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다녀온 여성 며느리 삼지 말라는 이유

북한 외화벌이 수단과 방법 안 가려…자본주의 어두운 그림자 독버섯처럼 퍼져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3-09-30 11:0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중순, 필자의 중국 내 북한 취재원이 두 가지 사건을 알려왔다. 모두 8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주중 북한대사관 고위층 인사의 딸 실종 사건’과 ‘북한 식당에서의 여종업원 성매매 사건’이 그것이다.

    9월 중순 국내 언론에는 ‘평양 고위층 인사의 19세 딸이 한국으로 입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탈북 여성은 우리의 서울지방경찰청장에 해당하는 평양 고위간부의 딸이다.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한류를 동경해오다, 5월 탈북해 9월 중순 한국으로 입국했다는 내용이다.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 자녀 1명으로 제한

    보도가 나올 즈음 중국에 있는 필자의 취재원이 알려온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21세 여성으로, 베이징에 있는 주중 북한대사관 고위층 인사 A의 딸이다. A는 베이징에서 아내와 딸, 아들 등 네 명이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8월 말 A에게 의문의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딸을 데리고 있으니 살리고 싶으면 돈을 갖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발신자번호는 서울이었지만 조작됐을 공산이 크다. 만일 A의 딸이 납치됐다면, 납치되자마자 다른 지역도 아닌 한국으로 끌려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는 사건 발생 직후 이러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평양으로부터 당장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A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곧바로 귀국했다. 이 의문의 실종사건에 대해 북한대사관 내부에서는 베이징에서 달콤한 유학생활을 맛본 딸이 애인과 함께 도망갔으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탈북을 작심한 딸이 이후 생활을 위해 애인과 짜고 아빠에게 ‘납치당했다’며 돈을 요구했을 거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필자의 취재원은 북한 당국이 해외에 거주하는 외교관의 자녀 수에 제한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자녀가 2명 이상이면 1명만 해외에 함께 가고 나머지 자녀는 북한에 두도록 한 것이다. 일종의 인질인 셈이다. 취재원은 그러면서 이 조치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에 나가려고 일부러 ‘아이 하나 낳기 운동’을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해외에 다녀온 여성 며느리 삼지 말라는 이유

    중국 베이징의 차오양 공원 전경(위).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과 손자 김한솔(오른쪽). 김한솔은 최근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에 입학했다. 모두 그의 페이스북 계정(HanSol Kim)에 담겨 있는 사진들이다.

    이내 일본 언론에서 유사한 보도가 나왔다. 연휴기간인 9월 20일 일본 ‘산케이신문’의 보도다. 이 신문은 “북한 당국이 해외 주재 외교관을 비롯한 주재원들에게 자녀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을 9월 말까지 모두 귀국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하면서 “이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조치에 대해 “외국 유학을 경험해 체제에 부정적인 당 간부 자녀 등이 반발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김정은 정권의 출범을 전후로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낸 고위간부들이 늘었으며 유학지에서 실종되는 자녀도 끊이지 않는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문득 특파원 시절 한 공원에서 만난 북한 가족이 떠올랐다. 필자 가족은 베이징시에 있는 대규모 위락시설인 차오양 공원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이들을 위해 놀이시설을 찾으려 했지만 공원이 워낙 넓어 제대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인용 자전거를 몰고 이리저리 헤매다 한 가족을 만나 놀이시설의 위치를 물었다. 이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 다인용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중국인인 줄 알고 물었는데 10대 아이들이 우리말로 잡담을 하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한국말로 다시 물었더니 친절한 길안내가 되돌아왔다. 말투와 외모로 봐서 북한 가족임에 분명했다. 이 공원은 입장료와 놀이시설 이용료 등이 꽤 비싼 곳이었다. 그만큼 주말 나들이로 이곳을 찾을 수 있는 북한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주재원 간부의 가족일 거라고 생각한 이유다.

    북한 식당에서 대낮에 성매매

    웃음과 잡담 속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그 가족의 뒷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저 아이들은 북한과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이국의 학교에서 공부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중에 커서 북한으로 돌아가면 또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중국 내 북한 유학생의 이탈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자유를 맛본 젊은이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해외유학 생활 중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고 충격과 혼돈, 흥분에 빠져들리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 기억해둘 것은 이탈한 이들이 북한 내에서도 장래가 보장된, 이른바 ‘잘나가는’ 젊은이라는 점이다.

