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9

2013.08.05

쥐에게 가장 위협적인 로봇은 뭘까?

고려대 최준식 교수팀, 동물 행동심리 연구에 세계 최초 로봇 적용…또 하나의 시장 만들기 큰 기대

  • 김재형 동아일보 인턴기자·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repg000@naver.com

    입력2013-08-05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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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에게 가장 위협적인 로봇은 뭘까?

    먹이를 찾아 나오다 입을 벌린 로보게이터를 보고 놀란 실험쥐. 최준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상자 안).

    쥐와 고양이 등 동물의 행동심리를 연구하는 데 세계 최초로 로봇이 등장했다. 최준식(47)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0년 이후 장난감 로봇을 개조해 쥐 등 다양한 생물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최 교수팀의 ‘로봇을 사용한 공포 및 방어행동 패러다임’ 논문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로봇으로 생물의 행동 패러다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 해답을 얻으려고 고려대 생물심리 연구팀을 찾아갔다.

    “여기랑 여기에 서브모터랑 그 스마트보드도 달아주세요.”

    아침 댓바람부터 로봇제조업체 담당자를 닦달하는 주인공은 김선휘(27) 생물심리 연구원. 생물심리는 생물행동이 어떤 심리적 기초에서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분야다. 김 연구원은 “살아 있는 진짜 생물만으로 실험을 진행하다 처음 로봇을 다뤘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면서 “실험을 계속하면서 로봇을 꽤 많이 다뤄봤고 부품 이름도 많이 외웠는데 아직도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며 웃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자신이 직접 로봇을 개조해 리모델링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처음과 비교하면 로봇을 다루는 실력이 괄목상대한 셈.

    천적 로봇으로 쥐의 공포기전 규명

    김 연구원이 그토록 열중해 재조립하는 로봇은 ‘로보게이터(Robogator)’다. 원래는 한 유명 장난감회사에서 아이들에게 창의교육을 한다며 개발한 과학로봇 키트다. 연구팀은 그 키트를 변용해 연구용 로봇으로 탈바꿈시켰다. 너비 17.78cm, 높이 15.24cm, 앞뒤 길이가 17.78cm에 언뜻 보면 바퀴달린 작은 악어와도 같은 외형이다. 얼굴 부위에는 턱관절이 있어 리모컨을 누르면 사나운 포식자처럼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최고속력은 초속 75cm. 시속으로 따지면 2.7km/h이다. 바퀴가 달린 로봇치고는 결코 빠르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실험쥐를 겁주기에는 충분히 위협적인 조건을 갖췄다.



    로보게이터는 2010년 최 교수에 의해 실험실에 등장했다. 당시 최 교수가 진행하던 연구실험에서 실험쥐의 천적 구실을 할 대역이 필요했기 때문. 생물심리 실험에서 로봇을 사용한 것은 세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른 학과 연구실을 통틀어도 로봇을 ‘조작변인’으로 활용한 실험은 최 교수의 실험이 유일하다. 그때부터 로보게이터는 재조립과 리모델링을 거듭하며 생물심리 실험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가 됐다.

    로봇을 이용한 행동심리 연구는 자그마한 실험박스 안에서 이뤄진다. 실험쥐가 실험박스 중간에 놓인 먹이 냄새를 맡고 다가오다 그 자리에서 멈춘다. 평소 같았으면 먹이가 있는 곳으로 곧장 달음박질쳤을 쥐가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맞은편에 있는 로보게이터 때문이다. 실험쥐보다 3배가량 큰 몸집을 가진 로봇이 무쇠 턱을 아래위로 놀려대니 실험쥐가 겁을 집어먹은 것.

    이 실험은 기존에 ‘두려움’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의 특정 부분들이 실제로 그러한 심리작용을 일으키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생물의 ‘두려움’은 자연 상태에서 천적을 만났을 때 자기 몸을 보호하게 만드는 ‘방어기제’다. 이 방어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생물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만큼 생물체에게 ‘두려움’이라는 심리작용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실험은 실험쥐 뇌의 각 부분을 약품처리하거나 손상을 줘, 천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여기서 로봇의 소임은 실험쥐의 천적이 돼 자극을 주는 거죠.”

    김 연구원은 “실험의 천적 설정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로봇을 재조립해야 하고 전체 몸동작도 실제 동물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위협적으로 보이도록 계속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가 이 실험에서 처음으로 로봇을 사용하게 된 것은 기존 ‘공포조건화(fear conditioning) 실험’이 학계로부터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포조건화 실험은 인간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무기력증 같은 심리질병을 연구할 때 많이 활용된다.

    “공포조건화 실험은 실험용 쥐를 실험박스 안에 집어넣고 전기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런데 그 전기충격은 일반 환경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극이죠.”

    최 교수는 공포조건화 실험을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전기충격보다 더 자연스럽고 통제 가능한 자극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로봇을 떠올리게 된 것.

    쥐에게 가장 위협적인 로봇은 뭘까?

    생물심리 실험에 로보게이터를 설치 중인 최준식 교수 연구팀.

    생물심리학계에서 로봇을 활용한 실험은 최 교수 이전에는 없었다. 기껏 해봐야 일본 와세다대 한 공대 연구팀이 재미삼아 쥐 모양의 로봇을 만들어 쥐들을 쫓아가게 만든 것이 전부였다. 김 연구원은 최 교수의 이 로봇 활용 실험이 가진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논문이 PNAS에 실렸을 때 학계에선 이 로봇 실험에 대해 흥미롭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공포조건화 실험의 새로운 방법론과 방향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최 교수팀이 가장 고민한 부분은 “어떤 로봇이 실험쥐에게 가장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것인가”였다. 가장 공포스러운(?) 로봇을 찾으려고 전갈 모양의 로봇도 만들어보고 고양이 모양의 로봇도 만들어봤다. 그 밖에 다른 2개 버전의 로봇까지 모두 4개 버전의 로봇이 이 실험에 사용됐다. 하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역시 로보게이터였다. 악어를 연상시키는 외형이 위압적일 뿐 아니라, 움직임도 다른 로봇에 비해 가장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친구로봇’ 이용한 새 실험 준비

    최 교수 연구팀은 현재 쥐 모형 로봇을 로보제조 업체 ‘로보링크’와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 로봇은 실험쥐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될 예정이다. 연구팀은 그 상호작용 중에 발생하는 실험쥐의 다양한 행동변화 등을 관찰하고자 한다. 최 교수는 “로봇을 활용한 생물심리 실험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연구팀은 이를 새로운 실험 방법론으로 안착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팀의 새로운 시도는 학계뿐 아니라 로봇산업 전반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로봇시장은 올해 세계재난로봇 대회에서 ‘휴보’가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 유수 경쟁자들과 함께 결선에 진출하는 등 로봇 관련 기술과 연구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지만, 로봇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투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로봇을 생물심리 연구에 사용한 사례가 로봇산업 관계자들에게 또 하나의 시장을 열어주고 자극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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