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2013.09.16

“솔직히 방사능 생선 무섭습니다”

日 후쿠시마 오염수 식탁 위 공포… ‘안전신화’ 무너진 것이 더 큰 문제

  •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입력2013-09-16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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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2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원전) 인근을 취재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2주년(2013년 3월 11일)을 맞아 원전 주위 상황을 파악하려고 접근을 허용한 범위까지 들어갔다.

    원전에서 약 50km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차량을 빌렸다. 사지(死地)로 돌진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방사능 측정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키시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0.121μSv(마이크로시버트)였지만 원전에 가까이 갈수록 수치가 높아졌다. 낙엽에 측정기를 대면 0.989μSv까지 올라갔다. 일반인의 피폭 한계인 시간당 0.12μSv를 크게 웃도는 수치. 그런 경우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원전 사고 후 방사능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그 위험이 눈에 보였기에 안심이 됐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이 방사능 오염수 문제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바다가 오염되면 수산물도 오염될 수밖에 없다. 개연성이 높진 않지만 그 오염된 수산물이 식탁에 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식탁에 오른 수산물이 방사능에 오염됐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는 그처럼 무섭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방사능 오염수 사태의 발단은 7월 중순 일본 도쿄전력의 발표였다. 도쿄전력은 7월 22일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가 원전 앞 해수 취수구로 유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전까지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유입에 대한 의혹은 많았지만 도쿄전력이 이를 인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어 8월 7일 일본 정부 기구인 원자력재해대책본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1~4호기 원자로 주변을 흐르는 하루 약 1000t의 지하수 가운데 약 300t이 오염된 상태로 해양 취수구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공식 발표했다. 언제부터 그런 상태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원전 전문가들은 사고가 난 직후인 2011년 3월부터 그랬을 개연성이 크다고 본다. 하루 300t의 방사능 지하수가 계속 해양 취수구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8월 중순이 되자 방사능 오염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방사능 오염수를 담아둔 지상 저장탱크에서 오염수가 새기 시작한 것이다. 8월 20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4호기 뒤에 있는 저장탱크에서 오염수 300t이 누수됐다고 밝혔다. 저장탱크 수위가 3m나 낮아져 있었다. 오염수 중 일부는 땅으로 스며들고 일부는 바다로 직접 흘러간 것으로 추정했다.

    오염수가 정화장치를 거치지 않고 직접 바다로 흘러들어간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해양 오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방사능 지하수가 해양 취수구로 흘러들어갈 경우 취수구와 바깥 바다 사이에 만들어놓은 수중 펜스가 어느 정도 방사성 물질을 거른다.

    도쿄전력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9월 10일 주일한국대사관에서 한국 특파원을 상대로 설명회를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쿄전력은 “원전 바로 앞에 있는 해양 취수구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하면 다소 높게 나오지만 그 너머 바다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3km, 15km 지점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해도 기준치에 미치지 않는 극미량”이라고 했다.

    도쿄전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특파원들의 첫 반응은 “안전하네”였다. 정말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투성이 해양 오염을 변명으로 일관하는 도쿄전력에 대한 조롱이었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빼고 모든 원전 전문가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도쿄대와 해상기술안전연구소는 8월 8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 이내 바다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방사성 세슘 ‘핫스팟’이 40곳 발견됐다고 밝혔다. 핫스팟이란 방사성 세슘 농도가 주변보다 2~10배 높은 지역을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바다로 유출된 방사능 오염수가 실제로 바다를 오염시킨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솔직히 방사능 생선 무섭습니다”

    9월 6일 서울의 한 마트에서 직원이 판매 중인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고 있다.

    방사능 검사 거친 뒤 수산물 유통

    익명을 요구한 한국의 원전 전문가는 “해양 오염의 경우 그 수치가 높기 힘들다. 고농도 오염수라도 바다로 유입되면 희석돼 농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하지만 소량의 방사성 물질이라도 바다로 유입되면 수산물 체내에 쌓이게 된다. 그걸 사람이 먹으면 역시 체내에 쌓인다”고 말했다. 특히 그 영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긴 방사성 물질 세슘(30년), 스트론튬(29년)은 치명적일 수 있다. 이들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많이 축적되면 근육 등에 남아 세포 내 유전자를 손상시키고 암과 각종 질환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도쿄전력의 설명에 대해 많은 원전 전문가가 반대 의견을 내는 상황에서 실제 일본산 수산물의 위험은 어느 정도일까. 일본 정부가 현재처럼 지속적으로 모니터한다면 위험은 크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정기적으로 해양 오염 정도를 측정해 조업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현재 후쿠시마 앞바다에서는 조업을 하지 않는다. 후쿠시마에서 좀 떨어진 바다에서는 조업을 재개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사능 검사를 거친 후 생선을 유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2011년 여름 세슘에 오염된 후쿠시마산 육우 84마리가 도축돼 도쿄 등 수도권 일대에 출하된 사례가 있다. 방사능 검사에 구멍이 생기면서 오염된 축산물이 유통된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의 민감한 반응과 달리 일본 주부들은 비교적 태연해 보인다. 9월 11일 도쿄 시내 수산물 시장인 쓰키지(築地) 시장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붐볐다. 식당 앞에 서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800엔(약 8800원)짜리 회덮밥 가게는 5m 이상 길게 줄이 서 있었다. 일본의 수산물 소비는 예전과 비슷하다. 횟집이나 어시장에서의 수산물 판매 현황도 과거와 별 차이가 없다. ‘방사능 생선’ ‘수산물 소비 직격탄’ 같은 신문 제목은 한국 언론에서만 보일 뿐 일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방사능 생선 무섭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왼쪽에서 두 번째)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이 9월 6일 오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격려한 후 생선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일본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 사실상 극약 처방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은 마음속으로 걱정할 뿐이다. ‘아사히신문’이 9월 7, 8일 전국 20세 남녀 1925명에게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이 72%, ‘어느 정도 심각하다’는 응답이 23%에 달했다. 95%가 오염수 유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친한 일본인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보면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이 식탁에 올라올까 봐 무섭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이민을 가지 않는 한 일본 근해에서 잡힌 수산물을 먹지 않을 수 없으니 매번 방사능에 오염됐는지 신경 쓰기보다 그냥 안심하고 먹는 것이다. 또 후쿠시마 근해에서 정기적으로 수질검사를 하고 인근 해역에서 잡은 생선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하는 일본 정부를 믿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달 초 후쿠시마, 미야기(宮城), 도치기, 이바라키(茨木), 군마(群馬), 지바(千葉), 이와테(巖手), 아오모리(靑森) 등 일본 내 8개 현에서 나온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다른 지역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서도 세슘 검사를 해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검출될 경우 추가 검사증명서 발급을 요구하고 사실상 수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본 정부는 “과학적 데이터에 기초해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하지만 한국 정부는 “향후 사태 예견이 어려워 특별 조치를 단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오염된 생선 유통을 막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8개 현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 것은 사실상 ‘극약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이 상태라면 적어도 한국에서 유통되는 생선은 대부분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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