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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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차베스 언제까지 통치할까

베네수엘라 국민 추모 열기 여전… 차기 대통령엔 후계자 마두로 유력

  • 장택동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will71@donga.com

    입력2013-03-18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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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의 풍운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여전하다. 차베스 사망 뒤 그의 얼굴이 그려진 셔츠와 모자 등 기념품 판매량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5배나 늘었고, 차베스 얼굴을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도 많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는 ‘우리 모두 차베스다’ ‘차베스는 살아 있다’고 쓴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렸고, 그의 시신을 참배하려고 시민 수백만 명이 군 박물관을 다녀갔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 중남미 좌파국가 지도자들은 연일 차베스를 기리는 발언을 하고 있다.

    ‘영웅 vs 독재자’ 극단적 평가

    차베스는 14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며 중남미 강경 반미(反美) 좌파의 ‘맏형’ 구실을 해온 만큼 그의 사망은 베네수엘라를 넘어 중남미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전 세계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대선) 결과를 지켜보는 이유다.

    3월 8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차베스 장례식에는 50여 개 국가에서 온 사절단과 시민 수십 만 명이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차베스의 상징인 붉은색 옷을 입은 지지자 가운데 일부는 차베스를 실은 관이 지나갈 때 울부짖다 기절하기도 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차베스를 신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라카스 빈민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지금까지 차베스 같은 통치자는 없었다”며 “우리는 늘 탄압받기만 했는데 차베스는 우리에게 엄청난 애정을 보여줬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차베스가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자 차베스와의 ‘연대감’을 표현하려고 삭발을 한 젊은이도 많았다.



    차베스 지지자들은 그를 ‘빈민의 영웅’ ‘베네수엘라의 로빈 후드’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차베스를 ‘독재자’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베네수엘라인도 적지 않다. 차베스가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이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릴까.

    1954년 7월 28일 베네수엘라 바리나스 주 사바네타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야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괜찮은 야구팀이 있다’는 이유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19세기 남미독립투쟁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에 심취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게 됐다.

    1992년 2월 4일 차베스 중령의 쿠데타 시도는 실패했다. 체포 직전 그의 연설은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그는 “지금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룰 것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부패한 정치에 신물이 났던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차베스의 이런 태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고 6년 뒤 대선에서 승리했다.

    “차베스 정책 그대로 계승”

    집권 기간 차베스의 대내외 정책노선은 ‘친(親)서민, 반미’로 요약된다. 차베스는 석유매장량 세계 1, 2위를 다투는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오일 달러’를 빈곤층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쏟아부었다. 1998년 50.4%였던 베네수엘라 빈곤율은 2011년 31.9%로 낮아졌다. 중남미 강경좌파 8개국과 함께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을 결성했고, ‘페트로카리베’ 소속 카리브 해안 17개국에는 싼값에 석유를 공급했다.

    하지만 그는 1000개가 넘는 민간기업을 국유화하면서 기업인과 중산층의 반발을 샀고, 외국인은 투자를 중단했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등 독재자로서의 모습도 보여줬다. 생방송 TV 연설 도중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유엔 총회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악마”라고 욕하는 등 독설과 돌출 행동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차베스는 ‘21세기형 사회주의자’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20세기 사회주의자 카스트로와 꼭 닮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엄청난 빈곤율을 낮췄다는 점에서 차베스는 자신이 비판했던 독재자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4월 14일 실시하는 베네수엘라 대선은 베네수엘라는 물론, 중남미와 전 세계 정치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니콜라스 마두로(51) 임시대통령과 야권 단일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41) 미란다 주 주지사가 맞대결한다. 로이터는 “차베스를 계속 떠받들 것인가, 아니며 그를 배척할 것인가를 가름하는 선거”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2월 여론조사에서는 마두로가 50% 지지를 얻어 36%에 그친 카프릴레스에 여유 있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차베스 사후 ‘애도 열풍’이 부는 것도 마두로 승리에 도움이 되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인 마두로는 1992년 차베스가 쿠데타 실패 뒤 수감됐을 때 아내 실리아 플로레스 변호사(현 법무부 장관)와 함께 차베스 구명운동에 적극 나섰고, 차베스는 2년 뒤 석방됐다. 이후 그는 차베스 최측근으로 외교부 장관과 부통령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차베스는 그를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차베스 사후 임시대통령이 됐다.

