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파룬궁 수련생 살해 중국 장기 이식 여행 그래도 가시렵니까”

이스라엘 장기 이식 문화 바꾼 제이콥 라비 박사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3-02-25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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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룬궁 수련생 살해 중국 장기 이식 여행 그래도 가시렵니까”
    “심각해지면 중국 가야지. 1억 원 있으면 중국에서 간 이식 받을 수 있다니까.”

    몇 해 전 간경화를 앓는 아내를 둔 지인이 했던 말이다. 그때는 막연히 ‘중국에서는 안 되는 게 없구나’ 싶었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이 장기를 떼어 판다더니 중국도 그런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2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이스라엘 심장흉부외과 전문의 제이콥 라비(61) 박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5년 심부전증으로 1년 넘게 그의 병원에서 진료받으며 적합한 심장 기증자를 기다리다 지친 환자가 어느 날 보험사 권유로 중국에서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것. 수술 날짜가 2주 후로 잡혔다는 환자 얘기에 라비 박사는 어떻게 이식 수술 날짜를 미리 정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얼마 후 그 환자는 정말 약속된 날짜에 수술을 받고 돌아왔다. 2개 가운데 하나를 떼어주는 신장이라면 모를까, 한 사람에 하나뿐인 심장을 예정된 날짜에 이식하다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 장기 이식 문화를 바꿔놓은 라비 박사 행보는 그렇게 작은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라비 박사는 수소문 끝에 중국에서 이식하는 장기가 대부분 사형선고를 받은 수감자나 양심수로부터 나오며, 장기를 이식받을 사람이 금전적 대가를 치를 수만 있으면 그들 일정에 맞춰 사형 집행 시기를 조정하기도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미국으로 도피한 중국인 의사 왕궈치의 증언을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수집했을 때 중국 위생부도 “소수의 교통사고 희생자를 제외하고 사체 장기는 대부분 사형수에게서 나온다”고 인정했다(2005년 12월). 중국 정부는 사형선고를 받은 당사자나 그 가족이 장기기증에 동의했다고 해명했지만, 라비 박사는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노동교양소가 생체 장기 공급원



    얼마 후 그는 더욱 끔직한 사실을 접한다. 2006년 캐나다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장관을 지낸 데이비드 킬고어와 국제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가 쓴 보고서에 “중국에서 이식하는 장기는 대부분 처형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에게서 나온다”는 내용이 담겼던 것. 킬고어와 메이터스는 “현재 중국에서 사형되는 사람은 연간 1000여 명 수준인 반면, 장기기증은 연간 1만 건 이상이다. 그렇다면 연간 9000개 이상의 장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라며 그 출처로 감금 및 격리된 파룬궁 수련생을 지목했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수련생을 대대적으로 탄압, 감금한 1999년 이후 중국에서 장기 이식 수술이 급증했다는 점, 강제 장기 적출에 참여한 의사 부인의 증언 등을 증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파룬궁 수련생을 수용하는 노동교양소에서 고가의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 X레이 촬영 같은 정밀검사를 자주 시행했다는 망명자들의 증언도 중요한 증거가 됐다. 노동교양소가 실은 생체 장기 공급원이며, 혈액 및 조직 요소가 맞는 장기 이식 수요자가 나타나면 장기를 적출하려고 파룬궁 수련생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라비 박사는 “폴란드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아들로서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조사한 내용에 파룬궁 수련생 얘기를 덧붙여 이스라엘 의학저널에 발표하고 친구, 동료들과 함께 장기 이식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으로 장기 이식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가운데 이스라엘 환자만 거의 유일하게 보험사로부터 치료비 전액을 환급받는다는 사실을 당국에 문제 삼았다.

    마침내 이스라엘 국회는 2008년 중국을 비롯해 불법 장기 적출 또는 장기 거래가 있었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수행한 장기 이식에 대해 보험사가 보상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장기 이식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라비 박사는 “이 법 영향으로 이스라엘에서 세계 다른 나라로 향하던 장기 이식 여행 인원은 2006년 155명에서 2011년 26명으로 급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의사로서 장기 이식 여행을 막기만 하는 건 무책임해 보였다. 그는 “비윤리적 장기 적출로 이어지는 통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동시에 건전한 장기 이식을 활성화할 수 있는 다른 창을 열어놔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기기증을 장려하는 대중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시에 생체 장기기증 및 사체 훼손을 신성모독으로 여기는 유대교 정서를 극복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에 힘을 쏟았다. 그 결실이 바로 2010년 이스라엘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 4월 발효한 장기 이식 우선권 제도다.

