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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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 김정희도 드물지만 개칠 진짜는 유기적, 가짜는 억지

글씨를 베낀 필사본이 진품 둔갑도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7-15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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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필 김정희도 드물지만 개칠 진짜는 유기적, 가짜는 억지

    1 김정희 ‘세한도’의 ‘歲寒圖’ 글씨. 2 ‘그림1’에서 ‘歲’ ‘圖’자 개칠 전후 비교. 3 ‘호운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書’ 자 개칠 전후 비교. 4 김정희의 가짜 ‘당나라 시인 사공도의 시’. 5 ‘그림4’에서 ‘異’ 자 개칠 전후 비교.

    “여러 해 전 누가 불상 하나를 산 일이 있었다. 그때 상당한 값을 주었던 모양인데 그 뒤 김모라는 사람의 감정으로 가짜라고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러자 가짜라고 판정을 내린 김모 씨가 판 사람과 산 사람의 양쪽에게 똑같이 죽도록 얻어맞고 한 보름 동안 입원한 일이 생겼다. 가짜라고 해도 이렇게 함부로 감정을 해주었다가는 폭행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

    이는 존경받는 컬렉터인 수정 박병래(1903~74)가 자신의 골동품 수집 40년을 정리한 ‘도자여적’이란 책에서 밝힌 내용이다. 일제강점기가 미술품 감정에서도 암흑기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짚어주는 대목이다. 박병래는 ‘도자여적’에서 1930년대 ‘돈속에도 아주 밝은 수집가’ 창랑 장택상(1893~1969)이 진위에 상관없이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값을 어떻게 올렸는지를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 서화 값을 올리는 데는 창랑이 단단히 한몫을 하였다. 어떤 경매에서 추사의 대련(對聯)이 나왔는데 당시 100원대에 머무르던 물건을 창랑은 2400원에 낙찰시켰다. 그 자리에서는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심한 경쟁자도 없는데 그런 값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하고. 그러나 다음부터는 그게 바로 시세가 되어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의 값에 활발한 거래를 시작하였다. 물론 창랑이 가지고 있던 모든 추사의 글씨도 몇 배의 값이 나가게 되었다.”

    세한도 ‘歲’‘圖’ 개칠…창작의도 맞게 보충

    작가의 예술세계를 올바로 알려면 작품 가치나 가격을 논하기 전에 작품 진위부터 밝혀야 한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싶다면 작가의 창작습관은 물론, 그에게서 배운 사람들의 작품과도 비교해 차이점을 밝혀야 한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김정희 글씨에서 개칠(덧칠)한 흔적이 있으면 가짜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책에서 “누구보다 당신의 작품에 엄격하셨고 서(書)의 도리와 이론에 밝으셨던 추사가 어찌 이런 덧칠을 자신의 작품에 하셨다는 말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김정희도 아주 드물지만 개칠을 했다. 따라서 개칠했다고 무조건 가짜는 아니다. 개칠한 글씨 가운데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1844년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歲寒圖’(그림1) 세 글자에서 ‘歲’ ‘圖’ 두 글자에 개칠을 했다(그림2). 1856년 김정희가 쓴 ‘호운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書(서)’ 자를 보면 개칠이 됐다(그림3). 두 작품 모두 추사체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개칠이 순식간에 힘 있게 이뤄졌다.

    명필 김정희도 드물지만 개칠 진짜는 유기적, 가짜는 억지

    6 철종의 ‘정종대왕 성유비 탁본’. 7 경기 과천시가 소장한 김유제의 ‘편지’. 8 ‘완당간첩’ 중 봉투 필사. 9 ‘완당척독’ 중 봉투 모음.

    개칠은 진짜와 가짜 작품에서 어떻게 다른가. 진짜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창작 의도에 맞게 보충한 것이다. 가짜에서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위조하는 과정에서 위조자가 작가에 못 미치는 실력을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다. 진짜에서의 개칠은 유기적이지만, 가짜에서의 개칠은 억지다.

    충남 예산군에 있는 김정희 종가가 소장한 보물 제547호 예산김정희종가유물에서 ‘당나라 시인 사공도의 시’(그림4)는 개칠이 심하게 돼 원래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당연히 김정희의 글씨가 아니다. 위조자는 특정 느낌의 추사체에 가깝게 보이게 하려고 원래 필획에 두껍게 개칠했다. 개칠 이전 글씨를 복원해 개칠된 현재 글씨와 비교하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다(그림5).

    명필 김정희도 드물지만 개칠 진짜는 유기적, 가짜는 억지

    10 ‘완당간첩’ 중 1842년 음력 11월 15일자 김정희 편지 필사본. 11 ‘완당척독’ 중 1842년 음력 1월 10일자 김정희 편지.

    1853년 철종(재위 1849~1863)이 쓴 ‘정종대왕 성유비 탁본’(그림6)을 보면 나라님도 추사체를 썼다. 김정희 생전에 있었던 일로, 당시 얼마나 추사체가 유행했는지를 짐작게 한다. 그의 집안에서도 친동생 김명희(1788~1857)와 김상희(1794~1861)는 물론, 양아들 김상무(1819~1865)와 사촌 김교희의 손자 김유제(1852~1914)도 추사체를 배웠다. 1883년 김유제가 쓴 ‘편지’(그림7) 등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추사체를 잘 배웠는지 알 수 있다. ‘그림7’처럼 위조자가 서명을 훼손하지 않은 것을 제외한, 추사 가문 사람의 글씨는 사기꾼에 의해 추사 글씨로 둔갑했다.

    추사 가문 사람들의 글씨처럼 ‘본래 위조할 목적 없이 김정희의 글씨를 베낀 필사본’이 그의 작품으로 둔갑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찾으려면 옛날에 만들어진 필사본과 진짜 글씨를 비교해 그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완당간첩’은 위조 아닌 모사한 필사본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완당간첩’은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가서 아우에게 쓴 편지 5통을 베낀 서첩이다. ‘완당간첩’ 한 면에 편지 봉투 2통을 필사한 ‘그림8’을 선문대박물관이 소장한 ‘완당척독’ 가운데 여러 편지 봉투를 모은 ‘그림9’와 비교하면, ‘완당간첩’은 그의 글씨를 모사한 필사본으로, 위조한 것이 아니다. ‘완당간첩’ 가운데 1842년 음력 11월 15일자 김정희 편지 필사본(그림10)과 선문대박물관이 소장한 ‘완당척독’ 가운데 1842년 음력 1월 10일자 김정희 편지(그림11)를 비교하면, ‘김정희의 추사체’와 다르게 발전한 ‘필사자의 추사체’가 분명하게 보인다.

    요즘 필자는 주변에서 “감정 노하우를 너무 많이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 위조자나 사기꾼도 이 글을 읽고 참고할 게 분명하다는 우려에서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나쁜 마음은 옳은 마음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이 땅에 미술품 감정학의 여명이 밝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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