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7

2013.07.22

원칙 앞세워 전직 대통령들 때리기

박근혜 대통령, 전두환·노무현·이명박에 칼 겨눠…인연 얽히고설켜 ‘애증의 변주곡’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3-07-22 09: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원칙 앞세워 전직 대통령들 때리기

    2004년 8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할 때 모습.

    ‘박근혜 식 과거사 바로 세우기’가 시작됐다. 명분은 ‘비정상의 정상화’다. 방식은 과거 정권 실정(失政)에 대한 전 방위 파헤치기다. 일단 전두환(추징금 미납), 노무현(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이명박 전 대통령(4대강 사업)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에 대해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 못 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언급이 있은 지 한 달여 만인 7월 16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검찰 수사관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과 가족, 친척의 주거지, 사업체 등 3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전임인 이명박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돼버린 4대강 사업은 박 대통령이 ‘미래 권력’ 시절 “할 말이 많지만 또 국정 발목을 잡는다고 할까 봐 참고 있다”고 했던 사안이다. 감사원이 7월 10일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고 발표하자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이정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이 나서서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해 책임 추궁이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해선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을 놓고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 기간 내내 문제를 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다시 NLL 논란이 일자 정면 대응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처음에 국정원에서 생산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주저했을 때 “왜 제대로 국민에게 알리지 않느냐”며 다그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 정권에 대한 가차 없는 ‘단죄’는 이미 예고됐으며, 박 대통령은 집권 초 권력 힘이 살아 있을 때 이를 실현하려고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는 없었겠지만 해당 사안에 대한 발언이 나오면 사정기관이 행동에 착수하는 모양새다.



    과거 정권에 대한 가차 없는 단죄

    원칙 앞세워 전직 대통령들 때리기

    2010년 8월 21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단독 오찬 회동.

    박 대통령은 6월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 정부의 개혁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더해 박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사이의 ‘은원(恩怨)’ 관계가 작용한 측면은 없을까.

    박 대통령의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집권자는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이명박(MB) 전 대통령이다. 이 중 전두환,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선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 느낀 인간적인 배반감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 전 대통령은 군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 12·12사태를 계기로 집권했다. 정통성이 없던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시대를 부패한 시대로 규정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이 집권한 7년여 동안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추도식도 공개적으로 열지 못한 채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5공 시절을 대단히 가슴 아프게 살아왔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일이 극심하게 매도되던 시절”이라며 탄식했다. 2007년 발간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선 “세상인심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었다. 18년간 한 나라를 이끌어온 대통령으로서 사후에 정치적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거짓과 추측, 비난 일색으로 매도되고 왜곡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적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2003~2008)에는 박 대통령이 이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거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 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를 비롯한 보수세력 집권 시기를 ‘기회주의가 판을 치고 정의가 패배한 시대’라고 몰아붙였다. 당시 야당 실력자였던 박 대통령과도 사사건건 부딪쳤다.

    2007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론을 제기하자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고 일갈했다. 그해 연말 대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정략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07년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한 네거티브 경선을 치른 후 불신감을 쌓기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 집권 기간에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세종시 수정, 미디어법 처리 등을 놓고 몇 차례 충돌을 빚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후보 시절 각종 토론회에서 “집권에 성공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공과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고 물으면 “시대적 과제가 다르기 때문에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때부터 MB 정부와의 차별화가 예상됐고, 그 첫 작업이 4대강 사업 파헤치기가 된 셈이다.

    앞으로의 후속 조치도 예상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핵심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등이 비리혐의로 구속된 상태지만 MB 시대 들추기가 이어지면서 사정 칼날이 이 전 대통령 주변을 다시 겨눌 수도 있다. 새 정부 들어 세무당국의 집중조사를 받은 효성그룹과 CJ그룹, 롯데그룹은 모두 MB 정권과 연결돼 있다. 효성그룹은 한국타이어를 통해 이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이고, CJ그룹과 롯데그룹은 전 정부 시절 급성장했다.

    전두환,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외 다른 집권자들과도 박 대통령은 이런저런 인연이 얽히고설켰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박 대통령은 사회활동을 재개했다. ‘박정희·육영수 기념 사업회’와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단체 ‘근화봉사단’을 발족했다. 박 전 대통령의 추도식도 해마다 열었다. 박 대통령 처지에선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해금(解禁)’된 셈이기 때문에 노태우 전 대통령과 그다지 나쁜 관계는 아니다.

    가장 호감 갖는 대통령은 DJ

    그 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악연이 더 많다. YS는 줄곧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 박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지칭했다. 지난해 대선 때는 사석에서 “18년 독재자의 딸이 또 대통령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의 차남 현철 씨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이 가장 호감을 갖는 전직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투쟁을 벌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란 게 측근들의 귀띔이다. 1997년 대선 때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JP) 전 총리와 손을 잡은 DJ는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공약했고, 취임 초 이를 추진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DJ를 찾아가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개인적인 은원에 따라 과거 정권을 선별해 때리기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불공정을 공정으로 만들려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사정기관이 움직이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에게 ‘은(恩)’보다 ‘원(怨)’이 깊은 전직 대통령 3명이 새 정부 초반부터 궁지에 몰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