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2

2013.08.26

“목적 위한 어장관리? 인간관계란 진실해야죠”

영화평론가 이동진

  •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8-26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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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젊은이들의 ‘워너비(wannabe)’다. 그가 천착하는 소재는 사람들이 흔히 취미로 꼽는 영화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전문성과 명성도 쌓아가고 있다. 영화를 무겁지 않게 설명하는 그의 평론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그가 ‘열정樂서’에서 영화가 아닌 인간관계를 주제로 강의했다.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열정樂서’는 저명인사들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콘서트다. 그는 과연 어떤 말을 전했을까.

    안녕하세요. 이동진이라고 합니다. 저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영화평론가 타이틀로 활동한 건 7년 정도 됐고, 그전에 일간지에서 13년간 영화담당 기자로 일했습니다.

    양날의 검 같은 인간관계

    오늘처럼 인간관계를 주제로 강연하기는 처음입니다. 사실 인간관계 전문가라는 말 자체가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인간관계 패턴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사람관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보다 많이 살았다고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할 권리는 없지만 제게도 인간관계는 어렵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한자 풀이부터 하면 있어 보이잖아요(웃음). 사람을 지칭할 때 인간(人間)이라고 하죠. 사실 간(間)을 쓰지 않고 인(人)만 쓰면 되는데 왜 간을 붙였을까요.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있어야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사람은 인간관계가 있어야 사람이 된다는 정체성을 단어에 표현한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람 인(人) 자가 두 사람이 기대는 모습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럴 정도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관계는 공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여름 낙’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여름이면 좁은 감방 안에서 7~10명이 누워 자야 하는데, 땀 흘리는 사람과 붙어 있게 되면 더 더워지니까 옆 사람을 가장 미워하게 된다더군요. 저도 비행기를 탈 때 옆자리에 누구도 없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이처럼 가까운 관계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기자에게 취재원은 불가근불가원, 즉 가까워서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되는 존재라고 하는데요. 모든 인간관계에 이 원칙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누나가 동생 일기장을 훔쳐본다든지, 딸이 아버지 인생의 가장 민망한 부분에 개입한다든지 하는 건 문제가 된다는 거죠.

    제가 영화평론가니까 영화 얘기도 해볼게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 속 배경은 영국인데, 최근 여러분이 본 버전은 에단 호크와 귀네스 팰트로가 주연한 영화 ‘위대한 유산’으로, 배경이 뉴욕으로 바뀌었습니다. 호크는 시골에서 불우하게 자랐지만, 뉴욕에 진출해 성공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림을 잘 그려서 성공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로버트 드니로 때문이었죠. 어린 호크가 탈옥한 죄수 드니로를 도와줬는데, 수십 년 후 그가 몰래 호크를 지원해준 거죠. 너무 절망적일 때 인간관계가 구원의 사다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실제로 인간관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희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 위한 어장관리? 인간관계란 진실해야죠”

    ● 1968 강원 정선 출생<br>● 1994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br>● 1993~2006 조선일보 기자<br>● 2007~ 영화평론가 활동<br>● 저서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밤은 책이다’ 등

    정반대의 사례는 영화 ‘더 헌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치원 교사인 한 남자가 수십 년 동안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옵니다. 중년이 돼서도 친구들과 동네 강가에서 옷을 다 벗고 놀 정도로 사이가 좋았죠. 그런데 우연히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친구들이 모두 등을 돌립니다. 그 남자는 성추행범으로 몰린 것보다 인간관계에서 더 큰 절망을 느끼죠. 이처럼 인간관계는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도 되기도 하는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은 대개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아닌가요. 맛있는 걸 혼자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맛의 쾌감은 엄청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걸 아무도 모르잖아요. 아마도 가장 행복한 순간을 먹는 방식에 비유해 고르라고 하면 혼자 먹을 때가 아니라 가족, 친구와 같이 먹을 때가 아닐까요. 마음 맞는 사람과 맛있게 먹으면서 “맛있지? 맛있지?” 할 때 말이죠. 이처럼 행복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인간관계에 서툰데요. 특히 어색한 회식자리에 가는 게 너무 힘듭니다. 10대 때도 감정적으로 극심한 편차가 있었습니다. 기분 좋을 때는 지나치게 장난꾸러기인데, 그렇지 않을 때는 며칠씩 말도 안 했죠. 대학생 때는 제 전공 학과에 학년당 학생이 20명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모르는 선후배하고 인사하고 친분을 쌓아야 하다 보니 과사무실에 들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하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나중에는 아예 가지도 못했죠. 군대 가는 저를 바래다준 아버지가 집 앞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저를 붙잡으시곤 A4 용지에 뭘 써서 접어주더군요. “지금 읽지 말고 논산훈련소에서 힘들 때 읽어봐라” 하기에 무슨 비급을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입소하고 너무 힘들어 누워 있을 때 쪽지를 펴봤는데, 아버지가 한자로 참을 인(忍) 자를 딱 써놓으신 겁니다. 그러곤 밑에 한글로 쓴 아홉 글자 ‘참아라 참아라 참아라’(웃음). 실제로 이상한 고참을 만나 속 터질 때마다 그 쪽지를 꺼내봤는데, 지금도 그 쪽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인간관계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간관계 점수화 불가능

