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9

2013.05.27

길고양이 급식소 사건

서울 강동구청 밥 주기로 결정… 풍찬노숙 고단한 삶 변화 기대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3-05-27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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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 급식소 사건

    한 캣맘이 길고양이에게 줄 먹이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청이 5월 30일을 전후해 관내 18개 주민센터에 길고양이 전용 급식소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나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로 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강동구엔 길고양이 20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2년 한 해 동안 길고양이와 관련해 민원 420여 건이 제기될 정도로 길고양이에 대한 강동구민의 감정은 냉담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동구청이 길고양이 급식소를 시범 설치하겠다고 나선 것. ‘길고양이를 없애달라’는 민원에 대해 구청이 ‘급식소 설치’로 답한 것은 길고양이 문제를 그대로 덮어두는 것보다 차라리 양지로 끌어내 공론화하는 게 오히려 길고양이 통제에 효과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쥐들만 좋은 일? 길고양이 안락사

    강동구 캣맘(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 모임인 미우캣보호협회의 김연숙 총무는 “충분한 먹이를 제때 먹여주면 길고양이가 음식물쓰레기를 뒤질 일이 없으니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고, 지정 장소에 급식소를 설치하면 사람 눈을 종횡무진 피해 다니는 동네 길고양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중성화수술 사업으로 무분별한 개체 수 증식도 막을 수 있다. 더불어 짝짓기 때 심해지는 소음도 줄일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중성화수술을 한 고양이는 발정기가 오지 않는다). 즉, 길고양이 급식소는 길고양이의 복지 증진과 효율적 통제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묘안인 셈이다.

    강동구청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만화가 강풀과 강동구 캣맘들이다. 급식소 설치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들이 의견을 모아 구청을 설득했고, 이해식 구청장이 여기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10년째 ‘캣대디’로 활동 중인 강풀 작가가 밥그릇 제작비 1000만 원을 기부했고,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캠페인 만화를 온라인상에 발표해 일반인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시범운영 기간에 급여하는 사료도 강풀 작가가 책임진다. 급식소 관리는 미우캣보호협회 회원 50여 명이 맡기로 했다.



    사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길고양이보다 도둑고양이가 더 익숙할 것이다. 음식쓰레기를 훔쳐 먹고,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보며, 발정기가 되면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 도둑고양이의 부정적 이미지는 길고양이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더불어 사는 존재보다 퇴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표적 사례가 길고양이 안락사다.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업체가 길고양이를 포획한 뒤 안락사하는 길고양이 안락사는 윤리성에 대한 지적과 함께 세금 낭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히려 해당 지역 쥐들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길고양이가 사라진 거리에 인근 지역 길고양이가 다시 유입되는 ‘풍선효과’가 이어지는 바람에 안락사하기 전과 비교했을 때 개체 수 변화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동물보호단체와 애묘인들이 안락사의 비효율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크게 쟁점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길고양이 안락사 반대 의견이 트위터를 통해 확산됐다. 바로 2011년 울산 남구청의 ‘길고양이 포획령’이다.

    2011년 9월 한 신문사가 “울산시 모 구청의 ‘OK생활민원 기동대’라는 민원 부서가 준비 중인 이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길고양이 포획령이 실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소음 등 주민을 불편하게 하는 도둑고양이 개체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는 구청장의 행사 안내 말과 함께 길고양이 포획령은 트위터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 한때 해당 구청 게시판이 통제 불능이 될 정도로 큰 반발을 샀다.

    길고양이 급식소 사건
    안락사보다 윤리적이고 효과적인 길고양이 통제 방법으로 인정받는 중성화수술을 둘러싼 잡음도 빈번하다. 안전한 방법으로 수술이 이뤄졌는지, 실제로 중성화수술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투명한 검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동에서 5년째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박은주(가명) 씨는 “주인 없는 길고양이라고 함부로 잡아가 마구잡이로 수술한 후 그대로 방사하는 경우도 있다”며 “제대로 처치하지 않아 수술 후 감염증에 걸리거나, 원래 서식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 방사해 생활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약으로 팔려나가는 길고양이들

    2012년 10월엔 경기 성남시의 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경기 광주시와 안양시, 광명시, 서울 동대문구청의 위탁을 받아 길고양이 중성화수술 사업을 진행하면서 보조금을 허위로 타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수술을 했다’는 서류를 작성한 후 정작 수술은 하지 않은 채 우리 안에 가둬놨다 한꺼번에 안락사하는 방식으로 길고양이를 폐기한 것이다.

    포획한 길고양이는 약용으로 가공되기도 한다. 관절염에 특효라는 일명 고양이탕이 그것이다. 4월 5일 방영된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선 지방 건강원에서 판매하는 고양이탕에 쓰이는 자연산 고양이의 출처를 추적, 고발했다. 제작진은 방송을 통해 길고양이를 포획해 불법 도축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는 축산물위생관리법과 동물보호법 등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로,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방송에선 개인에 의한 불법 포획 사례만 나왔지만,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예전엔 중성화수술 사업 지정업체 사람들이 잡은 길고양이를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에서 거래하는 고양이값은 마리당 5000원. 지자체로부터 받는 보조금과는 별도로 생기는 고기값으로 이중수입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길고양이의 생은 녹록지 않다. 그리고 길고양이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길고양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있을 것이다. 서울 서울숲과 양재동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박정원 씨는 “집에서 키우다 못 키우겠다고 버리거나, 버림받은 고양이들이 낳은 새끼들이 결국 길고양이가 된 것”이라며 “길고양이를 만든 건 사람인데 왜 길고양이들한테만 죽으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 최소한 강동구 길고양이들의 숨통은 트일지 모른다. 물론 급식소 성공 여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나라도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는 김연숙 총무의 말처럼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점이다. 비록 시범운영이라곤 해도 지자체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고, 예전엔 죄의식조차 없이 이뤄지던 길고양이 안락사가 지금은 동물보호법에 의해 금지돼 단속 대상이 되는 등 길고양이가 인간 사회 속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서서히, 단계적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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