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0

2013.06.03

투구 수 100개 한계냐, 아니냐

선발투수 ‘지우개론 vs 강철론’ 여전한 논란…초구 스트라이크·배짱은 필수조건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3-06-03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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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 수 100개 한계냐, 아니냐

    1경기 평균 139개 투구로 국제적으로 투수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구 상원고 투수 이수민.

    최근 대구 상원고 투수 이수민이 천안 북일고와의 경기에서 9.2이닝 동안 178구를 던져 화제가 됐다. 이 사건은 미국 CBS 방송이 “1경기 평균 139개를 던진 한국 고교 투수”라고 소개하면서 국제적으로 ‘혹사 논란’을 일으켰다. 이수민은 고교야구 주말리그와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등 7경기에서 총 974구를 던졌다.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 수가 100개 안팎으로 굳어진 현대 야구에서 이는 정녕 무리한 투구인 것일까.

    창창한 젊은 선수 너무 혹사?

    그동안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05년 9월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스지우치 다카노부(당시 오사카 도인고)는 대만, 한국과의 예선전에서 공 259개를 던진 뒤 하루 쉬고 한국과의 결승에서 다시 연장 10회까지 공 173개를 던져 적정 투구 수 논란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2006년 4월 광주 진흥고 정영일은 제40회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고전에서 13.2이닝 동안 공 242개를 던졌다. 서스펜디드 게임(suspended game·우천 등으로 일시정지된 경기)으로 비록 이틀에 걸쳐 기록한 것이지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선수 어깨를 너무 혹사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성장 단계에 있는 고교 투수에게 100개 이상의 투구는 혹사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개인 능력에 따른 적정 투구 수라고 봐야 할까. 이를 두고 투수 어깨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지우개론’과 ‘강철론’으로 견해가 엇갈린다. ‘국민 감독’으로 부르는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 겸 1·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팀 사령탑은 대표적인 지우개론 신봉자다. 투수 어깨는 지우개와 같아서 쓰면 쓸수록 닳기 때문에 가능한 한 아껴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어린 선수를 혹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투수가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자기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국내 프로야구 최다 투구 수 기록(232개)을 보유한 선동열 KIA 감독의 견해는 다르다. 일본 야구도 경험한 그는 “일본에는 마쓰자카 등 많은 투구 수를 기록하며 완투하는 투수가 많다. 그러고도 대부분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다”며 “어릴 때 투구 수 100개 이내에서 던진 투수는 그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장 단계에서 어깨를 단련하지 않으면 성인이 된 후 튼튼한 어깨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인 셈이다.



    야구계에서는 지우개론에 빗대어 이 같은 시선을 강철론이라고 부른다.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강철처럼 어깨도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의미다. 강철론은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투구 수라면 오히려 어깨 근육을 단련하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한국 프로야구 1경기 최다투구(219구) 승리투수인 김시진 롯데 감독은 감독 재량, 선수의 개인차에 따라 투구 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팔 스윙이나 투구 폼이 부드럽다면 힘이 아니라 밸런스에 맞게 던지게 되므로 많이 던져도 무방하다고 받아들인다.

    지우개론이 정답인지, 강철론이 맞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 수십 년간 투수생활을 한 지도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투구 폼은 물론이고, 개인별 어깨 능력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몸 쪽 공 잘 던져야 좋은 투수

    투구 수 100개 한계냐, 아니냐

    한국 프로야구에서 몸 쪽 공을 가장 잘 던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KIA 서재응(위)과 SK 채병용.

    반면 지우개론자이냐, 강철론자이냐에 상관없이 ‘투수는 가능한 한 적은 투구 수로 타자를 요리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에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적게 던지면 적게 던질수록 좋다. 투수는 효과적인 투구 수 관리를 통해 수비 시간을 줄이면서 동료들이 체력을 아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럼 자신 역시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어 투수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일본,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 수’는 100개 안팎으로 굳어졌다. 선동열 감독 같은 경우는 아예 ‘한계 투구 수’ 개념 자체를 부정하지만, 개인별로 자기 구위를 유지하면서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구 수는 보통 100개에서 많아야 110개 안팎 정도다.

    일반적으로 한 이닝 ‘적정 투구 수’를 15개로 본다. 공 15개를 던져 아웃카운트 3개를 잡으면 평균 수준이다. 선발투수가 이닝당 공 15개씩 던진다면 6회까지 투구 수는 90개가 된다. 반면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세 타자를 모두 초구 땅볼로 처리한다면 공 3개만 던지고 한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다. ‘특급 투수’는 공 10개 안팎을 던지고 삼진을 2개 잡아 이닝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선 감독은 “좋은 투수라면 이닝당 12개 이하로 끝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투수는 투구 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이닝을 마쳐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초구 스트라이크와 ‘몸 쪽 승부’다. 투수가 타자를 이기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초구 스트라이크다. 사이영상 수상자 그레그 매덕스는 “타자를 이기는 최고의 투구는 초구 스트라이크”라고 말했다. 초구가 스트라이크가 되면 투수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공격적인 피칭을 할 수 있다. 불리한 볼카운트로 끌려다니는 승부와는 결과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초구 스트라이크는 2구째 승부에 큰 힘이 된다. 어떤 구종, 어떤 코스를 선택하더라도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다. 볼이 되더라도 카운트는 1볼-1스트라이크다. 반면 초구가 볼이 되면 2구 승부 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이 한정된다. 볼카운트가 2볼-0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다는 부담에 제구력과 무브먼트(공 끝 움직임)에 제약이 따른다. 선발보다 불펜의 초구 스트라이크는 투구 수 관리 차원에서 더욱 중요하다. 위기에서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던지지 못하면 타자와의 승부가 힘들어진다.

    메이저리그 300승 투수인 톰 시버는 “투수는 재능보다 투지가 먼저”라고 말했다. 투수는 도망가는 피칭이 아닌 공격형 성향을 보여야 한다. 팀 동료들은 뒤에서 수비하지만, 투수는 타자를 공격하는 싸움닭이 돼야 승부를 주도할 수 있다. 공격적 피칭을 통한 투구 수 조절을 위해선 초구 스트라이크와 함께 몸 쪽 승부가 필요하다.

    투수가 공을 잘 던지려면 기량과 함께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 한다. 특히 몸 쪽 승부에서 그렇다. 많은 투수가 가장 어려워하는 투구가 바로 몸 쪽 승부다. 메이저리그에 ‘가족을 생각하면 몸 쪽으로 던지고, 친구를 생각하면 바깥쪽으로 던져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몸 쪽 승부는 어렵지만 가치가 있다. 몸 쪽 승부를 해야 타자를 수동적이게 만들고, 자신의 투구 수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싸움을 해나갈 수 있다.

    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에 맞는 일이다. 한 번 자신을 맞힌 투수는 상대하기가 편치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수 역시 타자들이 공에 맞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타자들이 두려워하는 몸 쪽을 과감하게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투수는 몸 쪽 공을 던져야 한다. 국내에서 몸 쪽 공을 잘 던지는 투수로 서재응(KIA)과 채병용(SK)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이닝당 평균 투구 수가 다른 투수에 비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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