    “목적 위한 어장관리? 인간관계란 진실해야죠”

    개그맨 안상태(왼쪽)가 소통하는 방법을 묻자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신문사 입사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와 문학도 좋아하니까 문화부 기자가 되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에 시작한 건데요. 문화부 기자를 지망해도 일단 사회부 수습기자로 살면서 경찰서를 출입해야 합니다. 새벽 4시부터 서울 구로, 양천, 강서경찰서에 가서 전날 있었던 일을 취재해야 하는데, 저는 육체적으로나 기질적으로 그 일이 맞지 않았습니다. 권력 앞에서 기자가 쫄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 경찰서 문을 어깨로, 발로 밀고 들어가 형사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형님, 간밤에 변사 사건 없었소?”라고 물어봐야 했죠. 후배한테도 반말을 잘 못하는 타입이라 매일이 지옥 같았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기간을 버텨냈고, 대학 때 쓴 영화 관련 책이 출간돼 문화부로 발령받으면서 그 생활을 접었습니다.

    기자라면 사교성이 좋아야 할 것 같죠. 취재원 관리를 잘해야 하고, 아무하고나 호형호제할 정도로 터프할 것도 같고. 그런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생활 13년 동안 작은 특종조차 하나 건지지 못한 후진 기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기자생활에 실패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부적응자로 보이던 사람도 영화 전문기자로서 자기 몫을 했고, 이렇게 회사를 나와 영화평론을 하면서 민폐 끼치지 않고 살잖아요. 본인이 이상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속 끓이지 말라고 제 얘기를 한 겁니다(웃음).

    모든 성격에는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인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가 있지만, 저는 이런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인간관계를 토익 점수처럼 숫자로 환산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관계는 점수화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특정 목적을 이루려고 어장관리를 하면 상대방도 그 사실을 눈치 챕니다. 인간관계는 전인적이라 모든 걸 쏟아 부어도 될까 말까 하거든요. 지난해부터 고양이를 키우는데, 고양이의 마음을 얻는 것도 엄청 어렵습니다. 밥을 제때 주지 않거나 놀아주지 않으면 삐치거든요. 고양이가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모든 사람과 끈끈하게 잘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다 잘해야 할 것 같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면 좋을까요. 먼저 자주 만나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상당수 직장인이 근무시간에 동료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려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데요, 그런 분들이 행복해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 회포를 푼다는 것은 난센스거든요.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주 만나는 사람과 잘 지내야 합니다.

    자주 보는 사람과 잘 지내야

    제가 방송을 4개 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네 그룹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대학 동창이나 고교 동창은 1년에 2~3번밖에 만나지 못하죠. 그렇다면 매주 만나는 사람과 잘 지내야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비즈니스 관계이긴 해도 만나면 농담을 주고받거나 작은 선물도 하면서 말이죠.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마음속 단 한 명의 친구에게 잘하려 하지 말고, 데면데면하게 생각하지만 자주 만나는 사람과 잘 지내려고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자기가 좋아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좋아해버리면 됩니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가능합니다(웃음).

    두 번째는 ‘타인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영화평론을 죽어도 안 봅니다. 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느낌으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이유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향 받는 게 두려워 차단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습니다. 그게 책이든 말이든, 좀 더 많은 지식을 쌓고 훈련받은 사람의 깊고 넓은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자신의 느낌 안에서만 영화를 본다면 제자리에서 맴도는 감상이 될 확률이 높겠죠. 어떤 사람은 본인이 영화를 고를 때 취향에 따라 선택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마케팅 때문일 수 있습니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마케팅비를 그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창출하는 데 쓰니까요. 순수하게 자기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취향도 사실은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인간관계에서 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한데 민폐 끼치는 사람이 있고, 냉철한데 민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 후자를 좋아할 공산이 큰데요, 자기가 선의를 가졌다는 이유로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사실 선의가 아니라 자기애고, 욕망이죠. 선의를 핑계로 민폐 끼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마지막 결론은 성실함에 관한 얘기입니다. 결국 성실해야 인간관계도 맺을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처럼 이상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강박증이 있어서 샤워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죠. 물이 빠지는 수채 구멍에 발이 닿을까 봐 샤워를 못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신경증이 있어서 손이 더러운 사람과 악수하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렇다면 1966년부터 거의 1~2년 동안 영화 한 편을 만든 앨런은 어떻게 거장이 됐을까요. 일반적으로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고 하면 앨런은 실패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할리우드의 희한한 스타와 일하면서도 실패하지 않고 최고의 경력을 쌓고 있습니다. 그가 성공한 이유는 바로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친구와 관계를 이어갈 때도 성실하게 임하면 그 관계가 여러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겁니다.

    더 많은 얘기를 해드리고 싶었는데요, 제가 말씀드린 것이 100% 맞는 건 아니고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쯤으로 여겨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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