환경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 스모그 현상을 해결하는 데 최소 2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중국 정부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국무원은 9월 12일 ‘대기오염방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석탄 사용 감축, 차량 수 제한, 오염물질 배출 공장 폐쇄 등 강력한 조치를 담았다. 모두 1조7500억 위안(약 307조 원)을 투입하는 이 계획은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 지역 등 수도권과 창장(長江)강 삼각주, 주장(珠江)강 삼각주 지역의 PM 2.5 농도를 2017년까지 각각 25%, 20%, 15% 줄이는 게 목표다.

    베이징시도 최근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천연가스발전소로, 시내버스를 청정에너지 버스로 교체하고 매연 차량 검사 및 단속 등 공기 질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1조 위안(약 180조 원)을 투입한다. 베이징의 차량 보유 대수는 현재보다 조금 많은 600만 대 이내로 제한된다. 스모그가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에는 차량 홀짝제 운행, 초중고 휴교령도 실시한다. 석유품질 개선 문제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조치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스모그 관련 유행어 확산

    “2000만 명 인간 공기정화기가 마시면 해결”


    중국에서는 스모그와 관련한 우스갯소리가 꽤 유행하고 있다. 신선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구름 속 도시’에 사는 현실을 풍자한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소후(搜狐)닷컴은 이런 농담을 소개했다. “베이징의 대기오염 물질은 모두 2000만 명의 지원자들이 폐로 흡입해 정화시켜왔다. 하지만 국경절 황금연휴(10월 1~7일)에 ‘성능’ 좋은 사람들이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필터’를 청소하러 떠났다. 스모그는 그 때문에 발생했다. 연휴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오면 스모그는 사라질 것이다.”

    베이징 사람들을 인간 공기정화기로 빗댄 것이다. 찬 공기가 내려온 덕분이지만, 이 농담처럼 연휴가 끝나자 베이징 스모그는 꽤 사라졌다.

    스모그의 주요 성분인 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미세먼지 PM 2.5는 별명이 많다. 중국어로 공무원과 발음이 같은 ‘궁위위안(公霧源·안개의 근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약과다. 화끈한 표현으로는 ‘천지스한(塵疾思汗)’이라고도 한다. ‘먼지로 인한 질병의 왕’이란 뜻인데,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중국어로 成吉思汗·청지스한)’에서 따왔다. 연예계에서는 ‘천관시(塵慣吸)’라고 부른다. ‘먼지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는 뜻으로, 중화권의 유명한 플레이보이인 홍콩배우 천관시(陳冠希)와 동음이의어다.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천관시처럼 스모그는 뜨거운 화제인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들으면 가슴이 철렁할 표현도 있다. ‘웨이런민푸우(人民服霧·인민들에게 스모그를 마시도록 하다)’인데, 중국공산당의 대표 구호인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해 봉사하다)’를 바꾼 표현이다.

    ‘북국의 풍광, 천 리에 얼음이 덮이고, 만 리에 눈이 휘날린다’로 시작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운문 ‘심원춘·설(沁園春·雪)’을 패러디한 ‘심원춘·스모그’도 나왔다. 이 운문은 ‘북경의 풍광, 천 리가 흐릿하고, 만 리에 먼지가 휘날린다’로 시작한다.

    9월 22일부터 10월 6일까지 베이징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진행된 ‘차이나오픈’ 국제 테니스대회도 뒷말을 낳았다. 스웨덴 남자선수는 트위터에 “숨을 쉴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에 나쁜 도시”라고 정직한 말을 올렸다. 중국이 자랑하는 여자 테니스선수인 리나(李娜)가 슬로바키아의 테니스 여제 다니엘라 한투호바를 이기자 “PM 2.5가 홈그라운드의 최대 이점”이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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