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7

2013.03.04

“우리 강아지, 한방치료해야죠”

아픈 애완동물에 침 맞히고 한약 먹이고 ‘한방수의학’ 전성시대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3-03-04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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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강아지, 한방치료해야죠”
    요즘 ‘마의(馬醫)’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은 조선시대 말(馬)을 치료하는 의사로 활동하다 임금 병을 고치는 어의(御醫) 자리까지 오른 실존 인물 백광현. ‘마의’는 극 초반부 그가 침술로 동물을 치료하는 장면을 내보내 시청자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드라마에 대한 자문을 맡은 김민수 전북대 수의과대 교수는 정말 침술로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다. 우리나라에서 수의외과학을 전공한 뒤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한방수의학을 공부한 그는 “방송이 나간 뒤 한방 관련 학회 등에서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수의사들 관심도 높다”고 전했다.

    한방진료 내세운 동물병원 인기

    남치주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와 함께 1990년 ‘한국전통수의학회’를 만들면서 한방수의학을 학문의 한 분야로 정립한 김 교수는 2003년부터 ‘한방수의학 연수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수의사에게 한방치료법을 가르치는 연수 과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수의사가 250여 명”이라면서 “개원을 앞둔 수의사나 운영 중인 병원 진료과목을 다변화하려는 수의사가 주로 참여한다. 회당 정원을 25명으로 한정해 경쟁이 치열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최근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술이나 독한 양약 처방 대신 한방치료를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방수의학에 대한 대중 관심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방진료를 하는 수의사가 운영 중인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를 여러 개 검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좋은 한방동물병원을 추천해달라는 누리꾼 글도 많이 보인다. 한 누리꾼은 “강아지 세 녀석을 한방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첫째는 속이 좀 안 좋고 둘째는 아토피라고 하네요. 셋째는 나이도 어린데 요실금이라니. 모두 그리 심한 증상은 아니라면서 원장님이 간단한 진료와 함께 한약을 지어주시더군요. 아토피 증상을 보이던 둘째가 며칠 사이 씻은 듯 낫자 아내가 그 녀석을 껴안고 눈물을 보였어요”라며 한방진료 예찬론을 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방진료를 내세우는 동물병원이 인기다. 강무숙 두암한방동물병원 원장은 “10년 전부터 한방진료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일반 동물병원에서 치료법이 없다고 선언한 난치병에 걸린 애완동물 보호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5년 전부터는 양방치료에 거부감을 느껴 우리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애완동물 진료에도 웰빙 바람이 부는 셈”이라고 말했다.



    과별로 전문의 체계를 갖추고 특수클리닉도 운영 중인 이리온 동물병원 한방진료과 신사경 과장은 “우리 병원을 찾는 보호자 중에는 ‘내가 한방진료를 받아보니 좋더라. 그래서 애완동물을 여기로 데려왔다’고 하는 이가 많다. 보호자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편”이라고 밝혔다.

    요즘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한방동물병원은 대부분 양방과 한방 협진을 한다. 그 가운데 주로 양방진료를 하면서 침 치료만 도입한 병원이 있는가 하면, 대학이나 한국전통수의학회 등에서 한방수의학을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한방진료를 하는 병원도 있다. 본격적인 한방진료는 설진(舌診)과 맥진(脈診)을 통해 병을 진단하고 침과 한약 등으로 치료하는 것을 뜻한다. 마사지요법(추나요법)과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곳도 있다.

    “우리 강아지, 한방치료해야죠”

    한방진료 시스템을 갖춘 이리온 동물병원에서 신사경 과장(왼쪽) 이 고양이를 치료하고 있다.

    애완동물 한방진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질병 종류와 상태, 한약재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침 치료는 보통 1회에 2만~6만 원 선이다. 주사기에 비타민이나 사포닌 같은 약재를 넣은 ‘약침’ 가격은 1회에 10만 원이 넘는다.

    한약은 우리나라에서 동물 전용으로 나오는 것이 없어 주로 미국에서 수입해 쓰거나 한방수의사가 직접 조제한다. 일반 한약국에 처방전을 주고 주문해 쓰는 경우도 있다. 동물을 위한 한약 가격은 하루치 기준으로 4000~1만 원이다. 최근에는 치료용 한약 외에 십전대보탕, 사물탕 같은 보약도 인기를 끈다. 동물 보약의 경우 한 번에 2주분을 처방하는데, 가격은 15만 원 안팎이다. 동물 보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개와 고양이에 맞는 한약 처방 및 제조법, 구성 약재 용량 및 효능, 안정성과 부작용 같은 정보를 담은 ‘개와 고양이의 전통 한방 보약’이라는 책이 전자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이 책을 보고 고양이에게 직접 한약을 지어 먹였다”는 누리꾼 글이 올라 있다.

    ‘개와 고양이의 전통 한방 보약’ 책 화제

    한방진료는 부작용이 적은 대신 양방진료에 비해 기간이 다소 길게 걸리는 게 특징이다. 짧게는 3일부터 길게는 3개월까지 잡아야 한다. 만성질환이나 난치병은 치료기간이 길고, 질병에 따라 장기간 입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의사들은 “이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들지만 가족 같은 애완동물에게 치료비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늘면서 최근 한방수의학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방병원에서 만난 이정민 씨는 “8년 전 유기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뒷다리를 못 쓰고 주저앉아 놀라서 병원에 왔다. 후지마비 진단을 받은 고양이는 한 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뒤 주 3회씩 통원치료를 받다가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받는다”면서 “전에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이번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 같은 애완동물 애호가가 늘어나는 만큼 한방수의학 인기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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