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2013.09.16

인상주의와 결별 선언한 예술혼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전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9-16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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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2년 프랑스 파리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그는 직장을 잃었다. 서른넷의 나이에 전업화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구 산업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지상낙원’을 꿈꾸며 69일의 항해 끝에 도착한 타히티 역시 마찬가지다. 식민지배로 황폐해진 열대의 땅에서 아끼던 딸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비보까지 받아든 화가는 좌절한다. 폴 고갱(1848~1903)이다.

    그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몸부림친 끝에 완성한 가로 374.6cm, 세로 139.1cm 대작 유화가 서울에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갱 회고전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전은 이 한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전시다. 고갱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쏟아부었다. 그림 오른쪽 하단의 아기부터 왼쪽 하단의 노파까지, 다양한 등장요소를 통해 인간의 탄생부터 소멸까지의 과정을 한 화폭에 담은 이 그림은 고갱의 ‘종합주의’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 유럽 화단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인상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갱은 이를 극복하고 작가의 주관을 객관적인 대상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종합주의’를 제창했다. 화폭 안에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담음으로써 20세기 현대미술의 문을 열었다.

    애초 인상주의 기반 위에서 화가 생활을 시작한 고갱이 이와 결별을 선언한 작품으로는 1888년 작 ‘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 꼽힌다.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도 이번 전시회를 위해 한국에 왔다. 천사와 야곱이 선 바닥의 강렬한 붉은색은 그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는 종래 화법과 분명히 선을 그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스크바 푸시킨 국립미술관 등 세계 30여 개 미술관에서 모인 작품 60여 점을 통해 고갱이 왜 ‘인상주의 시대를 마감한 최초의 근대화가’로 불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 9월 29일까지, 문의 1588-2618.

    인상주의와 결별 선언한 예술혼
    1 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2 황색 그리스도

    3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상주의와 결별 선언한 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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