    북한 젊은이가 해외유학 중에 이탈한 사건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북한 당국은 2007년에도 해외유학생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주재원 자녀를 1명으로 줄이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하지만 큰 저항에 부딪쳐 이내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김정일 전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은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인 고미 요지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북한에 들어간 후 아버지에게 개혁·개방을 주장하면서부터 멀어졌고 이후 경계 대상이 됐다. (중략) 내가 오랜 유학 기간에 자본주의 청년으로 변하자 아버지는 동생들의 해외유학 기간을 단축시켰다.”

    김정남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불안을 느낀 김 전 위원장은 김정은의 유학기간을 줄이고 그의 변화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제어했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아버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통제하려는 것일까.

    8월 말 어느 벌건 대낮,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한 북한 식당. 북한 감찰요원들이 식당 화장실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성행위를 하던 여종업원과 외국인을 붙잡았다. 당시 밖에서는 식당의 공동사장인 조선족 S씨가 망을 보고 있었다. 최근 이런 암행단속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필자의 취재원은 전해왔다.

    중국 내 북한 식당은 통상 북한인과 중국 조선족이 공동사장을 맡아 운영한다. 여기에 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소속 1명이 지배인으로 파견돼 있다. 보위부 직원은 여종업원의 일탈 행위를 포함해 식당의 운영 전반을 관리, 감독한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최근 들어 보위부 직원이 식당 여종업원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나아가 외국인을 상대로 성매매까지 시키며 돈을 챙기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해외 공관의 주재원에 대한 검열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중국 내 북한 식당은 매일 저녁 일정 시간대에 북한 여성들의 공연이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음식값이 다소 비싸다. 여러 여성이 나와 동서양 악기를 다루며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춘다. 그뿐 아니다. 이들은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갖다 주고 카운터에서 계산도 한다.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은 대부분 미모를 갖춘 데다 노래와 춤 실력까지 겸비했다. 당연히 인기가 많다. 고정 팬을 손님으로 확보한 종업원도 있다. 만취한 손님의 짓궂은 장난을 넘기는 것도 다반사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늦은 시각 북한 식당 안에서 조선족이나 한국인 손님의 주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북한 여성 종업원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파원으로 있는 동안 필자는 한국에서 온 손님을 데리고 북한 식당을 여러 차례 방문해 공연을 보며 북한 술을 마셨다. 대부분 북한 여성들의 노래와 춤에 놀라곤 했다. 그러나 자주 방문한 필자에게는 이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에 무용수에 종업원까지 여러 구실을 해야 하는 이들의 고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그저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기억 속에 유난히 깊게 남은 북한 종업원이 있다. 베이징에서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19세 여성이었다. 어느 날 저녁 필자가 주선한 모임 테이블의 서빙을 맡았다. 고국에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베이징의 북한 식당으로 배정됐다고 했다. 말투에서 사회 초년병의 순진함이 뚝뚝 묻어났다. 다른 북한 식당에서 흔히 접하는 노련한 종업원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해외생활을 할 수 있어서 이북에서는 많은 여성이 이런 직업을 선호한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몇 달이 지난 뒤 점심시간에 평양냉면을 먹겠다며 식당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와 달리 피로에 절어 있는 종업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여성 인권침해 생각보다 심각

    중국에 진출한 북한 인력을 장기간 취재한 적이 있다. 북한 인력은 중국의 3D(Dirty, Dangerous, Difficult) 노동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묵묵하게 일만 하기 때문이다.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본래의 과중한 업무 외에도 성매매에 동원되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소문은 북한 내부로 빠르게 퍼진다. 북한에서는 요즘 “해외에 다녀온 여성은 며느리로 삼지 마라, 아내로 삼지 마라”는 얘기가 나돈다고 취재원들이 귀띔했다. 가혹한 현실이다.

    특파원 시절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한 북한 여성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인신매매 현실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주간동아’ 900호 관련 기사 참조). 강제로 팔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인신매매 길로 들어서는 여성도 적지 않다고 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팔려온 이 여성은 인신매매단이 자신을 팔아넘기고 받은 돈의 일부가 북한 보위부와 중국 공안에게 전해진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치를 떨었다.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이 느끼는 처참함을 필자 같은 남성은 아무리 해도 충분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인권운동가인 황재옥 평화협력원 소장은 최근 저서 ‘국경을 걷다’에서 이런 표현을 남겼다. “한계 상황에서 여성의 인권침해는 남성의 인권침해보다 더 심각하고, 성적인 수치감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는 여성에게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로 남는다.”

    최근 김정은 체제는 이념에 구애받지 말고 외화벌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라며 과감한 경제 개선 조치를 잇달아 터뜨리고 있다. 분명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다른 한 축에서는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리는 듯하다. 낮은 인권의식과 폭압적 체제는 그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 것이다. 8월 베이징에서 벌어진 두 사건이 필자 머릿속을 오래도록 복잡하게 만든 이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