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4

2013.07.01

‘내 돈 쓰겠다는데’… 오너의 불감증

쌈짓돈, 비상금, 비자금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3-07-01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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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한 집안의 재산은 가족 전체의 것이라 그 돈이 그 돈이었기 때문에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 일이며 지금은 쌈짓돈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쌈지는 담배를 넣어두는 작은 주머니를 뜻하는 것으로, 쌈짓돈은 비록 적지만 할아버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서 매우 좋은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돈으로 비상금이 있는데 남편이 아내의 ‘통수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 보관해둔 것으로, 아내에게 들키면 곧바로 몰수당하고 추가 징벌도 받을 수 있다.

    회사는 비자금을 만들어둔다.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 사용해야 할 돈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를 위해 미리 회계장부에 계상되지 않은 자금을 준비해두는 것이 비자금이다. 비자금은 커미션(중개수수료) 또는 리베이트(거래감사금) 방법을 이용하거나, 물품대금이나 임대료 과다 계상, 더 나아가 가공 지출, 허위 부채, 매출 누락 같은 방법을 사용해 모은다. 어느 경우든 매출과 순이익이 감소하므로, 조세포탈죄가 자동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곧바로 업무상 배임이 되진 않는다.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사용했거나, 계약을 체결하려고 리베이트 비용으로 사용했다면 횡령이나 배임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업무상 횡령이 된다. 회사 돈이기 때문이다.

    비자금은 현금이나 차명계좌 또는 귀금속이나 미술품 등 매우 고가인 유체동산 형태로 존재한다. 필요할 경우 회사가 미술품을 구매할 수도 있는 일이므로, 회사가 관리하던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샀다고 곧바로 횡령이 되진 않는다. 이 미술품을 개인 소유로 돌릴 때 비로소 횡령이 된다. 수사를 통해 이런 경위를 모두 밝히는 일은 실제로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회사라는 유한책임제도를 도입한 기간이 길지 않아 현재 ‘회사 오너’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이 오너가 회사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이 큰 잘못이라는 의식이 없다. 어려운 비자금 수사에 성공해도 큰 박수를 받지 못한다. 지속적인 견제가 불가능하므로 회사의 비자금 운용 행태를 변화시킬 수 없다.



    한편으로, 개인 비자금은 차명으로 관리하는 재산을 뜻한다. 유력한 개인이 자신의 인간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 찾기가 더욱 힘들고 법적으로 집행될 개연성도 거의 없다. 이런 재산을 얻을 때 증여세나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을 터이므로 조세포탈죄가 동시에 성립하지만, 횡령과는 큰 관련이 없다.

    매번 아내에게 들키면서도 남편은 또 비상금을 마련한다. 아내 몰래 쓸 돈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모으는 그 자체가 좋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자금 없는 회사가 잘되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에서 비자금 없는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탈세는 비자금의 동반현상이고, 탈세하는 회사보다 횡령하는 오너가 더 나쁘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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