    “내가 차베스다”라고 외치는 마두로는 차베스의 대내외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최근에는 ‘차베스 사망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자극적인 언행도 차베스를 닮아가고 있다. 마두로가 당선된다면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국가에 대한 석유 지원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이들 국가로서는 안심이다. 국내 빈민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 정책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두로는 차베스에 비해 실용적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만큼, 당선 이후 권력이 안정되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프릴레스는 지난해 10월 대선에 도전해 44.7%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차베스에 11%p 차이로 졌다. 이는 차베스가 치른 4차례 대선에서 상대방 후보가 얻은 득표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는 27세인 1999년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세우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카프릴레스는 브라질 방식의 중도좌파 정책을 지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남미 좌파 연대 느슨해지나

    카프릴레스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애도 분위기를 감안해 차베스를 직접 공격하기보다 그의 경제 정책 실패를 부각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1월 베네수엘라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23%나 올랐다. 외국인 투자가 끊기면서 베네수엘라 석유생산량은 1998년 하루 341만 배럴에서 2011년 247만 배럴로 줄었다. 치안 불안도 공격 포인트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10년 베네수엘라 인구 10만 명당 살인건수는 45.1건으로 세계 5위다. 이는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98년 19.4건에 비해 2.3배나 늘어난 것이다.

    카프릴레스는 지난해 대선에서 차베스 정책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그가 당선되더라도 빈민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상당 부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외정책은 대대적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 그는 지난해 대선에서 중남미국가에 대한 저가 석유 지원을 중단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쿠바 등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 최대 50% 싼값에 공급받아온 중남미국가에는 ‘재앙’이다. 카스트로를 ‘멘토’로 여긴 차베스는 집권 기간 내내 석유 등 1년에 50억 달러(약 5조40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지원을 쿠바에 제공했다. 베네수엘라가 ‘오일 달러’를 제공하지 않으면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결집됐던 중남미 강경좌파 연대도 느슨해질 개연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중남미에서 미국 영향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 벌써부터 ‘중남미가 다시 미국 뒷마당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는 누구?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유력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 이후 공석이 된 중남미 반미(反美) 강경좌파의 새 지도자 자리를 누가 맡을까. 몇몇 후보가 물망에 오르지만 차베스의 힘 원천이던 ‘오일 머니’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은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로이터는 “현재 중남미 지도자 가운데 차베스의 구실을 맡게 될 유력한 후보는 라파엘 코레아(50) 에콰도르 대통령”이라고 분석했다. 2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코레아 대통령은 ‘제2 차베스’라고 불릴 만큼 차베스와 성향이 비슷하다. 2007년 처음 집권한 그는 ‘오일 달러’로 사회·정치 개혁을 추진해 병원과 보건소를 확충하고, 교육시설도 대폭 개선해 빈민층과 저소득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는 지난해 말 쿠바까지 찾아가 암 수술을 받은 차베스를 격려했을 만큼 차베스와 친분도 두텁다.

    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에콰도르 석유매장량은 65억 배럴로, 2112억 배럴인 베네수엘라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따라서 중남미 좌파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의 오일 달러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는 게 큰 약점이다. 카리스마와 열정도 차베스에 비해 부족하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60)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포스트 차베스’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부인으로, 2007년 집권한 뒤 재선에 성공해 2015년까지 재임한다. 헌법을 개정해 3선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부 현지 언론은 지난해 차베스 건강이 악화하면서부터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중남미 강경좌파의 새 리더 자리를 차지하려고 준비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1월에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이스라엘대사관 폭탄테러 사건을 이란과 공동으로 재조사하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 측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중동 반미진영 핵심인 이란과 손잡음으로써 좌파 지도자로서의 ‘선명성’을 부각하겠다는 페르난데스의 의도가 담겼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경제는 지난해 1.9% 성장에 그쳐 최근 10년 새 가장 낮았고, 페르난데스 지지율은 30%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다. 밖으로 눈을 돌리기보다 ‘집안 단속’을 해야 할 형편이라는 얘기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경제난까지 겹침으로써 페르난데스의 정치적 야심에 제동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차베스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임시대통령도 4월 14일 대선에서 승리하면 후보군에 합류하게 된다. 차베스 후광을 가장 큰 무기로 삼은 마두로는 차베스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내면서 외교정책을 진두지휘했고, 국제관계에 대한 시각이 넓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미국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는 “마두로가 당선되더라도 리더십을 만들어나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불행하게도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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