    “5년 안에 종결? 당장 그만둬야”

    이 법에 따르면, 같은 급으로 위급한 환자가 2명 이상일 경우 사전에 장기기증을 약속했거나 가족 가운데 장기기증을 한 사람이 있는 환자가 먼저 장기 이식을 받는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하루 18명씩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상황에서 장기기증을 약속해야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는 이스라엘의 새 법은 장기기증을 활성화할 수 있는 획기적 시도”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만 장기 이식 순서를 정하는 데 의학과 무관한 요소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라비 박사는 “장기기증을 금기시하는 유대교 정서를 극복하고 장기 이식 무임승차를 막으려는 선택”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장기 이식 우선권 제도와 함께 생체 장기기증을 꺼리게 만드는 걸림돌을 없애는 작업도 진행했다. 신장 등 생체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에게 기증 전 3개월 동안 평균 수입을 토대로 40일간의 수입을 보전해주고(직업이 없는 기증자는 기증 시점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상), 기증자와 그 가족이 병원에 다닐 때 드는 교통비 전액은 물론, 5년 동안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해준다. 라비 박사는 “이 제도를 시행한 이후 장기기증이 전년도 대비 68% 늘었다”고 말했다.

    라비 박사에 따르면,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했는지 지난해 중국 위생부 고위 관계자가 “5년 안에 사형수 장기 적출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에서 이식하는 장기 출처가 여전히 사형수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발언인 동시에, 사형수라는 공식 출처 외에 더 많은 희생자가 있을 것임을 짐작게 하는 단서가 된다. 라비 박사는 “5년 안에 종결하겠다는 그들 말을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면서 “지금 행태가 잘못됐음을 알고 5년 안에 그만둘 의지가 있다면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사회의 폐쇄성과 G2로서 국제사회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중국 내 인권 탄압 및 강제 장기 적출 문제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라비 박사 역시 중국에서 행해지는 강제 장기 적출 문제를 비판해 수차례 위협을 받았고, 입법화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중국 압력에 못 이겨 손을 떼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는 “중국으로의 장기 이식 여행이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무엇보다 의료계 종사자들이 비윤리적 장기 이식을 방관하지 않는 것만이 중국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장기 강제 적출 사실인가

    “처음엔 반신반의…억울한 희생 사실 가능성”


    “파룬궁 수련생 살해 중국 장기 이식 여행 그래도 가시렵니까”
    제이콥 라비 박사의 첫 한국 방문 일정에 맞춰 중국의 강제 장기 적출 실태를 고발한 ‘국가가 장기를 약탈하다’(시대의 창)가 출간됐다. 라비 박사와 데이비드 킬고어, 데이비드 메이터스 등 저자 12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최근 10년 새 급증한 중국의 장기 이식 수술, 그리고 거기에 중국 사형수와 양심수, 파룬궁 수련생이 어떻게 관련됐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타이완에서 이 책을 처음 발견하고 번역에 착수한 채승우 국민대 법대 교수는 “이 문제를 접한 사람은 대부분 경악과 충격을 금치 못하면서도 반신반의한다”고 말했다. 실제 2월 20일 출판기념회에서도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강제 적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살해된 사람은 말이 없고 사체는 유기됐으며 이 심각한 범죄에 가담한 사람과 공간은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는 상황. 변호사이기도 한 채 교수는 “장기 적출을 시행한 의사 부인의 증언, 노동교양소에서 진행한 각종 정밀 검사, 중국 내 병원의 장기 이식 홍보 광고 같은 정황증거만으로도 파룬궁 수련생의 희생을 사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 출간을 즈음해 국내에서도 장기 이식의 윤리적 딜레마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강제 장기 적출에 반대하는 전 세계 의료인 조직 DAFOH(Doctors Against Forced Organ Harvesting)의 한국 지역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이승원 박사가 올해 초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IAEOT)를 조직한 것이 대표적이다. 의료인, 법조인, 교사 등이 비윤리적 강제 장기 이식 실태를 알리려고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승원 IAEOT 회장은 “한국 의사들, 특히 이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은 이 실태를 이미 잘 알지만, 중국 의료계와의 이해관계 때문인지 나와 만나기를 꺼린다”며 “그럼에도 줄기차게 만나고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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