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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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시아 금융시장에 군침 흘리나

‘구매력의 보고’로 인식한 선진 금융회사들 인수 및 지분투자 경쟁

  • 임재호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jaehlim@woorifg.com

    입력2013-05-20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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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시아 금융시장에 군침 흘리나

    최근 수년 사이 아시아 시장 진출을 선언한 주요 국내 은행들. 위부터 하나금융그룹, 신한금융지주회사, KB금융그룹.

    최근 아시아 시장 진출을 둘러싼 국내 은행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지난해 말 몇몇 국내 은행은 ‘미얀마 최초 진출’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경쟁 아닌 경쟁을 펼쳤고, 올해 들어서는 앞다퉈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을 인수하고 있다. 1992년 수교와 더불어 너도나도 중국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펼치던 국내 은행들이 이제는 포스트 중국을 대체할 지역으로 동남아시아를 낙점하고 또 한 번의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재조정 작업 한창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라는 두 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공적자금 상환 등을 위한 현금 확보가 절실하던 RBS(Royal Bank of Scotland) 같은 일부 글로벌 선진 은행은 서둘러 아시아 시장에서 짐을 싸서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HSBC가 소매금융 부문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ING생명, 아비바생명, 그리고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자산운용도 철수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 선진 금융회사의 움직임을 ‘아시아 엑소더스(Asia Exodus)’ 같은 트렌드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회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향후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하려고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은 사업 부문이나 국가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재조정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HSBC의 경우,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PB)과 소매금융 부문을 철수하는 대신 글로벌 뱅킹(Global Banking) 사업 부문은 오히려 확대 및 강화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선진 은행들의 아시아 시장 철수를 신호탄으로 아시아 역내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은 더욱 가속화됐다. 마치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적산(敵産)을 분배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글로벌 유수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아시아에서 주인 행세를 할 당시 숨고르기를 하던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 주요 은행들은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매각하기로 한 금융회사 인수를 아시아 리딩뱅크로 도약하기 위한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 노무라 증권이 파산한 리먼브라더스의 아시아·태평양 투자금융(Investment Banking·IB)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도쿄 미쓰비시 UFJ 은행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부터 일본 PB 사업 부문을 넘겨받았으며, 싱가포르 DBS(Development Bank of Singapore)와 말레이시아 CIMB 은행은 각각 RBS의 중국 소매금융 부문과 아시아·태평양 투자금융 부문을 인수했다.

    아시아 리딩뱅크의 꿈을 실현하려는 이들 은행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역내 현지은행으로 다시 눈을 돌림으로써 주도권 선점을 위한 인수 및 지분투자 경쟁이 더욱 가열됐다. 도쿄 미쓰비시 UFJ 은행은 베트남 공상증권은행(VietinBank), 미즈호(Mizuho) 은행은 상공은행(Vietcombank)에 대한 지분 투자를 단행했고, 이에 뒤질세라 DBS는 인도네시아 다나몬(Danamon) 은행을 인수했으며, CIMB 은행은 필리핀 상업은행(Bank of Commerce)의 지분을 취득하는 등 주로 아시아 시장에서도 성장 잠재력이 더 높은 동남아 시장에 대한 인수합병(M·A) 및 지분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한편 국내 은행도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 인수에 뛰어들었는데 우리은행은 사우다라(Saudara) 은행, 신한은행은 메트로 익스프레스(Metro Express) 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상황이다.

    아시아 시장은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풍부한 인구, 좀 더 젊은 인구구조를 보유한 것은 물론, 풍부한 자원과 소비여력 증가에 따른 금융자산 확대 가능성 등 다양한 매력을 지녀 더는 ‘세계의 공장’이 아닌 ‘구매력의 보고’ 측면으로 인식된다. 물론 아직까지 유럽이나 미주에 비해 시장규모는 작지만 성장성이나 수익성 면에서는 다른 경쟁 시장을 압도할 정도로 매력적인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금융위기(2007~2009)를 거치는 동안에도 아시아 은행들의 수익은 매년 9%가량 증가했으며,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ROE)은 15%로 선진국(5%)의 3배 수준을 기록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시아는 수익성이 담보된 성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저성장·저수익 환경 하에서 성장 한계에 직면한 은행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포기할 수 없는 시장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다소 진정되고 글로벌 선진 은행들의 경영 정상화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면 조만간 아시아 시장은 선진 은행들과 역내 주요 은행들 간 격전지로 재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 ‘선택과 집중’ 전략 필요

    지금까지 살펴본 아시아 역내 금융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은행들은 국내 은행들보다 규모가 크고 현지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은행들은 아시아 무역금융을 주름잡을 수 있는 산업 경쟁력 및 풍부한 유동성을, CIMB나 DBS는 고객확보나 시장 진입에서의 진입장벽을 완화해줄 수 있는 지리적 근접성과 아세안(ASEAN)이라는 경제적 연관성을 지닌다. 여전히 아시아 시장의 맹주인 HSBC나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tered·SC)도 상품 및 서비스,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에 있어서의 경쟁력뿐 아니라 은행의 기원이 아시아(HSBC는 홍콩, SC는 뭄바이)라는 일종의 문화적 동질성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위와 같은 장점이 부족한 데다 막대한 인프라 구축비용이 소요되는 트랜잭션 뱅킹(Transaction Banking) 등을 통한 기업금융 확대나 내재적 성장(Organic Growth) 방식의 경쟁력 확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은행들이 해외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타깃(Target) 지역 및 비즈니스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은행의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능력 차별화나 자본력 등의 차이를 고려한 현실적 전략이 중요하다 하겠다. 현재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통해 경쟁력이 있는 지역에서는 우선적으로 강력한 현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고객기반을 확보한 후 경쟁력을 갖춘 현지 은행 인수를 통해 고객기반을 역내까지 확대하는 이른바 ‘고객지향형’ 진출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해외 진출을 물리적 네트워크 확대와 동일시해 단기적 안목으로 매번 다른 기준에 준해 진출 국가를 선정하거나, 기존 전략과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이른바 ‘이벤트성 해외 진출’은 과감히 지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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